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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로이스 Sep 12. 2018

깔끔하고 유쾌한 일타쌍피

영화 <OCEAN'S 8> (2018)

  여자들만 떼로 나오는 영화는 기대도 되고 불편하기도 하다. 그들의 젠더적 특성을 극대화한 친화력은 익숙하면서도 편협해 보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뭐든 노골적인 게 문제다. 페미니즘이 합리적인 이상의 실천이 아닌, 싸우자고 덤비는 수준으로 가면 여자인 내가 오히려 짜증 난다. 그래서 떼로 몰려다니는 여자들이 하는 사기와 도둑질은 기대 반 걱정 반이었다. 참고로 이 영화는 페미니즘 영화가 아니고, 난 오션스 시리즈를 아주 예전에 딱 한번 봤다. 조지 클루니와 브래드 피트가 예술의 경지에 도달한 도둑질을 한다는 것만 알지 자세한 내용은 기억하지도 못한다. 아무리 클루니와 피트라 해도, 그런 아트에 가까운 사기 행각은 나의 취향이 아니었다.  


오션스 8

 

  애인 클로드 베커(리처드 아미티지)의 배신으로 5년간 감옥에서 썩은 데비 오션(산드라 블록)은 가석방되자마자 믿음직한 친구 루(케이트 블란쳇)를 찾아간다. 넘사벽 도둑 오빠 대니 오션(조지 클루니)은 이미 고인이 되어 사진으로만 등장한다. 데비에겐 감옥에서 5년 동안 시뮬레이션 한 야심 찬 계획이 있는데,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에서 열리는 미국 최대 패션 행사 메트 갈라에 참석하는 톱스타 다프네 크루거(앤 해서웨이)의 목에 걸린 1천5백억 원짜리 다이아몬드 목걸이 '투생'을 훔치는 것이다. 의상 디자이너, 보석 전문가, 소매치기, 천재 해커, 장물아비까지 여자로만 결성된 스페셜리스트들이 모여 작전을 모의한다.


  당연히 이들의 계획은 성공한다. 여덟 명은 죽이 척척 맞는 찰떡 호흡을 자랑하며 투생과 더불어 다른 보석까지 싹쓸이하는 쾌거(?)를 이룬다. 보석만큼 빛나고 명료한 여자들의 연대는 시스터 후드(sisterhood)까지는 아니더라도 꽤 깔끔하고 유쾌하다. 오션스 시리즈는 잘 안 봐서 모르겠지만, 이렇게 떼거지로 나와서 한 건 하려는 영화에서 빠지지 않는 배신과 분열은 이 여인들에게선 찾을 수 없다. 그렇다고 매우 돈독해서 파자마 파티를 하는 정도는 아니다. 각자 맡은 분야에서 실수 없이 최선을 다해 실력을 발휘할 뿐이다. 제일 마지막에 합류한 여배우 다프네가 돈이 아쉬워서가 아니라 여자 친구를 갖고 싶어서 동참했다는 말은 좀 어이없긴 하지만, 이런 언니들이라면 나라도 솔깃할 것 같다. 물론 목숨과 남은 인생을 담보로 하는 짜릿한 연대이긴 하지만.


카르띠에 다이아몬드 '투생'을 지켜보는 스페셜리스트들


  여자들의 군더더기 없는 깔끔한 일처리는 긴장감 없이 맥 빠져 보이기도 한다. 내부 분열은 물론, 투생을 얻는 과정에서도 큰 위기나 일촉즉발의 짜릿함은 없다. 오히려 그래서 더 좋았다. 느긋하게 보석을 감상하고, 여인들의 드레스를 볼 수 있었기 때문이다. 도둑질하는 와중에도 이 여인들은 명품 드레스 차려입는 것을 잊지 않는다. 그들은 순진할 정도로 서로를 믿고 의지하며 연대한다. 약간의 돌발 상황이 있지만, 행운의 여신은 그녀들 편인 듯 위기를 무난히 넘긴다. 목표를 이룬 후엔 약속한 대로 똑같이 배분하고, 알차게 돈을 쓰는 모습까지 보여준다. 도둑이라는 걸 잊을 정도로, 이들의 성취와 목표 달성은 박수를 쳐주고 싶을 정도로 정당해 보이기까지 한다. 은행을 터는 것보단, 대기업 사치품인 투생과 보석들을 훔치는 게 양심에 스크래치가 덜 가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여배우 다프네 크루거와 의상 디자이너 로즈

 
  이 작전을 설계한 데비는 돈뿐만 아니라 자신을 배신한 애인에게 복수까지 한다. 어쩌면 이 작전은 복수가 주된 목적이었는지도 모른다. 상대에게 살짝 예고만 한 후, 전면에 드러나지 않은 채 한 복수는 긴장감을 내주고 얻은 깔끔한 뒤처리로 마무리한다. 그녀가 막판에 남자 앞에 나와 구구절절하게 감옥에서 지낸 5년의 시간을 토로했다면 짜증 났을 텐데, 복수도 상큼하고 쿨하다. 더 잔인하고 처절하게 하지 않은 그녀의 절제력에 박수를 쳐주고 싶다.


  이 시리즈의 다음 편에선 죽은 대니 오션이 부활할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전반부와 후반부에 보여준 대니(조지 클루니) 영혼의 안식처는 다음 편 예고 장면 같았다. 그가 부활하면 무엇을 훔치느냐 보다, 자신의 죽음에 대해 어떤 해명과 복수를 할지 궁금하다. 내 예상이 틀리지 않다면, 남자들이 떼로 나오는 오션스 시리즈 다음 편도 제대로 즐기고 싶은데, 너무 늦은 게 아니길 바란다.


이 여인들, 포스가 장난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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