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에는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로이스_몬테네그로_평화봉사단_이야기
#AI는_일하고_인간은_산다
오늘도 계속되는 규정 교육.
365일 24시간, 어느 때라도 핫라인으로 의료 지원을 받을 수 있는 사람이 이 세상에 얼마나 될까? 아마 대통령 정도밖에 없지 않을까 싶다. 그런데 평화봉사단원들은 365일 24시간 의료 핫라인 지원을 받을 수 있다고 한다. 엄청나게 큰 특권이다.
이렇게 주어지는 큰 특권만큼 평화봉사단원들이 지켜야 할 규정은 정말 많다. 안경을 쓰지 않으면 글자를 읽을 수 없을 정도로 작은 글씨로 쓰인 규정 핸드북은 200여 페이지에 이른다. 오늘 교육 중에도 평화봉사단원의 안전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계속 강조하며 주요 항목을 하나하나 짚어가는 세션이 이어졌다. 그중에서도 눈에 띄는 건 여행 관련 규정이다.
“No travel at night.”
(밤에는 돌아다니면 안 됩니다.)
여기서 말하는 ‘밤’은 해가 진 후 1시간부터 해가 뜨기 전 1시간까지를 의미한다고 설명이 덧붙는다. 호스트 패밀리와 함께 가는 당일 여행(day trip)의 경우에도 사전에 리포트를 하고 허락을 받아야 하며, 집에 무사히 돌아왔다는 메시지를 보내는 것도 잊지 말라는 당부가 이어진다. 꼭 어린아이를 물가에 내놓는 부모처럼, 모든 가능성을 미리 막아두는 느낌이다.
“Better safe than sorry.”
(후회하느니 미리 조심하자.)
라는 영어 속담이 자연스럽게 떠오른다.
오늘은 호스트 패밀리 집으로 돌아갈 때 가져가야 할 짐 한 보따리를 받았다. 포터블 히터, 포터블 정수기, 소화기, 가스 탐지기 등이 들어 있다. 더운 지역에서 와서 추위를 쉽게 타는 사람들에게는 히터가 요긴하게 쓰일 듯하다.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 지역은 물갈이로 인한 배탈 사고가 많아 정수 필터 사용이 필수라고 한다. 집집마다 관리자가 방문해 점검해주는 정수기 렌탈이나 병 생수를 사 마시는 것이 일상인 지금의 우리와는 꽤 다른 환경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도 불과 20여 년 전만 해도 물을 사 먹는 일이 지금처럼 흔하지는 않았다.
교육은 이제 이틀째에 불과하지만, 평화봉사단원 한 명을 파견하기 위해 얼마나 많은 물적·인적 자원이 투입되는지 실감하고 있다.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를 전담하는 스태프에는 안전·보안 지원, 의료 지원(의료진), 행정 지원, 기술 지원, 프로젝트 지원(교육, 사회봉사, 사회의료 등), 교육 지원 인력까지 포함되어 있다.
이 중에는 지난 20년 이상 평화봉사단 스태프로 일해온 사람들도 많았다. 과거 평화봉사단원으로 활동한 뒤, 이를 풀타임 직업으로 이어가 스태프로 커리어를 쌓아온 경우도 적지 않다고 한다. 2년 반의 몬테네그로 자원봉사를 마친 뒤, 다시 평화봉사단 스태프로 해외에서 일하는 삶도 하나의 선택지가 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오늘 마지막 시간에는 2주간의 용돈을 받았다. 알바니아 화폐인 레크(Lek)와 몬테네그로에서 사용하는 유로화로 나눠 받았는데, 미화로 약 100달러 정도 된다. 하루 세 끼는 제공되고, 추가로 일주일에 7~8만 원 정도의 용돈이 지급된다. 내가 일한 대가로 받는 ‘월급’이 아니라, 정말 말 그대로 ‘용돈’을 받는 기분이다. 묘하게 기분이 좋다. 마지막으로 용돈을 받아본 게 언제였더라.
오늘도 자원봉사자들과의 1:1 수다는 이어진다.
고등학교와 대학교 시절 중국과 독일에서 교환학생 경험을 했다는 조세핀,
흑인 역사에 관심이 많아 자메이카와 타히티 등에서 시간을 보냈다는 달라스,
크로아티아에서 태어나 세르비아를 거쳐 미국 애리조나에 정착한 조반나,
이탈리아 출신으로 베네수엘라를 거쳐 미국 플로리다에 정착한 루시,
오하이오에서 태어나 자란 앤소니, 호스피스 병동에서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다는 젊은 청년 딜란,
아랍에미리트에서 태어나 미국으로 온 배런, 엄마가 일본인이라 한국 음식과 드라마를 좋아하고 한국말도 조금 한다는 유리아까지.
평화봉사단원들의 공통점은 이미 다양한 나라와 문화를 경험했다는 점이다. 그렇다고 이들이 모두 경제적으로 여유로운 환경에서 자란 것은 아닌 듯하다. 대부분 고등학생이나 대학생 시절 교환학생이나 배낭여행을 통해 세상과 먼저 접했다. 그 덕분에 영어 외에 한두 개의 외국어를 구사하는 사람도 적지 않다. 나이를 떠나 서로를 배려하고, 잘 들어주며, 예의 바르고 독립적인 태도가 자연스럽다. 다양한 문화에 노출된 경험의 결과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 사회에서도 조기 유학이 아니더라도, 고등학생 무렵부터 좀 더 자연스럽게 해외 경험을 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대학을 졸업하고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를 때, 취업 전선에서 조급해지기보다 한 발 물러서서 자원봉사를 통해 삶의 방향을 가늠해보는 선택지도 더 많이 고려되었으면 한다.
사진
1) 첫 용돈 (알바니아돈과 몬테네그로용 유로화)
2) 봉사자 필수품이 들어있는 짐 한 보따리- 포터블 히터, 포터블 정수기, 소화기, 가스 탐지기
3) 하루종일 깨어있게 만드는 다양한 커피믹스 (아마 이탈리아에서 온 듯)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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