외국어가 안 느는 이유, 오늘 몬테네그로에서 알았다

연필로 쓰고, 소리 내어 읽고, 천천히 가기

by Lois Kim 정김경숙


#로이스_몬테네그로_평화봉사단_이야기

#AI는_일하고_인간은_산다


2월 9일 월요일


오늘 나의 ‘호스트맘’과 언어에 대해 깊은 대화를 나누었다. 그녀는 50대 중반으로 나와 비슷한 연배(정확하게는 나보다 세 살 어린^^)이다. 호스트맘과 이야기를 나누다 보면 마치 삶의 본질을 꿰뚫어 보는 현자와 마주 앉아 있는 기분이 들 때가 많다. 오늘도 그런 날.


몬테네그로어를 배우는 게 생각만큼 쉽지 않다며 고충을 털어놓자, 그녀는 자신의 젊은 시절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과거 유고슬라비아 연방 시절, 스무 살 무렵 결혼하자마자 연고도 없는 프랑스로 건너가 살게 되었다는 그녀. 프랑스어를 단 한 마디도 모르던 상태에서 외국어를 어떻게 ‘정복’했는지에 대한 그녀의 조언은, 지금 이 순간 외국어와 씨름하는 모든 이들에게 그대로 적용될 법한 황금률처럼 들렸다.(물론 몬테네그로어와 영어를 섞어가며 대화한 터라 내가 절반 정도만 이해했을 수도 있지만 말이다.)


첫째, 일기를 써라.
지금 머릿속을 스쳐 가는 생각들, 오늘 하루를 어떻게 보냈는지를 그 언어로 기록해 보라고 했다. 단어나 표현을 모른다면? 걱정하지 말고 그냥 영어(혹은 모국어)로 적어두고 넘어가란다. 나중에 사전을 찾거나 친구에게 물어 그 빈칸을 채워 넣으면 그만. 내가 진짜 ‘표현하고 싶은 것’을 하나하나 알아가는 과정은 공부가 아니라 즐거움이 된다고. 그건 맞는 말이다. 어제는 과거형으로 말하고 싶은데 아직 과거형을 안배워서 혼자 찾아서 읽혀버렸다. 얼마나 즐거웠는지.


참, 쓰기 연습할 때, 중요한 건 자판 타이핑이 아니라 연필로 직접 쓰란다. 자판을 두드리는 것보다 연필 끝에 힘을 주어 써 내려가고, 틀린 부분은 지우개로 지워가며 배우는 편이 기억에 훨씬 오래 남는다고.


둘째, 무조건 소리 내어 읽어라.
소설이든 잡지든 상관없다. 뜻을 몰라도 좋으니 그냥 소리 내어 읽어나가라. 소리를 내는 순간, 그것은 곧 발음 연습이 된다. 처음엔 아는 단어가 하나도 없어서 무슨 짓(?)을 하고 있나 회의가 들겠지만, 반복해서 읽다 보면 한 페이지 안에서 아는 단어가 신기하게도 하나둘 늘어난다. ‘이해’에 목숨 걸기보다 ‘발음 연습’이라고 생각하며 가볍게 읽으면 스트레스도 훨씬 덜하다. 중간에 멈추지 말고 끝까지 읽어라. 스무 번쯤 반복할 즈음이면, 그 페이지는 어느새 당신의 것이 되어 있을 것이다.


셋째, 암기에 집착하지 마라.
일주일에 500개의 단어를 외우면 당장은 잘하는 것처럼 보일지 모른다. 하지만 실생활에서 써먹지 못하는 단어는 신기루처럼 금세 사라진다. 천천히, 내가 충분히 소화하고 활용할 수 있는 속도로 익혀가는 게 중요하다. 단어 자체를 외우기보다 그 단어가 살아 숨 쉬는 ‘문장’을 일상 속에서 연습하는 것이 훨씬 더 중요하다는 사실을 잊지 말라고 했다. 사실 같이 교육받고 있는 자원봉사자 중에 플래쉬 카드로 단어 연습하는 친구가 있다. 모르는 단어가 없었다. 지금까지 그 친구에게 엄청 주눅 들었었는데 그러지 않아야겠다. (사실 문장은 내가 더 잘만든다 헤헤)


여기까지 들은 나는 호스트맘의 조언에 동기부여가 머리끝까지 차올랐다. 호스트맘이 그 어렵다는 프랑스어도 해냈는데, 나는 몬테네그로어는 잘 할 수 있겠지 하는 자신감도 뿜뿜 솟았다.


“정말 고마워! 이제 방에 가서 열심히 공부할게!”

씩씩하게 일어서는데, 그녀가 웃으며 내 팔을 붙잡았다.


“로이스, 너 오늘 하루 종일 공부했잖아. 아무것도 안 하는 시간도 공부만큼 중요해. 지금은 올라가서 책을 펼칠 게 아니라 그냥 좀 쉬면서 내일을 준비해.”


늘 ‘지금 당장, 최선을 다하자’는 태도로 앞만 보고 달려온 나. 이렇게 누군가 브레이크를 걸어주지 않는다면, 이 느긋한 몬테네그로에서도 나는 여전히 혼자 나를 재촉하며 살 것이다. 오늘 그녀가 건넨 “천천히 가야 오래 간다”는 말을 가슴에 새기며, ‘천천히의 효율성’을 다시 한 번 떠올려 본다.


언어는

천천히 스며들어야

비로소 내 것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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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I는_일하고_인간은_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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