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화봉사단 몬테네그로에서 배우는 "느린 만남"
#로이스_몬테네그로_평화봉사단_이야기
#AI는_일하고_인간은_산다
2월 16일 월
학교 마치고 오늘 늦게 호스트맘 집에 돌아왔다. 1층 거실에서는 호스트맘이 어떤 할아버지(?) 남자분과 맥주잔을 앞에 두고 노래를 부르며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2층으로 올라가려는 나를 보더니 들어와 같이 있으라고 했다. 나는 친한 친구가 방문한 줄 알았다.
아직은 못알아듣는 몬테네그리어 대화를 더듬더듬 이해해보니, 그분은 오븐을 고치러 온 기사였다. 부속품이 없어 수리를 못 했고, 그래서 그냥 이야기를 나누고 있는 중이라고 했다. 처음 보는 두 사람이 그렇게 두 시간 넘게 웃고 노래하며 시간을 보냈다. 기사분은 “다시 오겠다”고 인사하며, 정말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섰다.
몬테네그로 평화봉사단 오리엔테이션에서 가장 많이 들었던 말은 “관계 형성”이었다. 현지 사람들은 만나면 커피를 마시고, 맥주를 마시고, 때로는 작은 잔에 담긴 독주를 권한다고 했다. 그렇게 시간을 쓰며 서로를 알아가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고. 비즈니스는 그 이후라고.
“커피 한 잔 할래요?”
여기서 커피는 음료가 아니다. 관계의 시작이다. 시간을 내어 서로를 알아가자는 제안이다.
오늘 호스트맘과 전기기사의 장면을 보며, 몬테네그로 사람들이 말하는 관계 형성이 무엇인지 조금은 알 것 같았다. 처음 보는 기사와 두 시간이나 웃으며 시간을 보낸다니. 물론 오후 늦은 시간이었고, 하루를 거의 마감한 시점이었을지도 모른다. 그래도 처음 만난 사람과 그렇게 신나게 시간을 보내는 모습은 인상적이었다. 가끔은 노래까지 함께 부르며.
오늘 문화 수업에서 들은 표현이 있다.
Intentional relationship building.
처음엔 솔직히 이 표현이 조금 낯설었다. ‘의도적 관계 형성’이라니. 계산된 관계, 전략적 관계처럼 들렸다. 목적을 위해 사람을 만나는 느낌. 어쩌면 내가 너무 직장인의 귀로 듣고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이곳에서의 intentional은 전략이 아니라 선택에 가까웠다.
시간을 내어주겠다는 선택.
급하지 않겠다는 선택.
쉽게 끊지 않겠다는 선택.
그래서 나는 이 문장을 이렇게 이해하게 되었다.
몬테네그로는 relationship-centered culture, 관계 중심 문화에 가깝다는 것을. 관계가 수단이 아니라 기반인 사회.
한국에서 우리는 관계를 “관리”한다.
연락을 유지해야 하고, 네트워크를 넓혀야 하고, 도움이 될지 고민하고, 효율을 따진다. 너무 솔직해도 문제고, 너무 느려도 뒤처진다. 관계에도 성과가 따라붙는다.
이곳에서는 조금 다르다.
전기기사가 두 시간을 앉아 맥주를 마신다.
수리는 못 했지만, 관계는 남겼다. 당장 도움이 되지 않아도, 다음에 다시 올 이유가 생긴다.
이곳에서는 신뢰가 먼저이고, 거래는 나중이다.
반복된 만남이 신뢰를 만들고, 신뢰가 일을 움직인다.
내가 살던 한국 사회와 미국 사회에서는
이익이 없으면 손절하고,
속도가 느리면 답답해하고,
결과가 없으면 의미를 의심한다.
이곳에서는 그냥 함께 앉아 있는 시간이 의미다.
말이 길어도 괜찮고, 결론이 없어도 괜찮다.
목적이 아니라 존재로 이어지는 관계.
성과가 아니라 사람으로 남는 관계.
사실 나는 여전히 가끔 답답하다. (오늘 전기 기사와 함께 자리했을 때도 한시간이 지나니 답답함을 넘어서 짜증이 나기 시작했다 ㅎㅎ)
‘왜 이렇게 오래 이야기하지?’
‘이게 언제 끝나지?’
한국식 속도가 몸에 남아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조금씩 깨닫는다. 관계는 쌓는 것이 아니라, 머무는 것이라는 걸.
그리고 나는 지금, 조금 느려진 방식으로 사람을 만나고 있다.
이 속도가 나를 바꾸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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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
1) 호스트맘과 전기 기사의 즐거운 담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