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입견관 편견을 없애준 알바니아 십대들
#로이스_몬테네그로_평화봉사단_이야기
#AI는_일하고_인간은_산다
2월 17일 화요일
평화봉사단에서는 DIVE 일기를 쓴다. DIVE라는 모델에 따라 상황을 정리하는 리포트다. D는 Describe(묘사), I는 Interpret(해석), V는 Verify(검증), E는 Evaluate(평가). 거창한 사건이나 상황을 분석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가 일상 속에서 마주치는 아주 작은 순간들, 마이크로 모먼트 (Micro moments)를 다룬다. 그 순간에 내가 ‘본 것’은 무엇’이고, 그 무엇을 어떻게 ‘해석한 것’인지를 의도적으로 분리해보는 연습이다. 어떤 상황에 접했을 때 우리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는 것보다 해석을 더 빨리 한다. 그리고 그 해석은 대부분 내가 속해 있던 문화, 경험, 선입견 위에 올라간다. DIVE는 그 자동 반응에 브레이크를 거는 훈련이다.
몬테네그로에 와서 첫 주에 이런 일이 있었다. 마을의 좁은 길을 걷고 있는데, 운전하는 아저씨(?)가 빵빵 경적을 울렸다. 순간 내 머릿속에는 이런 공식이 떠올랐다. “여성인 나를 타겟으로 한 무례한 행동.” 이라고 생각했다 (아직도 ‘관종’인 나^^). 그런데 알고 보니 이 작은 몬테네그로 마을에서는 그냥 습관이었다. 사람 지나가도 빵빵, 반가워도 빵빵, 길이 좁아도 빵빵. 큰 의미 없는 소리였다. 나를 향한 메시지가 아니었다.
또 이런 일도 있었다. 커피를 한 잔 마셨는데 두 잔, 세 잔을 자꾸 권한다. 이미 배부르다고 했는데 음식을 계속 그릇에 퍼준다. 내 의사를 무시하는 과잉 친절과 접대처럼 느껴졌다. 그런데 알고 보니, 이곳은 전쟁과 피난의 기억이 깊은 곳이어서, 내 집을 방문한 사람은 배부르게 보내야 한다는 문화적 의무가 남아 있다고 한다. 여기서는 풍성히 주는 것이 미덕이다. 내 의사를 무시한 것이 아니라, 그들의 환대 방식이었다.
그리고 지난주, 알바니아 센진에서 또 하나의 DIVE 순간을 만났다.
알바니아와 몬테네그로 평화봉사단원들이 함께 모이는 허브데이였다. 하루 교육이 끝나고 어둑해질 무렵 조깅을 나갔다. 바닷가를 따라 뛰고 있는데, 갑자기 10대 네댓 명이 나를 둘러싸며 “Hello!”를 외쳤다. 같이 이야기할 수 있냐고 묻는다. 작은 마을이라 동양계의 낯선 얼굴이 눈에 띄었을 것이다.
나는 즉시 ‘진도개 하나’ 경계 태세에 들어갔다.
10대 무리 = 문제아. 불량배. 돈 뻇음.
이 공식이 내 머릿속 어딘가에 저장되어 있었던 것이다. 한국 영화, 뉴스, 드라마 장면들이 내 안에서 슬라이드처럼 지나갔다.
그런데 막상 손짓과 표정으로 대화를 이어가 보니, 이들은 그냥 영어를 써보고 싶은 십대들이었다. 그들은 “America? China? Age? Merry?” 단어를 총동원해 질문을 쏟아냈다. 내가 “Korea”라고 하자, 갑자기 “BTS!”를 외치며 노래 제목을 줄줄 읊는다. 내가 아는 노래는 겨우 “Dynamite”와 “Butter”뿐이었는데, 그들은 훨씬 더 많이 알고 있었다.
그 순간, 처음에 경계 태세를 발동했던 내 자신이 조금 민망해졌다.
아, 여기는 무서운 10대가 아닌가벼?^^
새로운 문화를 만난다는 것은, 내가 그동안 익숙했던 생각 체계와 문화 등을 포함한 해석 프레임을 잠시 내려놓는 일인지도 모른다. 같은 장면도 다른 의미를 가질 수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 내가 자동으로 붙인 해석표를 떼어내는 것. 편견과 선입견을 의도적으로 떼어내는 것.
DIVE는 거창한 이론이 아니라, 나를 단속하는 장치다.
보이는 것과 해석을 분리하는 연습.
편견을 알아차리는 연습.
새로운 문화는 새 포대에 담아야 한다는 말이 있다. 예전 생각을 그대로 들고 오면, 결국 내가 보고 싶은 것만 보게 된다. 조금 느리고, 조금 어색하고, 가끔은 ‘진도개 하나’가 발동되더라도, 나는 계속 연습해보려 한다.
해석하기 전에 묻고, 판단하기 전에 한 번 더 보고.
그래야 이곳에서 더 많은 풍성한 경험을 얻을 수 있으니까.
#로이스_몬테네그로_평화봉사단_이야기
#AI는_일하고_인간은_산다
사진)
1) 알바니아 센진에서 만난 10대 소녀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