몬테네그로 매점 제1 간식은 팬케이크.
#로이스_몬테네그로_평화봉사단_이야기
#AI는_일하고_인간은_산다
3월 3일 화요일
평화봉사단 영어 교사로 3개월 교육을 받는 동안, 매주 화요일이면 다른 학교로 실습을 나간다. 오늘은 초등학교.
여기 초등학교는 1학년부터 9학년까지이다. 어떤 곳은 유치원까지 붙어 있다. 교문을 들어서면 토들러 티를 갓 벗은 아이들과, 키가 나보다 훌쩍 크고 여드름이 한창인 9학년(14~15살)이 한데 어울려있다. 이들과 같이 복도에서 마주치며 인사를 나누라치면, 낯설지만 묘하게 정겹다. 든든한 형 누나들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것 같아.
그리고 수업 끝나는 종이 울린다. 건물의 공기가 바뀐다. 아니 지구의 대기가 바뀌는 순간이다!!
의자가 밀리는 소리. 가방 지퍼 소리. 그리고 아이들이 한 방향으로 쏠린다.
바로 학교 매점.
순식간에 매점 앞은 이미 줄은 엄청 길다. 이곳 몬테네그로 학교 매점의 주 메뉴는 다양한 도넛과 팬케이크. 그중에서도 팬케이크가 압도적 1위다. 크레페처럼 얇게 반죽을 펴서 앞뒤로 재빨리 굽고, 다 익으면 한쪽 면에 누텔라 같은 초콜릿 크림을 발라 돌돌 만다.
영양학적으로 보면… 음… 탄수화물의 승리다.
하지만 아이들은 세상 진지한 얼굴로, "세상 맛있게" 먹는다.
가격은 초콜릿 종류에 따라 1.5유로에서 2유로. 우리 돈으로 3천 원 안팎. 이곳 물가를 생각하면, 매일 먹기엔 솔직히 부담되는 가격이긴 하다.
매점에서 일한 지 3년 되었다는 아주머니는 쉴 틈 없이 손을 움직인다. “쉬는 시간이 짧아서 속도가 중요해요.” 웃으면서 말한다. 철판 위 반죽을 바라보는 눈빛이 숙련된 장인의 그것이다. 손자뻘 아이들에게 간식을 만들어주는 게 보람이라고. 짧은 휴식 시간 동안, 철판 위에서 만들어지는 건 단순한 팬케이크가 아니라 작은 위로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아이들이 방앗간 드나들듯 매점을 들락날락하는 모습을 보고 있자니, 내 중학교 시절이 불쑥 소환됐다.
그땐 둥근 크림빵이 유행이던 시절이 있었다. 제품명이 크리미, 였던 것 같다.
또 그보다 조금 더 비싼 카스테라 스타일 ‘보름달빵’이 선망의 대상이던 시절도 있었다.
또 한때는 작은 식빵 같이 생긴 옥수수빵이 대세였다. 이 빵은 안에 크림 등이 들어있지 않은 완전 맨빵이다. 근데도 왜 그렇게 맛있었는지..
"1일 1빵"을 실천하며 점점 구분이 사라져가는 허리와 엉덩이를 “공부의 흔적”이라고 합리화했고, 점점 굵어지는 종아리는 산 중턱에 있던 학교 탓으로 돌렸다.
고등학교에 올라가니 매점 간식의 세계는 더 확장됐다. 우묵, 떡볶이, 라면. 회수권(그 시절 시내버스 요금표의 이름)을 사고 나면 남는 용돈은 늘 빠듯했다. 왕성한 식욕을 감당하기엔 늘 용돈은 턱없이 부족했다.
도시 학교로 아이 넷을 유학 시키고 있었던 부모님의 등골(!)을 "빵순이" 딸이 야금야금 빼먹고 있었던 셈이다. 지금 생각하면 좀 짠하기도 하다. 풍족하게 간식 사먹을 돈이 없어 못먹은 나나, 시골에서 아껴아껴 올려보낸 생활비로 학교 매점을 들락날락하는 "1일 1빵" 철부지 막내딸을 몰랐던 부모님이나^^
그때 원 없이 못 먹었던 빵 때문일까.
지금도 빵과 떡만 보면, 조건반사처럼 침이 고인다.
파블로프의 개처럼.
이 글을 쓰는 지금도…
한국 빵집에 진열된 따끈따끈한 빵을 생각하며,
추룹~~ 이다!!
사진
1) 몬테네그로 학교 매점. 한 평 남짓되는 작은 크기
2) 추억의 크리미빵 (삐져나오는 하얀 크림은 생각만해도 추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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