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 상인으로 더블잡 뛰는 학교 선생님의 그 당당함이란!
3월 12일 목요일
#로이스_몬테네그로_평화봉사단_이야기
#AI는_일하고_인간은_산다
문제는 "체면".
구글 디렉터에서 수퍼마켓 캐셔가 되는 데 걸린 시간은 생각보다 오래 걸리지 않았다.
그런데 "남들 눈"을 100% 의식하지 않기까지는 꽤 걸렸다.
2022년부터 실리콘밸리에 대량 레이오프가 시작되었다. 트위터가 전 직원의 약 80%를 정리해고했다는 뉴스가 먼저 터졌고, 그 이후 메타(페이스북), 마이크로소프트, HP 등 대부분의 회사에서 대량해고가 이어졌다. 그리고 결국 17년 다니고 있던 구글도 대량 정리해고 대열에 합류했다. 그리고 전체 직원의 약 6%인 1만 2천 명이 정리해고 됐고, 나를 포함해서 우리팀이 하루아침에 날아갔다.
"We no longer have a job for you (당신 잡이 이제 없습니다)"라는 메일을 읽는 순간은 망연자실했다. 믿기지가 않았고, 화도 났고, 배신감도 있었다.
그렇지만 워낙 긍정적이고 행동지향적인 인간이라서 그랬을까. 주말을 지나면서 가만히 있을 수가 없었다. 그래서 시작한 것이 실리콘밸리 알바생이 되려는 나의 갭이어 프로젝트였다.
수퍼마켓에서 짐을 나르고 캐셔를 했고,
택시 운전사가 되어 화장실을 참아가며 차를 몰았다.
스타벅스에서는 10대 바리스타들 사이에 끼어 커피를 내리기도 했고,
출장 펫시터가 되어 고양이를 돌보기도 했다.
사실 이런 일들은 30여년 동안 “쟁쟁한 회사”를 다닐 때 꼭 해보고 싶었던 것들이었다. 그런데 막상 하려니 발목을 잡는 것이 있었다. 그놈의 "체면"과 "남들 눈"이었다. 구글 디렉터로 일하다가 수퍼마켓 알바가 되어 짐을 나르고 운전대를 잡는 모습. 내가 창피하다기보다는, 남들이 어떻게 볼지가 먼저 떠올랐다.
또 당시 가족 중 한 명(!)도 무지 반대를 했다. 차라리 집에서 그냥 쉬라고 말헀다. "남들 눈"과 "체면"이라는 이유를 직접 말하지는 않았지만, 그 감정의 밑바닥에는 아마 이런 마음이 있었을 것이다. '가족 일원이 잘나가던 회사의 디렉터여였는데, 이제 한낱 수퍼마켓 캐셔가 되었다는 이야기를 남들에게 듣고 싶지 않다'라는 마음.
당시 나름 당당했던 나를 주저앉히고 자존심을 가장 많이 건드렸던 것은 세상의 손가락질이 아니라, 오히려 가장 가까운 가족의 시선이었던 것 같다. 물론 나중에는 그런 의미가 아니었다고 말을 하긴 했다. 음… 글쎄올시다,이다.
체면,
레떼르,
남들 시선,
이런 것들을 떼어버리기는 솔직히 말처럼 쉽지 않다.
그런데 한번 떼어내고 살아보면 알게 된다.
그런 레떼르 없이도, 아니 오히려 그래서 더 선명하게 진짜 나를 발견하게 된다는 것을. 말로만 그럴 것이다, 라고개념적으로 이해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실제로 살아보면 정말 그렇게 느껴진다.
지난 주에 몬테네그로 포드고리차에 있는 재래시장을 갔었다. 과일을 사려고 들렀는데 한 시장 상인이 나를 보더니 아주 반갑게 인사를 했다. 조금 과하다 싶을 정도였다.
‘어? 내가 이 사람을 아나?’
그랬더니 내가 영어교사로 견습 수업을 나가는 학교에서 나를 봤단다. 그는 내가 수업을 나갔던 학교의 선생님 중 한 분이었다. 생각해 보면 굳이 나를 아는 체 할 필요도 없었다. 모르는 척해도 됐을 것이다. 그런데 그는 아주 자연스럽게 말했다.
“저 여기서 일해요. 만나서 정말 반가워요!”
그에게서는 체면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는 일주일에 두세 번 이 시장에서 점원으로 일한다고 했다. 당당했고 행복해보였다. 체면이나 남들 시건 같은 것이 전혀 느껴지지 않았다.
그 순간 문득 예전의 나 자신과 나의 알바일을 반대했던 가족 일원이 떠올랐다.
그놈의 체면…
그거 남 주면 안 되나?
* 가족 이야기의 자세한 내막은 「퇴사하면 큰일 날 줄 알았지 – 나의 비트윈잡스 이야기」책에 쉬~원하게(^^) 써두었다.(네, 맞습니다. 저 뒷끝 있습니다! ^^) 작년에 '비트윈잡스" 모임에서 만난 38명과 함께 책으로 만들었는데 감사하게도 종이책은 완판되어. 지금은 전자책(부크크)으로만 읽을 수 있다.
사진
1) 시장에서 만난 학교 선생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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