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거리에서 만난 사람을 집으로 초대하는 민심

“모든 사람의 모든 것”을 안다는 몬테네그로 생활, "나누고 싶어서"

by Lois Kim 정김경숙

3월 30일 월요일


#로이스_몬테네그로_평화봉사단_이야기

#AI는_일하고_인간은_산다



오늘 학교가 끝나고 집으로 걸어오는 길이었다.


3주 전쯤 한 번 마주쳤던 동네 어르신을 다시 만났다. 그때는 말을 끌고 계셨고, 나는 몬테네그로어를 더듬더듬 꺼내느라 진땀을 뺐던 기억이 있다. 사실 대화라고 하기에도 민망한 수준이었는데… 그 짧은 만남이 인상 깊으셨던 모양이다. 오늘 그분은 나를 보자마자 덥썩 안으셨다.


몬테네그로는 남녀 사이에 예의와 거리를 꽤 중시한다고 들었는데, 갑작스러운 포옹(그것도 선글라스가 눈커풀에 눌릴 정도로 꽉!!^^)에 속으로는 살짝 놀랐다. 참고로 나는 ‘허그 퍼슨 hug person’이다. 그런데도 놀랐다. 그런데 그 반가움이 얼굴에 나타나는게 너무 진심이라, 어색함과 경계심은 금방 사라졌다.


그러더니 지금 말을 데리러 가는 길인데 같이 가겠냐고 하신다. “yes”하고 나는 바로 따라나섰다. 한 10분쯤 벌판을 걷다 보니 묘지가 나왔는데, 갑자기 그 안으로 들어가자고 하신다.


‘묘지를 관리하는 분인가…?’ 잠깐 그런 생각을 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가족묘였다. 아버지, 어머니, 할아버지, 할머니, 형… 한 분 한 분 묘를 짚어가며 설명해주셨다. 그리고 마지막으로 한 묘 앞에 섰다.


1956–2025.


작년에 돌아가신 아내라고 한다. 그리고 그 옆의 비어 있는 자리를 가리키며, “여기가 내 자리”라고 웃으며 말한다. 웃으면서 말하는데도 그 쓸쓸함이 느꼈졌다. 가족 묘에 자주 오시냐고 물었더니, 그렇게 자주는 아니라고 하신다. 그런데 두 번 만난 나를 데려온 걸 보면… 아마 이건 ‘보여주고 싶어서’가 아니라 ‘나누고 싶어서’였던 것 같다.


묘지를 나와 그 옆에 목초지로 가더니 “도라(dora)!” 하고 몇 번 외치니, 어디서 나타났는지, 그날 그 말이 저 멀리서 달려왔다. 어르신은 주머니에서 준비해온 당근을 말에게 건네 주며 둘은 정말 반가운 친구를 만나는 것처럼 재회를 한다.


말을 데리고 집 쪽으로 걸어오면서 이런저런 얘기를 나눴다. 물론 내 몬테네그로어는 여전히 제한적이다. 아마 그게 답답했던지, 집에 영어를 하는 손녀가 있으니 가서 커피 한 잔 하자고 하신다.


여기서는 누군가를 만나면 “커피 마실래요?”가 거의 기본 인사다. 그렇게 즉흥적으로 그분의 집에 가게 되었다. 손녀가 통역을 해주면서 이야기가 조금 더 깊어졌다. 평생 온갖 차를 운전하며 살아온 이야기, 자식들, 손자손녀 이야기, 그리고 지금은 동물을 키우는 재미로 산다는 이야기까지.


한참 이야기를 나누다가, 갑자기 이런 말을 하신다.
“말이 바로바로 안 통하니까 가슴이 텅 빈 것 같아.”


그 표현이 너무 솔직해서, 순간 마음이 찡했다.
“손녀처럼 영어를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


그래서 나도 말했다.
“저, 몬테네그로어 열심히 배울게요.”

정말 이 약속을 꼭 지키고 싶다.


한 번밖에 안 만난 사람을 집으로 초대해서 정성스럽게 커피를 내려주고, 과일을 내어주는 이 환대.
‘아, 내가 이런 사람 냄새를 느끼려고 여기 왔지.’
그 생각이 자연스럽게 들었다.


이 동네는 정말 작고 모든 사람이 연결되어 있다. 예전에 그 어르신을 처음 길거리에서 만난 다음 날, 그분의 손녀가 학교에서 먼저 인사를 했을 때 알았다. 그야말로 몬테네그로 시골은 “모든 사람에 대해 다 안다 (Everyone knows everything about everyone.)”라고 하는데, 말 그대로다. 정말로 다 안다.


이제 열흘 뒤면 나는 이 동네를 떠나 정식 발령지로 간다. 그 얘기를 했더니 무척 아쉬워한다. 이번 일요일에 말과 함께 산책하자고 했더니, “몇 시에?”라고 바로 시간을 못 박으신다. 여기서는 “차한잔 마시자” 혹은 “다음에 봐요”가 빈말이 아닌 것임을 다시한번 실감했다.


앞으로 2년을 지낼 새로운 동네는 지금 있는 동네보다 더 작은 동네다. 작은 동네의 민심과 환대가 벌써부터 기대가 된다.

사진

1) 두번째 만나서 집으로 초대해주신 동네 어르신

2) 가족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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