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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Nov 27. 2021

#0 앙코르가 품은 동물들 - 프롤로그 -

앙코르가 품은 동물들

'나는 우리나라가 세계에서 가장 아름다운 나라가 되기를 원한다. 가장 부강한 나라가 되기를 원하는 것은 아니다. 내가 남의 침략에 가슴이 아팠으니, 내 나라가 남을 침략하는 것을 원치 아니한다. 우리의 부력은 우리의 생활을 풍족히 할 만하고, 우리의 강력은 남의 침략을 막을 만하면 족하다. 오직 한없이 가지고 싶은 것은 높은 문화의 힘이다.' <백범 김구의 '나의 소원' 중에서>


최근 우리나라가 김구 선생의 소원이었던 '문화 강국'에 다가가고 있는 듯하여 마음이 벅차다. 한국에서 탄생한 문화적 산물들이 인터넷을 통해 세계로 뻗어나가며, 문화 강국으로서의 인지도가 높아지는 속도가 더욱 빨라지는 듯하다. 이러한 변화 필자가 있는 캄보디아에서도 생생하게 느끼고 있다. 한류가 막 유행하기 시작하였을 때, ‘한류는 국가의 적극적인 지원으로 급조된 것이기 때문에 한시적일 것이다.’라는 한 주변국 문화평론가의 폄하하는 의견을 기억한다. 하지만 이 의견이 나온 것이 이미 십여 년이 훌쩍 지났고, 한류는 일시적인 유행을 넘어 글로벌 대중문화의 한 장르로 자리 잡아가는 듯하다. 그 문화평론가가 평가한 것과 같이 한류의 주축이 되고 있는 K-POP이나 영화, 드라마 등은 최근에 만들어진 것으로 여겨질 수 있다. 하지만, 개개의 내면을 들여다보면 모두 우리나라의 오랜 문화와 전통이 고스란히 담겨있음을 알 수 있다. 즉, 한류가 세계에 퍼지고, 뿌리내릴 수 있었던 배경, 그리고 우리나라가 '문화 선진국'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에는, 우리 민족이 오랜 역사와 함께 켜켜이 쌓여온 뿌리 깊은 ‘문화력’이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문화 선진국'이란 경제적 선진국, 군사적 선진국과 완전히 별개의 것이다. 앞서 말한 것과 같이 '문화'란 하루아침에 만들어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즉, 군사적 선진국, 경제적 선진국이 되었다고 해서 반드시 문화 선진국이 된다는 법은 없다. 반대로 군사적, 경제적 선진국이 아님에도 문화 선진국일 수 있다. 높은 문화의 힘이란 오랫동안 같은 문화를 공유하는 사람들이 인문학적이며 예술적인 것들을 추구하고 갈망한 끝에 탄생하는 것이다. 우리나라에 ‘풍류’라는 문화가 있어, 힘들고 가난한 상황에서도 꾸준히 멋을 추구해왔다. 그 결과 한국 문화의 깊이를 더해올 수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시각에서 보았을 때, 개발도상국들이 몰려있는 동남아시아에는 '높은 문화의 힘'을 가진 나라들이 많다. 그중 캄보디아는 이러한 나라 중 대표적인 나라로, 문화적 저력이 큰 나라라고 생각한다. 한때 세계에서 공휴일이 가장 많은 나라 이기도했을 만큼, 달력을 빨갛게 수놓은 많은 기념일들만 보아도 캄보디아가 가진 문화력을 간접적으로 짐작할 수 있다. 하지만 캄보디아는 2021년에도 유엔이 지정한 최빈국(Least developed countries)에 포함되었다. 1990년대 이후로 경제적 어려움을 많이 극복했다고 평가받지만 경제적 어려움을 극복하는 것은 쉬워 보이지 않는다. 수백 년간 이어진 외세의 침략과 오랜 식민통치, 과격한 공산혁명과 자국민 학살과 같은 불행의 근대사를 되돌아보면 어려운 상황이 충분히 이해가 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을 살펴보면, 문화적 품격을 느낄 수 있다.      


러한 배경에는 캄보디아의 전신인 크메르 제국의 역사가 있기 때문이다. 크메르 제국은 9세기부터 14세기에 이르기까지 강력한 군사력과 경제력을 바탕으로 대륙부 동남아시아에서 주도권을 장악했던 나라이다. 또한 크메르 제국은 문화 예술 강국으로, 제국에서 발전된 문화는 주변국들의 문화적 기틀 형성에 큰 영향을 미쳤다. 비록 크메르 제국은 15세기 이후 쇠락하며 역사 속으로 사라졌지만, 캄보디아에 많은 것들을 남겼다. 제국이 남긴 유산은 앙코르 왓 만이 아니었다.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 저변에 깔려있는 문화적인 요소들 또한 크메르 제국이 남긴 ‘유산’ 것이다.    

  

필자는 2008년부터 앙코르 유적을 연구하며 캄보디아에서의 생활을 통해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상에 대해 접하고 알 수 있는 기회를 얻었다. 본 연재를 통해 캄보디아 사람들의 생활 속에 담겨있는 문화, 특히 ‘앙코르가 품은 동물들’이라는 주제로 캄보디아의 문화와 민속, 예술과 철학을 살펴, 캄보디아가 가진 높은 문화의 힘에 대해서 생각해 보고자 한다.


코끼리를 활용한 전쟁 장면(바이욘 사원 부조벽화) ⓒ 박동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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