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동희 Jan 30. 2023

#10 크메르 사원의 수호자 '타오'

앙코르가 품은 동물들

캄보디아의 강아지들


마당에서 낯선 사람에게 짖어대는 개의 모습은 어느 곳에서든 흔히 볼 수 있는 모습이다. 개의 가축화가 시작된 수 만년 전부터 인류는 그 특성을 살려 집을 지키는 동물로 이용해 왔다. 이 모습은 상징화되어 네 발 달린 짐승이 집을 지키는 형태로 많은 중요 건축 장식에 반영되었다. 세계 각국에서 유사한 사례를 쉽게 찾아 볼 수 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에는 해태, 중국 사자상, 일본의 코마이누 등을 들 수 있을 것이다.


집 앞을 지키는 세계의 다양한 성수상들 [한국,일본, 미얀마, 인도, 인도네시아] (좌상, 우상: 위키피디아)


크메르 사원 건축에서도 사원을 지키고 있는 성수의 모습을 찾아볼 수 있다. 바로 '타오(Tao, តោ)'이다. 타오란 크메르어로 사자를 뜻한다. 산스크리트어에서 기인한 '싱하(សិង្ហ)'라는 단어로도 불린다.


프레럽 사원과 타오


타오의 형태를 자세히 살펴보면 커다란 머리와 동그랗게 부릅뜬 눈, 날카로운 송곳니, 나선형으로 말린 머리 갈퀴, 개와 같은 형태로 앉은 동물의 모습, 근육이 발달한 가슴과 다리, 날카로운 발톱을 가지고 있다. 하나하나의 특징들은 사자가 맞는데, 조합해서 보면 사자와는 사뭇 다르다.



(좌) 피미아나카스 사원의 타오, (우) 타프롬 사원의 타오


타오가 왜 이런 모습을 하게 되었는지는 크메르 사원을 건축했던 고대 조각가의 입장에서 생각해 보면 쉽게 이해가 간다. 캄보디아는 사자가 없는 지역이었기에, 조각가들은 한 번도 본 적이 없었던 동물을 그려내야 했다. 그들에게 타오란 나가나 가루다와 같이 상상의 동물이었다. 즉, 앞 세대 조각가들이 남긴 타오 조각을 흉내 내거나 경전이나 힌두교 사제가 들려주는 타오의 특징을 참고 삼아 표현해야 했다. 그럼에도 참고자료가 필요했을 것인데, 평소 가까이에서 보던 집 지키는 네 발 짐승인 '개의 특징'을 참고하였을 것이다.


프레아 비히어 사원의 타오상


캄보디아에 타오 조각이 등장한 것은 크메르 사원 건축과 시작을 함께한다. 인도에서 어느 정도 형태를 갖춘 사원 건축의 방식이 크메르에 전달되면서 함께 건너온 것으로 보인다.


(좌) 크메르 초기의 타오 조각 (삼보 프레이 쿡 프라삿 타오 사원), (우) 콤퐁톰 박물관의 타오 조각


7~8세기(프레 앙코르기) 크메르 사원이 밀집된 삼보 프레이 쿡 사원 군에는, 거대한 타오 조각으로 사원의 네 방향의 입구를 장식한 사원이 있다. 타오 조각은 아래에 놓인 계단까지 포함하여 하나의 사암덩어리를 통째로 조각하여 만들었다. 이 특징적인 타오 조각의 모습에 사람들은 이 사원을 '프라삿 타오(Prasat Tao, 타오 사원)'라고 부른다. 이 사원의 타오가 초기 형태의 가장 대표적인 사례이다.


삼보 프레이 쿡 프라삿 타오의 타오상


초기의 타오는 후대의 타오에 비해 머리가 크고 짧은 몸통을 가지고 있다. 얼굴이나 몸통의 형태가 모두 둥글다. 다리는 짧고 굵다. 머리갈퀴는 나선형으로 말려있는데, 길고 입체적이다.  


(좌) 프레아 코 사원의 타오, (우) 바콩 사원의 타오


앙코르기가 시작한 9세기에도 초기의 모습을 많이 간직하고 있다. 프레아 코 사원이나 바콩 사원에 있는 타오를 보면, 프레앙코르기의 타오에 비해 약간 각진 얼굴과 단순화된 갈퀴를 볼 수 있지만, 여전히 큰 머리와 짧고 굵은 다리를 유지하고 있다.


(좌) 프레룹 사원의 타오, (우) 피미아나카스 사원의 타오


타오의 형상은 10세기를 지나 후대로 갈수록 점차 변화한다. 점점 몸체가 날씬해지고 머리가 작아진다. 다리도 길어지고 자세도 앉아있는 모습에서 엉덩이가 땅에서 떨어진 형태로 바뀐다. 갈퀴 장식의 표현도 점차 단순화한다. 12세기 앙코르 왓의 타오와 초기의 타오를 비교 해 보면 전혀 다른 문화권의 작품으로 보일 정도이다. 시기에 따라 변화하는 타오의 모습은 앙코르 보존소(Angkor Conservation)에서 한눈에 볼 수 있다.


(좌) 앙코르 왓의 타오, (우) 앙코르 보존소에 보관된 각 시기별 타오들


타오는 사원의 문지기로만 사용되지 않았다. 사원 곳곳이 타오 모양으로 장식되었다. 사원의 입구 머리 위를 장식하는 린텔, 기와의 마감부인 막새 등에 흔히 사용되었다. 크메르 건축은 끝없이 이어진 덩굴 문양으로 벽면을 많이 장식하는데, 타오가 이 식물문양을 들어 올리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때때로 타오의 몸통이 식물로 변화하여 이어지는 형태도 많이 사용되었다. 타오는 단순한 수호자의 성격에서 점차 액운을 막는 벽사로서의 상징을 가지게 된 듯하다.


크메르 사원 곳곳에서 볼 수 있는 타오 조각


타오는 힘센 동물의 의미도 가진다. 코끼리테라스나 콤퐁스바이의 프레아칸에서는 기단의 측면이 동물들로 장식되어 있다. 여기에 날짐승의 왕인 가루다와 들짐승의 왕인 타오가 건물을 땅으로부터 들어 올리고 있는 듯한 모습으로 조각되어 있다. 이는 건물 혹은 그 위에 있는 신성한 존재를 더러운 땅에서 들어 올리고 있는 표현이다.


(좌) 코끼리테라스의 타오와 가루다 장식, (우) 콤퐁 스바이 프레아칸 기단부 장식


앙코르에서 타오가 가지는 중요성이 높은 만큼 '앙코르가 품은 동물들'의 열 번째 동물로 아껴두었다가 이제서야 풀어내었다. 사원에 조각된 비율로 보았을 때, 타오는 나가와 함께 앙코르에서 가장 많이 조각된 동물이다. 그만큼 중요한 의미를 가진 동물이자 고대 크메르인들에게 사랑받은 동물이었다.


타오가 모는 전차를 탄 영웅/신 (앙코르 왓)


참고문서


김보배, "어흥" 해치가 돌아왔다., 문화유산 채널 한국문화재재단, 2010 [link]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