땅거미가 지는 검은 강물 속으로 물소가 유유히 걸어 들어간다. 캄보디아에서 해질 무렵에 흔히 볼 수 있는 풍경이다. 소들은 해가 지면 부지런하게 집으로 돌아가기 바쁘지만, 물소들은 항상 더 늦게까지 머문다. 자신들의 시간을 조금 더 즐기려는 듯하다.
석양이 지는 물가의 물소들 ⓒ Pixbay
힌두교에서 물소는 저승을 상징하기에 보고 있으면 괜히 무서운 느낌이 든다. 그래서 어둠이 내린 물가를 거니는 물소의 모습은 경건하게 느껴지다가도 한편으로 섬뜩하기도 하다. 물소들의 모습은 마치 오늘이라는 한 우주가 또다시 끝났음을 알리는 죽음의 의식을 치르가 싶다.
길 가의 물소들 ⓒ 박동희
고대 크메르인들이 물소를 어떻게 생각했을까? 앙코르 왓의 부조 벽화를 통해 힌트를 얻을 수 있다. 앙코르 왓 부조 벽화 회랑의 남측 동편에는 천국과 지옥의 모습을 그린 부조 벽화가 있다. 60미터에 이르는 벽화는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이어지는데, 왼쪽에는 사후세계로 가는 사자들, 그리고 오른쪽에는 37개의 천국과 32개의 지옥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이 대형 벽화의 중앙에는 사후세계의 신이자 사자들의 심판관인 '야마(Yama)'가 그려져 있다. 야마는 사자들의 생을 꿰뚫어보고 평가를 하기에 저 세상에서는 절대적인 존재이다. 앙코르 왓의 조각가는 벽면에 물소를 타고 있는 야마의 모습을 근엄하면서도 위압감이 잘 드러나도록 표현했다.
앙코르 왓 부조 벽화에 그려진 물소 ⓒ 박동희
물소는 이야기의 진행방향인 오른쪽을 향해서 늠름하게 서있다. 물소는 야마보다 크게 그려져, 벽화의 주인공인 야마만큼이나 위압감을 풍긴다. 야마는 물소의 등 위에 윤왕좌를 틀고 앉아 심판을 내리고 있다. 편안한 자세이지만 결코 흐트러지지 않은 모습이다. 물소 주변으로 야마를 보필하는 집행관과 저승의 신하들이 가득 그려져 있다. 모두 물소보다 작게 그려져 있다. 야마가 타고 있는 물소도 다른 힌두신들의 마운트(신의 탈것)와 같이 야마를 대리하는 존재로 높은 격을 가지고 있는 것이다.
그런데 왜 힌두교에서 죽음의 신 야마가 하필이면 물소를 타게 되었을까? 보통 물소는 피부가 검고 거칠어 다소 무표정하게 느껴진다. 물소는 거대한 덩치를 이끌고 묵묵히 걸어간다. 아주 천천히 가지만 명확하게 목적지를 향해 앞으로 나아간다. 이런 모습이 언젠가 다가올 죽음과도 같이 느껴진 것일까?
인도 사람들은 물소를 무지의 상징으로 본다는 이야기가 있다. 사람들은 언젠가 죽음을 맞이 할 것임에도 마치 영원히 살 것과 같이 행동을 하는데, 사람들은 죽음을 맞이하고서야 야마의 물소를 보고 지난 삶의 어리석음을 깨닫는다고 한다.
캄보디아의 물소 ⓒ 박동희
그렇다면 캄보디아 사람들은 물소를 어떻게 생각할까? 기본적으로 소나 물소 모두 농사일에 동원된다. 농사를 짓는 친구의 말에 따르면 물소가 힘이 좋다고 한다. 대신 물소는 금방 지쳐서 소만큼 오래 일을 하지 못한다고 한다. 그리고 날씨가 조금이라도 더우면 힘을 못쓴다고 한다. 만약 황희 정승이 캄보디아에 놀러 와서 물소가 일을 잘하오, 소가 일을 잘 하오라고 물어봤다면, 캄보디아의 농부는 좀 다른 방향으로 대답을 했을 것이다.
농장에서 키우는 물소 ⓒ 박동희
그럼 물소도 먹을까? 정답은 '먹는다.'이다. 처음에 캄보디아 친구에게 들었던 이야기는 간혹 나쁜 사람이 싼 물소고기를 소고기라 속여서 파는 경우가 있다고 했다. 이 이야기를 통해 유추해본 결과 물소고기는 소고기보다 맛이 없고 싸다고 유추할 수 있었다. 그런데,물소고기를 육포로 먹을 기회가 있었는데, 결코 맛이 나쁘지 않았다. 오히려 좋았다. 그 후 육포를 먹을 땐 일부러 소고기 육포보다 물소고기 육포를 찾아서 먹게 되었다.
캄보디아 시장에서 파는 물소고기 육포 ⓒ 박동희
물소는 캄보디아에서는 흔히 볼 수 있는 동물이지만 한국에서 쉽게 볼 수 없는 동물이기에 더욱 신기하게 느껴진다. 혹시 캄보디아를 방문해서 물소를 본다면 사후세계 이야기를 한 번 생각해 보기 바라며, 혹 기회가 된다면 시장이나 술집에서 물소고기 육포를 드셔 보시기를 추천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