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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Mar 13. 2022

#08 캄보디아의 '소'는 너무 말랐군요!

앙코르가 품은 동물 이야기

[이 글은 2021년 7월 28일에 작성한  <캄보디아의 소 이야기>를 수정 보완한 글입니다.]


캄보디아를 다녀간 지인들로부터 자주 들었던 이야기 중 하나가, "캄보디아 소는 왜 이렇게 말랐어요?"이다. 다소 소 차별적인 발언이지만 캄보디아 소의 앙상한 갈비뼈를 보면 누구나 측은한 마음이 들기에 같이 고개를 끄덕이게 된다.


캄보디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소 ⓒ 박동희


그렇다면 캄보디아의 소는 왜 이렇게 말랐을까? 먹을 것이 없어서 그랬을까? 그건 아닌 것 같다. 예전의 소들은 어떠하였는지 모르겠지만 지금 캄보디아의 소들은 농사일에 동원되기보다 한가로이 풀을 뜯는 모습이 많이 포착된다. 또한 천혜의 자연환경을 가진 캄보디아이기 때문에 소들이 뜯어먹을 풀은 차고도 넘친다. 그렇다면 더워서 그런 것일까? 이 가설이 더 타당해 보인다. 더위에 잘 버티려면 두터운 살과 긴 털은 방해가 될 것이니, 동남아 기후에 적합하게 진화한 종이 캄보디아에서 볼 수 있는 소들의 주 종이 되었을 것으로 보인다.

 

조금 더 확실한 확인을 위해서 캄보디아 소의 종에 대한 전문적인 지식을 찾아보았더니 예상과 일치했다. 찾아본 자료의 요점은 다음과 같다.

캄보디아의 소는 인도에서 '제부(Zebu)'라고 부르는 '인도혹소'의 잡종이 대부분이다. 학명으로는 '보스 타우러스(Bos Taurus)'이다. 이 종의 특징은 등에 지방이 가득한 혹을 가지고 있으며, 귀가 처진 외형을 하고 있다. 그리고 강한 열과 햇빛에 강하다.  < 인터넷 자료 취합 >


요즘 소들은 농사짓는 일보다 먹는 게 일인 듯하다. ⓒ 박동희


캄보디아에는 해가 질 무렵이 되면 항상 소 떼들이 도로를 가로막는다. 소들도 집으로 돌아 가는 것이다. 보통 소 떼들 속에는 꼬마 아이 한 둘이 섞여 있다. 이 어린 목동들은 소보다 작아서 잘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소들은 의외로 꼬마 목동들의 말을 잘 듣는다. 수십 마리의 소들로 막혀있던 도로도 꼬마 목동들이 나서서 지휘를 하면, 일사분란하게 움직여 오래지 않아 열리게 된다.


길을 막고 있는 소 때 ⓒ 박동희


그런데 이 소 때들을 관찰하다 보면 꽤나 영특 모습을 볼 수 있다. 캄보디아의 시골 마을은 많은 경우 길을 따라 집들이 길게 늘어서는 식으로 형성되는데, 길을 따라가던 소들이 자기 집 앞을 지날 때가 되면 누가 알려주지 않았는데도 알아서 들어가는 것이다. 별 특별한 장면이 아닌데도 이런 풍경은 마음을 따뜻하게 만든다.


집으로 가는 길이 험난한 소들 ⓒ 박동희


캄보디아의 시골에서 집집마다 소를 키우는 이유가 있다. 예전에는 농사를 짓거나 수레를 끄는 용도로 사용되었던 이유가 컸겠지만 요즘엔 조금 다르다. 키우는 동안 새끼를 낳으면 마치 은행에 맡겨둔 목돈에 이자가 붙는 것과 같이 큰 이득이 된다. 즉 소를 키우는 것은 캄보디아 시골 농민들의 재테크 수단인 것이다.


(좌) 크메르 인들이 소를 사용해서 농사를 짓던 모습 ⓒ 박동희, (우) 농사에 동원된 소 ⓒ 박동희


캄보디아에서 소는 오래전부터 소중한 동물이었다. 우리나라에서도 예로부터 소에 대한 애정이 특별했던 것처럼, 농경이 중요했던 캄보디아에서도 소에 대한 고마움을 가지고, 소를 소중하 존재로 대하는 문화가 있었다. 게다가 인도에서 유입된 힌두교에서도 소를 중요시하였기에, 이러한 조건들이 일치되어 앙코르 유적에 소의 모습이 많이 남겨지게 되었다.


앙코르 유적에서 가장 쉽게 볼 수 있는 소의 모습은 사원 앞에서 앉아 기다리고 있는 소의 석상이다. 이는 시바신이 타고 다니는 소, '난디(Nandi)'이다.


난디 이야기

옛날에 실라다(Shilada)라는 현자가 있었다. 실라다는 시바신의 축복을 받은 아이를 입양하고 싶어 시바신에게 기도를 하였고, 시바는 곧 원하는 아이를 얻을 수 있을 것이라는 계시를 내렸다. 다음 날 실라다가 집 앞의 밭을 가는데, 빛나는 아기를 발견했다. 실라다는 이 아기가 시바신의 축복을 받은 아기임을 확신하였다. 실라다는 아기의 이름을 난디(Nandi)라 지었고, 베다를 비롯한 많은 지식을 전수하는 한편으로 사랑과 정성을 다해서 키웠다.

수년 후, 실라다의 집에 두 명의 현자 미트라(Mitra)와 바루나(Varuna)가 방문하였다. 실라다와 난디는 두 현자를 정성껏 모셨다. 시간이 흘러 두 현자가 실라다의 집을 떠나게 되었을 때, 마지막으로 난디에게 축복을 내리려고 하였다. 난디는 두 현자의 발 앞에 엎드려 있어 보지 못하였지만, 실라다는 두 현자의 표정이 좋지 않았음을 눈치챘다. 그리고 두 현자를 따라가 연유를 여쭈었다. 두 현자는 난디가 훌륭한 재목이기는 하지만 오래 살지 못할 것이라는 말을 하였다.

실라다는 사랑스러운 아들이 요절할 것이라는 이야기에 패닉에 빠졌고 크게 상심하였다. 그리고 이 문제를 고민하다가 아들 난디에게 전했다. 크게 상심하고 슬퍼할 줄 알았지만, 오히려 난디는 자신은 시바신의 축복을 받았기 때문에 시바신께서 해결해 주실 것이라며 담담히 말하였다.

난디는 시바신을 만나기 위해 부바나(Bhuvana) 강으로 가 고행을 시작했다. 난디의 고행과 집중이 매우 훌륭하여 시바신은 곧 난디 앞에 현신하였다. 시바신은 난디에게 무엇을 바라는지 물었다. 난디는 '저는 시바신과 영원히 함께 하고 싶습니다.'라고 말하였다. 그러자 시바는 '내가 여행할 때 함께 하던 황소를 방금 잃어버렸다. 그러니 난디 너는 소의 얼굴을 하게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나의 집 카일라사에서 함께 할 것이고, 나의 모든 가나(Ganas)들의 수장이 될 것이다. 그리고 너는 영원히 나의 동반자이며, 나의 탈 것 그리고 나의 친구가 될 것이다.

그 후 난디는 소의 모습을 하게 되었고 항상 시바신과 함께 하게 되었다. <난디의 탄생 이야기 요약>  


프레아 꼬 사원의 돌로 조각된 소, 난디 ⓒ 박동희


위의 사진은 프레아 코 사원의 정면에 놓여있는 난디 석상이다. 난디가 사원 앞에서 기다리고 있는 모습을 통해 사원 안에 시바신이 있다는 것을 간접적으로 나타낸 것이다. 이러한 표현 방식은 인도에서부터 유래한 것으로 대다수의 시바 사원에서 공통적으로 볼 수 있다.


앙코르에 그려진 소의 모습은 비슈누의 화신 중 하나인 크리슈나(Krishna)의 활약상에서도 자주 등장한다. 고대의 어떤 마을에서 인드라 신을 충분히 숭배하지 않자 인드라는 7일간 이어진 폭우를 쏟아 마을을 범람시키려고 하였다. 이에 목동이었던 영웅 크리슈나는 고바르다나(Govardhana) 산을 한 손으로 가볍게 들어 올려 인드라 신의 폭우를 막아내었고, 마을을 구했다는 이야기이다. 이 장면의 묘사를 살펴보면 크리슈나 신이 보호하고 있는 대상은 사람들과 소들이다. 이 장면도 앙코르 유적 곳곳에서 종종 찾아볼 수 있는 장면이다.


고바르다나 산을 들고 있는 크리슈나(앙코르 왓) ⓒ 박동희


앙코르 유적에서는 신화와 관련된 장면 외에도 일상생활에서 사용된 소의 모습도 볼 수 있다. 아래의 두 사진은 각각 바이욘 사원과 바푸온 사원의 벽화에 그려진 우마차를 활용하고 있는 고대 크메르인들의 모습니다.


(좌) 우마차를 활용하는 고대의 크메르인들[바이욘], (우) 우마차를 활용하는 고대의 크메르인들[바푸온] ⓒ 박동희


이와 같이 고대의 크메르인들은 소를 중요하게 생각하였다. 그렇다고 캄보디아에서 소를 먹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하면 오산이다. 오히려 소를 이용한 요리가 정말 다양하게 발전되어 있는데, 소를 이용한 요리에 역사와 전통이 담겨 있음을 느낄 수 있을 정도이다.


필자가 가장 좋아하는 캄보디아식 아침 메뉴 '커 꼬(소고기 스튜)', 쌀국수 중에 가장 많이 팔리는 '꾸이띠우 싸잇 꼬(소고기 쌀국수)', 크메르 요리에 익숙지 않은 외국인들이 가장 좋아하는 크메르 요리인 '록 락 싸잇 꼬(소고기 스테이크)', 산으로 올라간 소라는 특별한 이름을 가진 '꼬 라응 프놈(소고기 바비큐)', 맥주와 딱 어울리는 '싸잇 꼬 쯔루어(소고기 꼬치구이)''싸잇 꼬 응이읏(소고기 육포)' 등, 캄보디아에는 나열하자면 끝없는 종류의 소고기 요리들이 있다.


(좌) 록락 싸잇 꼬 ⓒ  Wiki(CC BY-SA 4.0), (우) 꾸이띠우 싸잇 꼬 ⓒ 박동희
(좌) 미 커꼬ⓒ 박동희, (중) 싸잇 꼬 쯔루어ⓒ 박동희, (우) 싸잇 꼬 응이읏 ⓒ 박동희


이 중에서 하나만 소개하라면, '꼬 라응 프놈'을 소개하고 싶다. '싸잇 꼬 프놈 플릉(화산 소고기)'이라는 별칭으로도 불린다. 이 요리는 우리나라의 신선로와 닮아있는데 많이 다르다. 중간이 솟아오르고 주변으로 홈이 둘러진 불판에 육수를 붓고 고기를 구워 먹는다. 육수에는 야채를 넣고 천천히 익혀 먹는다. 그런데 고기를 굽다 보면 흘러나온 육즙이 자연스럽게 육수와 어우러진다. 점점 깊어져 가는 수프의 맛을 즐기는 것이 묘미이다. 그리고 이 요리는 고기와 야채를 구이와 국으로 동시에 만끽할 수 있는 관대한 요리이다. 마지막에는 면을 넣어서 먹기도 한다. 한국인들의 입맛에도 딱이다.


싸잇 꼬 프놈 플릉 ⓒ 박동희


한편, 캄보디아의 전통 공연 중에 '스바엑 톰(Sbek Thom)'이라는 그림자극에도 소가 활용된다. 정확히 말하자면 활용되는 것은 소가죽이다. 스바엑 톰은 전통 공연으로서 그 가치를 인정받아 2008년에 일찍이 유네스코의 인류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었다. 유네스코의 등재 평가 설명에 따르면 스바엑 톰은 앙코르 시대 이전부터 이어져 온 공연이라 한다. 원래는 왕실에서 거행한 신성한 의식이었지만, 15세기 이후 앙코르 왕조의 몰락과 함께 일반 대중들을 향한 공연 예술로 발전하였다고 한다. 1980년대 크메르 루즈의 집권 시 거의 소멸될 뻔하였으나, 현재 소수의 극단에 의해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스바엑 톰 공연 장면 ⓒ 박동희


그림자극의 무대에는 객석과 공연장 사이에 넓고 긴 흰색 천막을 펼쳐 새운다. 그리고 무대 뒤로 거대한 모닥불을 피운다. 천막 뒤에서 소가죽에 구멍을 뚫어 만든 패널을 천막에 가져다 대었을 때, 또렷하게 생겨나는 그림자를 이용하여 장면을 만들어 낸다. 이와 함께 수 명의 악단이 전통악기를 연주하여 배경음악을 깔고, 소리꾼이 음률을 넣어 이야기를 전개해 나가는 방식이다.


스바엑 톰에 사용되는 소가죽 공예 ⓒ 박동희


공연은 적어도 1시간, 길게는 10시간 이상 이어진다고 한다. 쉴 틈 없이 이야기를 이어나가야 하는 소리꾼에게도 힘든 공연이지만, 뜨거운 장작불이 바로 뒤에 있기에 그림자를 만드는 사람에게도 여간 힘든 일이 아니다. 극단은 고생은 고생대로 하지만, 티브이나 인터넷 등에서 볼거리가 넘쳐나는 요즘에는 찾는 사람도 없어,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르면 사라져 갈 수밖에 없어 보이는 무형유산이다.


삼보 프레이 쿡 유적이 있는 숲 속의 소들 ⓒ 박동희


캄보디아의 소에 대해서 외국인에 시각에서 얕게나마 살펴보았다. 짧은 식견으로 풀어보았음에도 다양한 이야깃거리가 쏟아져 나왔다. 농경에서 시작하여 종교와 사원 건축, 식문화와 전통공연에 이르기까지 다양한 분야에서 소는 문화적으로 밀접한 관계를 가져왔음을 알 수 있었다. 분명 캄보디아의 소에 대한 부분은 충분히 매력적인 주제로 보인다. 하지만 그 중에는 시대적 요구에 따라 스스로 활성화되고 있는 부분도 있고, 반면 사장 길로 접어들고 있는 부분도 보인다. 아마도 캄보디아 정부와 전문가들 차원에서 이와 관련된 문화적 요소를 정리하고 다듬어서 보존, 활용한다면 캄보디아의 훌륭한 문화적 자산이 되지 않을까 생각된다.


참고자료

SA Krishnan, Story from hindu mithology, internet blog [lin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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