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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Dec 10. 2022

'앙코르 이야기' 출간

크메르 문명의 정수, 앙코르의 630년을 다룬 교양 도서


박동희, 돌을 읽어주는 남자다.


앙코르 왓 회랑에 서면 거미 꽁무니에 줄 나오듯 술술 나온다. 높지도 낮지도 않은 목소리가 돌에 공명이 되어 ‘소리 멍’이 되고, 석벽에 새겨진 낯선 신화들이 맥락에 따라 거미줄처럼 엮이게 한다. 섬세한 조각에 고개를 밀다가도 이내 뒤로 젖혀 전체를 조망하는 균형 잡힌 자세로 되돌아온다. 아마 평생 굽지 않고 꼿꼿하게 돌을 읽어낼 것이다.


2018년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으로 ODA(공적개발원조)의 현장인 앙코르 유적지에서 처음 만났다. 앙코르에 관심이 많다 했더니, 대뜸《라마야나》를 권했다. 인도에서 온 이 이야기에 고대 크메르인들은 울고 웃었기에, 앙코르를 이해하려면 읽어야 한다 했다. 또한 지금의 동남아시아 사람들의 뿌리에 라마야나의 철학이 있기에, 동남아시아를 이해하기 위해서도 꼭 읽어야 할 고전이라고 덧붙였다.


재단의 현장은 앙코르 톰 내 프레아피투 사원의 T사원이었다. 저자는 T사원은 프랑스가 식민지로 지배하던 때 임의로 붙인 이름이니 현지인들이 부르는 ‘까오썩(출가를 위한 삭발) 사원’이라 부르는 것이 좋다고 했었다. 그렇게 그들의 관점으로 그들의 선조들이 이룬 앙코르 문명을 대하고 있었다. 재래시장에서는 그들이 먹는 식재료를 그들의 말로 흥정하며 잔돈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관광객을 맞아본 적 없는 그들의 식당으로 이끌었다.


마지막 날, 전구가 흔들리던 술집이었다. “앙드레 말로, 혹시 그 앙드레 말로, 세상에! 앙드레 말로가 도굴을?” 나는 미심쩍어 다시 물었다. “예.” 스포일러가 될 수 있기에 멈추고 요약하면, 야자수 이파리에 죽필로 기록한 역사는 사라지고, 석축 건물은 무너져 유출되었고, 복원하던 자료들은 크메르 루주에 의해 잿더미가 된 것이다. 나는 저자에게 잔을 부으며 집필을 권했다. “앙코르는 밝혀진 사실보다 밝혀지지 않은 것이 더 많아 책으로 정리하기 어렵지만, 노력해보겠습니다.” 저자는 크지도 작지도 않은 목소리로 길게 답했다.


앙코르 유적은 각국의 명예를 건 문화유산 복원 올림픽의 현장이다. 후발주자인 우리나라의 첫 프로젝트가 저자의 업무였다. 마침내 프레아피투 까오썩 사원의 테라스 복원을 이뤘고 캄보디아 국왕의 훈장을 받았지만, 하루하루가 치열하고 숨 가빴을 것이다. 낮에는 밀림 속 전쟁에 참전한 용사였으며, 밤에는 종군기자처럼 타이핑을 했으리라. 그렇게 4년이 지난 후, 내게 책이 도착했다. ‘아! 이 남자, 드디어 돌을 요리했구나.’


『앙코르 이야기』, 참 무르익은 이야기다.


앙코르에 골고루 칼집을 넣어 노릇노릇하게 익혔다. 거기에 캄보디아의 명물인 후추 알갱이를 얹은 것처럼 톡톡 터진다. 앙코르 왓밖에 모르는 우리에게 거대한 앙코르 문명을 이야기한다. 앙코르 톰과 밀림 속의 사원들, 그리고 국경을 넘어 라오스와 태국까지 내왕하며 앙코르 유적과 크메르 제국의 연결망이던 고대길을 들춰낸다. 영광의 시절, 모든 길은 앙코르로 통하고 있던 것이다. 정갈하게 닦은 문장이지만, 제국의 흥망을 다룬지라 쓸쓸한 유머도 숨어 있다.


저자가 직접 찍은 사진을 보면 우기(雨期)의 앙코르 유적 앞에 선 것 같다. 날마다 그날 분량의 폭우가 쏟아지고 나면 풀빛이 그럴 수 없이 푸르다. 그렇게 환해진 앙코르를 섬세하게 인화했다. 그리고 건기(乾期)의 관광객이 썰물처럼 빠지면 비로소 보이는 그들만의 삶을 우정어린 시선으로 포착하고 있다.


이 책의 반은 전문서이고 반은 대중서이다. 확연히 나누면 분철될까 봐 골고루 잘 섞어놓았다. 그래서 앙코르에 다가서는 최적의 책이 될것이다. 누구라도 펼쳐 들면, 단체관광에서 빠져나와 홀로 배낭을 메고 폐허마저도 아름다운 문명의 오솔길을 걷게 될 것이다.


내 책장에는 «라마야나»가 꽂혀 있다. 동북아시아 ‘삼국지 7권’의 세계에서 동남아시아 ‘라마야나 7장’의 세계에 입문한 것이다. 이제 옆에 『앙코르 이야기』를 꼽아둘 것이다. «라마야나»를 권해준 저자에 감사하고, 풍찬노숙과 발품으로 앙코르(Angkor) 문명을 탈고한 노고에 노래가 끝난 명가수에 붙이는 앙코르(encore)를 외치며 갈채를 보낸다.


진옥섭 (전 한국문화재재단 이사장)


'앙코르 이야기' 추천사 중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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