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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Mar 30. 2024

부처를 약속받은 자 '수메다'이야기

간다라 이야기 #15

간다라의 불교 유물을 많이 보관하고 있는 박물관을 둘러보다 보면, 부처님 앞에 한 사람이 엎드려 있는 부조 조각이 눈에 들어온다. 이 장면을 그린 유물들이 한둘이 아니다. 도대체 무슨 장면일까? 조각에 담겨있는 이야기의 배경이 궁금해진다. 


페샤와르 박물관에 전시된 디판칼라 자타가 부조벽화들


한 유물을 통해서 자세히 살펴보자. 아래 사진은 라호르 박물관에 전시 중인 이 유형의 부조 벽화 중 상세를 살펴보기 좋은 한 사례이다. 장면의 한가운데에 부처로 보이는 사람이 서 있다. 화면의 왼편에는 어떤 사람이 엎드려 있다. 엎드린 사람은 자신의 긴 머리카락을 바닥에 깔고 있고, 부처는 그의 머리카락을 밟고 있다. 


디판칼라 자타카 장면이 조각된 부조벽화(라호르 박물관)


이는 '디판카라 자타카(Dipankara Jataka)'라는 이야기의 장면이다. 내용은 다음과 같다.


아주 옛날 수메다(Sumedha)라는 브라만이 있었다. 그는 자신이 사는 나라에 디판칼라 부처님이 방문한다는 사실을 듣고 매우 기뻐했다. 수메다는 부처님께 꽃을 드리고 싶었지만, 왕이 모든 꽃을 사 버린 뒤였다. 난처해하던 중 수미타라는 여자아이를 만 연꽃을 얻었다. 꽃을 구한 수메다는 디판칼라 부처님의 행사를 찾았고, 연꽃을 공양할 수 있었다. 그런데 디판칼라 부처님이 걸어 길 진흙 웅덩이가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다. 이에 수메다는 자신의 머리카락을 진흙 위에 깔아 부처님의 발이 더러워지는 것을 막았다. 그러자 디판칼라 부처님은 수메다에게 예언을 내렸다. "4 아승지 하고도 10만 겁 뒤, 수메다는 코살라국에서 싯다르타라는 이름의 왕자로 태어날 것이며, 깨달음을 얻어 부처가 될 것이다."


* 다판칼라 자타카는 한자문화권에서 연등불수기(燃燈佛授記)라는 이름으로 알려졌다. 디판칼라는 연등불, 보광불, 전광불, 제화갈라보살과 같은 여러 가지 이름으로, 수메다는 선혜선인(善慧仙人)이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라호르 박물관에 전시된 디판칼라 자타가 부조벽화들


파키스탄의 많은 박물관에서 디판칼라 자타카의 장면을 담은 유물을 쉽게 볼 수 있다. 이 야야기를 담은 유물이 다는 것은 이 이야기는 당 중요시되었던 이야기라는 뜻이다. 디판칼라 자타카가 불교에서 가지는 종교적 의미도 크겠지만, 부처님의 전생 이야기들의 묶음인 '자타카(Jataka)'에 있어서 이 이야기가 지는 중요성은 크다.


자타카 547가지의  부처님의 전생이야기로 구성된다. 반복되는 환생 속에서 다양한 보시와 현명한 삶의 방식을 보여주는 일종의 교훈집과 같다. 여러 자타카 중 디판칼라 자타카에서 수메다는 4 아승지 10만 겁 뒤에 부처가 될 것이라는 약속을 받았다. 이 말인 즉, 어마어마한 시간 동안 환생을 거듭하면서 보시를 쌓아나갈 것이라는 의미로 자카타 이야기의 시작을 알리는 것이다. 이를 증명하는 한 사례가 있다. 라호르 박물관에 소장 중인 시르키 출토 스투파에는 열 세 장면의 불전이 조각되어 있다. 그중, 첫 번째 장면으로 디판카라 자타카가 조각되어 있다. 이는 디판칼라 자타카 이미 간다라 당시로부터 자타카의 프롤로그 격으로 사용되었다고 보여주는 사례이다.


시르키 출토 스투파와 첫 번째로 조각되어 있는 디판칼라 자타카(라호르 박물관)


디판칼라 이야기를 담은 유물들은 간다라 지역에서 집중적으로 확인된다. 하지만 간다라가 아닌 지역에서도 종종 확인된다. 아래의 사진들은 간다라의 밖에서 확인된 디판칼라 자타카이다. 왼쪽으로부터 아프가니스탄 카불(간다라에 포함시키기도 함)에서 출토된 사례, 서역이라고 불리던 곳 중 하나인 베제클리크 15굴 벽화에 그려진 사례, 남송시대에 그려진 사례이다. 표현기법이나 디테일은 모두 다르지만, 핵심적으로 전달하고 있는 맥락이 닮아 있는 점이 흥미롭다. 이 유물들이 출토된 지역은 중앙아시아, 서역, 중국으로 이른바 대승불교의 확산라인에 있는 장소들이다. 다만 인도 본토나 동남아시아에서 이 이야기는 찾아보기 어렵거나, 나온다 하더라도 시대가 뒤떨어진다. 이런 분포 양상을 통해서 생각해 보면 디판칼라 자타카는 간다라에서 만들어진 이야기라는 것을 생각할 수 있다.


(좌) 카불 출토 디판칼라 자타카, (중) 베제클리크 15굴 벽화, (우) 남송시대에 그려진 디판칼라 자타카 [출처: 인터넷]


자타카 이야기 중에서 많은 수가 간다라에서 만들어졌다. 2화에서 설명한 찬드라프라바 자타카나 4화에서 이야기한 마하사트바 자타카의 경우, 간다라의 특정지역을 지칭하고 있기에 간다라에서 만들어졌음을 쉽게 알 수 있다. 이런 이야기가 만들어진 배경에는 간다라의 성지화라는 목적이 있다. 간다라는 불교가 융성했던 지역임에도 싯다르타가 생전에 방문한 적이 없었기에 당시의 사람들은 일종의 콤플렉스가 있었을 것이다. 이에, 싯다르타의 전생 혹은 과거의 부처를 연관시켜 간다라를 성지화 하고자 한 것이다.


다만 디판칼라 자타카의 경우 상황이 조금 다르다. 성지화보다는 부처에 대한 신비주의적이거나 정당성의 부여 혹은 신격화의 목적이 느껴진다. 이 배경에는 종교의 성격변화와 관련성이 커 보인다. 인도에서 탄생한 원시불교는 간다라에서 대승불교로 거듭나면서 종교성이 커졌다. 이 과정에서 종교적인 색채가 강한 일종의 신화가 필요해졌을 것이다. 불교라 불리는 종교는 시대와 지역을 거치면서 변화해 나갔다. , 디판칼라 자타카에 간다라에서 형성된 대승불교의 요가 담 있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이 유물을 보면 더욱 의미가 크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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