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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Jun 22. 2024

부처님의 경호원이 된 '헤라클레스'

간다라 이야기 #25

'헤라클레스', 그리스 최고신 제우스가 최강의 인간을 만들자고 작정하고 만든 영웅인 만큼, 헤라클레스는 그리스 신화에서 가장 강한 영웅으로 묘사된다. 이 영웅의 명성은 동서양을 막론하고 일찍이 세계로 퍼져나갔다. 2천 년 전 간다라에도 그의 명성이 닿았다. 흥미롭게도 고대 간다라의 사람들은 헤라클레스를 부처님의 경호원으로 받아들였다.


붓다를 보필하고 있는 바즈라파니 (상좌: 페샤와르 박물관, 나머지: 라호르 박물관)
붓다를 보필하고 있는 헤라클레스(탁실라 박물관) (좌) 전체 (우) 확대


위 사진은 간다라에서 부처님을 경호하고 있는 헤라클레스의 모습이다. 불교에서는 '바즈라파니(Vajirapāṇi)'라고 부른다. 그 이유는 한 손에 번개를 상징하는 '바즈라'를 들고 있기 때문이다. 산스크리트어로 '바즈라'는 번개를 뜻하고 '파니'는 손을 뜻하는데, 합쳐서 '번개를 손에 든 사람'이라는 뜻이다. 모습을 보면 곱슬머리에 체형이 그리스에서 온 영웅을 닮아 있다.


(좌) 박트리아 시기에 발행된 헤라클레스 동전, (우) 사자 가죽을 쓰고 있는 바즈라파니(왼쪽 아래 인물) ⓒ British Museum / Jonathan Homrighausen


바즈라파니가 헤라클레스에서 기인했다는 점은 오래전부터 서양학자들을 중심으로 많은 연구 성과들이 누적되어 왔고, 대부분의 전공자들은 이를 인정하고 다. 기원전 2~3세기, 이 지역에서 발행된 동전에는 헤라클레스가 새겨져 있어, 이미 이 지역에 헤라클레스 이야기가 들어왔음이 명확하다. 미술사적으로도 헤라클레스의 상징인 사자 가죽을 쓴 남자가 바즈라를 들고 있는 유물도 확인되었다.


(좌) 간다라 출토 범천권청 조각(왼쪽 범천, 오른쪽 제석천) ⓒ Public Domain(www.artic.edu), (우) 바즈라를 들고 있는 석굴암 제석천 ⓒ 국가유산청


그런데 원래 인도에서 바즈라를 든 신은 '인드라'이다. 전쟁과 폭풍의 신이자 신들의 왕이라고 불리는 격이 매우 높은 신이다. 간다라에 전해진 불전에서도 인드라(제석천) 브라흐마(범천)의 이야기를 살펴 볼 수 있는데, 주로 깨달음을 얻은 붓다에게 설법을 요청하는 이야기에서 등장한다. 또한 여러 불전에서 인드라는 브라흐마와 함께 불법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였다. 하지만 붓다의 경호원과 같은 역할은 아니었다. 오히려 기존 불전에서는 그런 역할을 맡은 인물이 없었다.(바즈라파니는 쿠샨왕조 이전의 불경이나 불전에서는 등장하지 않았다.) 따라서 그리스에서 건너온 헤라클레스가 비어있던 부처님의 경호원에 쉽게 받아들여진 듯하다.


(좌) 벽을 무너뜨리는 데바닷다 © The Trustees of the British Museum, (우) 술취한 코끼리로 위협하는 데바닷다 ⓒHuntington Archive


쿠샨왕조 시기부터 등장하기 시작한 바즈라파니는 폭발적인 인기를 얻었고, 부처님 이야기에 원래부터 있었던 것처럼 등장하게 되었다. 바즈라파니는 붓다의 일대기에 골고루 등장하게 되었다. 붓다의 옆에 항상 붙어다니며 경호를 하고 있는 모습으로 그려진다. 특히 부처님을 해하고자 했던 데바닷타가 벽을 무너뜨리는 장면이나 술 취한 코끼리 나라기리를 보내는 장면을 보면 바즈라파니의 역할이 명확히 드러난다. 


부처님께 귀의하는 알파랄라 나가라자(페샤와르 박물관)
부처님께 귀의하는 알파랄라 나가라자(Chandigarh Museum) ⓒAMERICAN INSTITUTE OF INDIAN STUDIES


심지어 불전의 중요한 역할을 부여받기도 한다. 스왓지역에 전해지는 불전 '용왕 알파랄라(Alpalala)' 이야기에서는 사람들을 괴롭히는 알파랄라 용왕을 붓다를 대신하여 벌을 내려 불교에 귀의하게 하는 역할을 한다. 이와 같이 쿠샨이후에 만들어진 불교 이야기에서는 바즈라파니가 자연스럽게 동행하게 되었다. 그리고 이는 금강역사라는 이름으로 동아시아로 전해진다.


(좌)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 바즈라파니(이슬라마바드 박물관), (우) 부처님의 설법을 듣고 있는 바즈라파니(라호르 박물관)


지난 편의 아틀라스 이야기와 같이 헤라클레스도 간다라에서 선별적으로 수용한 그리스 문화 중 대표적인 사례이다. 문화의 전파 단계에서 외부에서 유입된 요소에 대응할 만한 것이 없다면, 한 번에 깊숙하게 수용된다고 한다. 이번 글에서 다룬 공석이었던 붓다의 경호원에 헤라클레스가 쉽게 자리를 잡은 상황이 여기에 해당되는 사례가 아닌가 싶다.



참고자료


K. Tanabe, 'Why is the Buddha Sakyamuni accompanied by Hercules/Vajrapani? Farewell to Yaksa-theory', "East and West", 55, 2005, pp.363-81

Dr. Christine FRÖHLICH, "Migration, Trade and Peoples", The British Association for South Asian Studies, 2009

Joanna Homrighausen, 'When Herakles Followed the Buddha: Power, Protection, and Patronage in Gandharan Buddhist Art', "The Silk Road", 20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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