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박동희 Sep 08. 2024

현장법사(4) - 불교대학의 정점 '날란다'

간다라 이야기 #36

불교 역사에서 최고의 교육기관은 인도 동북부에 위치한 '날란다 대승원(那爛陀寺, Nalanda Mahavihara)'이지 않을까 싶다. 5세기에 건립된 날란다 대승원은 많은 학생들을 수용할 수 있는 대규모 기숙시설을 갖추고 있었던 일종의 기숙학교와 같이 운영되었다. 기록에 의하면 학생 수가 만 명, 매일 개최되는 강의는 100여 개에 달했으며, 과목은 불교뿐만 아니라 의학, 수학, 논리학 등 일반 학문도 포함되었다. 도서관은 9층 건물로 900만권의 장서가 보관되어 있었다고 전한다. 이와 같이 날란다 대승원은 본격적인 교육기관의 형태를 갖추고 있었다. 그래서 오래 전부터 '날란다 대학'이라는 이름으로도 불렸다. 13세기 말, 이슬람 세력에 의해 파괴된 이후 방치되어 잊혔다가, 19세기에 영국인 고고학자들에 의해 다시 발굴되었다. 2016년에는 유네스코 세계유산에 등재되었다.

1917년 ASI에 의한 날란다 대승원 발굴조사 ⓒ ASI



현장이 본 '날란다 대승원'


631년 현장법사는 날란다 대승원에 도착했다. 날란다 대승원을 직접 본 현장은 상당히 인상적이었던 듯하다. 현장은 날란다 대승원의 위상에 대해서 자세하게 기록하고 있다. 대당서역기 제9권에는 '승도는 수천 명이고, 외국에까지 유명한 승려가 수백이다.', '여기에서 유학했다고 허위로 말하며 다녀도, 어디서든 정중한 예우를 받는다.', '학식이 고금에 통달해 있는 자만이 비로소 입문할 수 있다.', '학문이 깊은 사람도 10중 7~8명은 물러나기 마련이다. 나머지 2~3명도 승중들의 질문 공세에 꺾여 그 명성을 실추당하지 않는 자가 없다.'와 같은 기록이 있다. 날란다에 들어가기 위해 외국에서도 줄을 설 만큼 들어가기가 하늘의 별 따기만큼 어려웠지만, 반면 여길 나오면 출세가도가 보장되어 있음이 짐작 간다.


또한 내역에 대해서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이곳은 부처님 사후 얼마 지나지 않았을 때 샤크라디탸라는 왕이 세운 가람이다. 이 가람에 대해 니르그란타라는 수행자가 예언을 하길 천년 간 번창하며, 학자들이 이곳에서 많은 성취를 얻을 것이지만, 건립 과정에서 용을 다치게 하였기에 피를 토하는 자가 많을 것이라 하였다.'라 전한다. 여기에서 피를 토하는 자가 많을 것이라는 것의 뜻은 피를 토할 만큼 공부를 시켰다는 뜻일까?


날란다 대승원 유적 ⓒ Wikipedia



현장의 범상치 않은 날란다 대학 입학


날란대 대학의 유학생 중 가장 큰 역사를 쓴 인물은 현장법사이다. 현장 본인에게도 여행 중에 얻은 성취 중 가장 큰 성취는 날란다 대승원에서 공부를 하면서 얻은 것들이 아닐까 싶다. 현장은 날란다에서 계현 법사(尸羅跋陀羅, Shīlabhadra)를 만나 정식으로 그의 제자가 되었다. 계현법사는 '유식학(모든 것은 마음에서 기인한다는 불교 교리)'의 토대를 세운 세친(Vasubandhu)으로부터 이어진 진자, 무성, 호법의 뒤를 계승한 정통 계승자였다. 애당초 현장이 여행을 떠난 이유도 유식학에 대한 갈구 때문이었고, 귀국 후에도 유식학을 바탕으로 법상종을 창시하였다. 그런 만큼 날란다에서의 경험은 특별하였다. 현장이 날란다에서 겪은 이야기는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 제3권에 자세하게 기록되어 있다.


현장은 날란다에 도착했을 때, 극진한 환대를 받았다. 자은전에는 '200의 승려와 1000명의 신자들이 영접을 나왔다.'라고 하는데, 현장은 날란다에 들어가기 이전부터 이미 인도의 불교계에서 인정받는 법사였음을 알 수 있다. 이어 현장이 날란다 대학의 총장과 만난 에피소드에서도 극진한 환대를 받았음을 알 수 있다. 에피소드는 다음과 같다.


날란다 대승원에 도착한 현장은 날란다 대학의 총장인 계현법사를 만났다. 계현법사는 중국에서 온 현장을 보면서 3년 전 이야기를 했다. 그는 풍병에 걸려 이십 년 간 고통을 참아왔지만 참지 못할 정도가 되어 몸을 버리고자 하였다. 그러자 꿈에서 미륵, 관음, 문수 세 보살이 나타나서 스스로 몸을 해한다고 한들 고통의 굴레에서 벗어날 수 없을 것이라 하였다. 그래서 계현은 어떻게 하면 벗어날 수 있을지 여쭈었다. 그러자 문수보살은 지금 지나국에서 당신에게 유가론을 배우기 위해 한 승려가 출발하였는데, 그에게 가르침을 주면 고통을 벗어날 것이라 하였다. 그리고 현장에게 여행을 언제 떠났는지 물어보았고, 출발일과 꿈을 꾼 날이 같음을 알았다.




현장의 대학 생활


현장은 날란다에 머무는 동안 특별 대우를 받은 듯하다. 자은전에는 현장이 공급받은 물자들이 언급되어 있는데 흥미롭다. '매일 섬보라 과자 120매, 빈랑자 20과, 콩약과 20과 용뇌향 1냥, 공대인미 1되, 달에 기름 세 되를 받고 연유는 충분히 공급받았다. 그리고 청소부 1명 바라문 1명을 붙여 일을 덜어주었고, 외출할 코끼리 수레를 타게 하였다.'라고 한다. 이러한 대우는 날란다에서 열사람 정도만이 받을 있었던 특혜라 한다. 기록 중, 공대인미라는 쌀에 대해서 언급이 인상적이다. 이 쌀은 콩보다 크고 쌀을 지으면 향기가 나고 맛이 좋은데, 마가다국 특산품으로 왕과 대인들만 먹을 있다 하여 '공대인미'한다는 설명이 있는데, 분명 현장법사의 입맛에 맞았는 듯하다. 어떤 쌀일지 궁금해진다.


현장은 5년간 날란다에 머물면서(도중에 외출이나 여행도 했다.) 시간이 아깝지 않을 정도로 공부를 했다. 날란다에서는 매일 같이 강의가 이루어졌다. '학승들은 대승뿐 아니라 소승을 겸하여 배웠고, 불교 외에도 힌두교 경전이나 수학, 의술 등도 배웠다.', '주객을 합쳐 만 명의 승려들이 있었다. 그중에서 경론 20부 해득할 수 있는 스님이 천명, 30부 해득할 수 있는 스님이 500명, 50부를 해득할 수 있는 스님이 자신을 포함해 10명이 있었다.'라고 기록한다. 아마도 현장은 이런 동료 학승들을 통해 더욱 증진할 수 있었을 것이다.


자은전에는 현장이 공부한 내용을 정리하고 있는데, '유가론, 중론, 백론을 각각 세 번, 인명론, 성명론, 집랑론은 각각 두 번, 순정리론, 현양론, 대법론을 각각 한 번씩 청강하였고, 구사론, 바사론, 육족아비담론은 이미 알고 있어서 의문 나는 점만 배웠다.'라고 한다. 경론뿐만 아니라 현장은 '범어(산스크리트어)'를 습득하였는데, 날란다 대학을 나갈 즈음에는 완전히 통달해서 인도인들과 자유롭게 논쟁을 할 수 있게 되었다 한다. 이 것이 추후에 귀국 후 수많은 경전을 번역할 수 있었던 힘이 되었을 것이다.



한반도에 전해진 날란다의 명성


날란다 대학에 입학하는 것은 현장 뿐 아니라 대부분의 구법승들의 꿈이었을 것이다. 우리나라의 승려 중에서도 신라의 아리야발마나 혜업이 날란다에서 공부를 했음을 알 수 있다(대당서역구법고승전). 다만 한반도 출신의 구법승 중 가장 유명한 혜초 스님은 날란다에서 공부를 하지 않은 듯 하다. 그가 쓴 왕오천축국전에 관련된 기록이 없는 것을 보면, 아마도 높은 문턱에 걸려 입학을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그 외에도 백제나 고구려, 통일신라를 지나 고려에 이르기까지 많은 승려들이 천축국으로 구법여행을 떠났는데, 아마도 그들 중 다수가 날란다에서 공부를 했을 것이다. 


한편 우리나라에서 날란다와 관련이 깊은 이야기가 있다. 바로 지공선사와 회암사이다. 지공은 고려말 조선초 한국 불교의 중심에 있었던 승려로 자신의 제자인 나옹, 무학과 함께 삼대화상이라 불리며 존경받고 있다. 기록에 의하면 지공은 마가다국의 왕자 출신으로 8살의 나이에 날란다 대승원에 들어가 불교를 배웠다고 한다. 그리고 지공이 양주에 회암사를 방문했을 때, 날란다 대승원과 닮았다며 크게 중창했다고 한다. 그런데 다소 애매한 부분이 있다. 날란다 대승원은 1193년 이슬람 세력화된 정부에 의해 완전히 파괴되었다. 지공은 그로부터 거의 100년 뒤인 1289년에 태어났다. 이런 기록으로 날란다 대승원이 파괴된 뒤에도 명맥을 유지했을 것이라는 견해도 있지만, 지공이 실제로 날란다에서 공부를 하지 않았을 수도 있겠다 싶다. 여기서는 지공선사의 학위에 대한 진위 여부와는 별개로, 이미 세상에서 사라진 날란다 대승원의 명성은 당시 우리나라에서는 건재했다는 점이 흥미롭다.


양주 회암사지의 지공선사 부도탑



참고자료

현장 저, 권덕주 역, "대당서역기", 올재, 2012

혜립 저, 김영률 역, "대당대자은사삼장법사전", 동국대학교한글대장경 [link]

신소연, 김민구 역, 샐리 하비 리긴스 저, "현장법사", 민음사, 2010

'날란다: 세상을 바꾼 대학', BBC 뉴스 코리아, 2023.2.26. [link]

주경미, '날란다의 불교유적과 구법승', "미술사와 시각문화", no.4, 2005, pp. 128-165  [link]

매거진의 이전글 현장법사(3) - 부처님의 8대 성지를 둘러보다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