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키스탄의 북동부 길깃(Gilgit) 지역에서는 오래전부터 독특한 풍습이 전해지고 있다. 바로 '마녀 사냥'이다. 길깃 지역은 실크로드의 주요 거점지역이라 말해지기도 하지만, 실상 험준한 산악지대로 외부와의 교류가 적고 폐쇄적이다. 또한 일 년 중 9개월은 겨울로 자연환경이 매우 척박한 편에 속한다. 혹독한 환경을 이겨내야 하는 만큼 여성의 사회적 권한이 제한되는 문화가 자리 잡게 되었고, 여성의 인권은 매우 낮았다. 이러한 배경에서 '마녀'라는 개념이 탄생했다.
마녀에 대한 개념은 유럽을 비롯한 세계 각지에서 발생했다. 어느 나라든 마녀라는 것이 실질적으로 저주를 건다거나 마술을 부려 사람들에게 해를 준다기보다, 이상한 행동을 하거나 사람들의 의심을 살 만한 약간의 행동만으로도 마녀로 낙인이 써졌다.
이러한 흐름은 길깃에서도 마찬가지였다. 예를 들어 치아가 심하게 삐뚤어졌다거나, 외모가 흉하다는 것 만으로 마녀라고 불렸고, 또한 밤을 무서워하지 않고 돌아다닌다거나 하는 행동도 마녀로 만들었다. 심지어 남자한테 대든다거나, 강한 의견을 표출하는 것도 마녀의 나쁜 영혼이 씌어서 나오는 행동이라 보았다.
카르가 마애불이 바라보고 있는 길깃의 한 마을
길깃에는 마녀와 관련된 흥미로운 설화가 전해진다. 옛날 이곳에 '야차니(Yachani)'라는 마녀가 살고 있었다. 마녀는 이 지역에 나무를 하러 온 남자들을 잡아먹었다. 두 명이 나무를 하러 오면 한 명을 먹고 다른 한 명을 풀어주는 식이었다. 점점 마을에 남자들이 줄어들자 사람들은 대책을 강구했다. 바그롯(Bagrot)에 사는 성자 다이얄 키미토(Daiyal Khimito)라면 야차니를 묶을 수 있다는 것이었다. 이에 불려 온 다이얄은 야차니가 사는 절벽에 못을 박으며 올랐다. 야차니를 만난 다이얄은 "슬프게도 당신의 형제가 카슈미르에서 죽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야차니는 슬퍼하며 손을 가슴에 올렸다. 다이얄은 야차니의 가슴과 손을 관통하여 쇠못을 박았다. 이어서 "슬프게도 당신의 아버지가 팔티스탄에서 죽었습니다."라고 말했다. 그러자 야차니는 남은 손을 허벅다리로 가져갔는데, 다이얄은 나머지 손과 허벅다리 또한 쇠못으로 박아버렸다. 임무를 완수한 다이얄은 훗날 자신이 죽으면 자신을 절벽 아래에 묻어달라 하였다. 그러면 야차니가 영원히 바위에 갇힐 것이라 하였다.
흥미로운 점은 길깃의 도시 서쪽 절벽에 조각된 마애불이 있는데, 마을 사람들에게 이 마애불이 야차니가 갇힌 것이라고 말한다. 마애불은 얼핏 보면 얇은 옷을 입은 여성으로 보일 법도 한 모습이다. 또한 마애불의 한 손은 가슴에 한 손은 다리에 위치하고 있어, 전설이 이 장면과 맞춰진 것으로 보인다.
카르가 마애불
사실 이 마애불은 7세기 경에 만들어진 불상이다. 혹자는 간다라 말기의 작품 중 하나로 보기도 하지만, 일본인 전문가 하루코 츠치야(Tsuchiya Haruko)에 따르면 이 작품은 간다라와는 무관한 참바(Chamba) 양식의미륵보살이라 한다. 불상의 오른손은 두려움을 없애주는 시무외인이며, 왼손은 편히 내린 여원인이다.
마애불은 높은 절벽에 새겨져 마을을 내려다보고 있다. 마치 마을에 두루 자비가 베풀어지길 바라며 조각한 듯하다. 다만, 이 지역에서 불교가 그렇게 융성했었음에도, 모두 잊히고 남겨진 유산도 사람들 사이에서 부처가 아니라 마녀라 불리고 있는점이 흥미로우면서도 아쉬울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