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우리나라에 이상하다싶을 정도로 비가 많이 오고 있다. 장마철이 길어진것은 물론, 짧은 시간에 강우량이 집중되는 경우가 잦아졌다. 집중된 강수량을 감당하지 못해 길이 침수되고 집이 무너지기도 한다.
이상기후 때문일까? 날씨가 점점 더워져 요즘은 제주도뿐만 아니라 수도권에서도 망고가 재배된다고 하던데... 단지 기온이 올라간 것뿐만 아니라 비도 마치 아열대 지방의 스콜처럼 내리는 듯하다.
폭우로 도로가 물에 잠겨 뱃길이 된 풍경(베트남) ⓒ 박동희
그런데 동남아시아에서 살다 보면 비로인한 수해는 거의 일상이다. 어제까지만 하더라도 차가 다니던 도로였는데, 자고 일어나니 쪽배가 다니는 뱃길이 되어버린 풍경을 보는 것은 연례행사다. 광활한 논이 모두 호수가 되어있다거나, 산에는 못 보던 큰 폭포가 생겨나 있다. 집이 침수되어 고상가옥이 수상가옥이 되는 모습도 허다하다. 이런 경우에는 1층에 살던 개나 닭이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 피신해 있는데 이 모습을 볼 때마다 정겹다.
동남아시아에서 수재가 발생했을 때, 한국과 가장 큰 차이점은 수난 속에서도 곧잘 웃음소리가 들려온다는 점이다. 일견 현실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자포자기한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하지만 오히려 이것이 현명한 마음가짐이지 않나 싶기도 하다. 물이 빠질 때까지 어떻게 하겠냐? 수영장이 되어버린 마당에서 물놀이하는 애들을 보며 같이 웃을 수밖에.
비로 잠긴 마당에서 물놀이하는 아이들(라오스) ⓒ 박동희
동남아시아에서 일 년에 반은 비가 내리는 우기다. 우기라고 해서 주구장창 비가 내리는 것이 아니라 하루에 두세 차례 스콜이 내린다. (캄보디아에 한정된 이야기일 수도 있다)
한국사람들이 곧잘하는 착각이, 우기니까 우산을 챙겨 여행을 오는 것이다. 스콜은 우산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게 아니다. 상책은 피하는 것, 하책은 비옷을 입는 것이다. 우산은... 염두에 두지 말자.
필자는 캄보디아에서 현장일을 오래 하면서 스콜에 대한 감을 다소 잡았다고 자부한다. 스콜은 내리기 전에 반드시 신호를 보내고 내린다. 캄보디아 사람이나 동남아시아에서 오래 산 사람들은 스콜이 보내는 신호를 읽을 줄 안다. 그래서 스콜로 봉변을 당하는 일이 잘 없다. 스콜이 보내는 신호? 혹은 과정은 다음과 같다.
스콜이 내리는 과정 ⓒ 1,2 박동희 3,4,5 레이첼
(전조 1) 아침부터 구름 한 점 없는 청명한 하늘이다. 오늘은 십중팔구 스콜이 내릴 것이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다. 맑은 날일 수록 태양이 물을 증발시켜 끌어올리는 데에 방해받지 않기 때문이다.
(전조 2) 지평선 여기저기서 뭉게구름이 피어오른다. 뭉게구름이 피어오르는 곳에서는 이미 스콜이 내리고 있다고 보는 게 좋다. 즉, 내가 있는 곳에 지금 당장 스콜이 내려도 이상하지 않다는 뜻이다.
(1) 맑은 하늘인데도 불구하고 물기를 머금은 선선한 바람이 불어온다. 고수는 이때쯤 곧 스콜이 올 것이라는 것을 안다. 보통 10분 안에 스콜이 내린다. 이때부터 하던 일을 정리하면 여유롭게 피신할 수 있다.
(2) 돌풍과 함께 급격히 어두워진다. 스콜이 곧 내린다는 신호다. 보통 3~5분 안에 스콜이 내린다. 아직 서둘러하던 일을 정리하면 간신히 피할 수 있다.
(3) 벼락과 함께 약한 비가 내린다. 스콜의 시작이다. 이때까지 피신을 안 했다면 포기하는 게 좋다.
(4) 곧 하늘에 구멍이 난 것과 같이 스콜이 쏟아진다. 맞으면, 많이 아프다. 눈도 뜨기 어렵다. 무서울 정도로 비가 쏟아져 내리지만 길어봐야 20~30분이다.
(5) 스콜이 멎고 하늘이 맑아진다. 청명한 하늘은 언제 그랬냐는 듯 시치미를 때는 모습이다.무지개를 쉽사리 볼 수 있다. 평화롭다.
스콜, 국지성 호우 ⓒ 박동희
그런데, 동남아시아에 오래 살다 보면 스콜의 매력에 빠지게 된다. 스콜이 내리는 모습을 보고 있으면 마치 촛불을 바라볼 때와 같이 멍해진다. 그러다가 빗줄기 속에서 파장을 볼 수 있는데, 마치 환상을 보고 있는 느낌이 든다. 이 것이 거짓인지는 직접 보고 말해줬으면 한다.
한 번은 일몰을 보러 스라스랑(앙코르의 일몰 명소인 인공저수지)에 갔는데 일몰 타이밍에 맞춰 스콜 구름이 몰려왔다. 스콜보다 일몰이 먼저이길 마음 졸이면서 바라봤는데, 사실 어느 것이 먼저여도 좋았을 멋진 모습을 봤던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