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에 코로나가 다시 창궐하고 있다. 반면 캄보디아는 상황이 좀 나은 듯하다. 오늘(8월 19일)까지의 확진자 누계는 총 273명으로 세계적으로도 매우 적은 편에 속한다. 하지만 캄보디아의 의료 형편상 만에 하나 코로나에 걸리게 되면 그 뒤를 감당하기가 쉽지 않다.
의료는 캄보디아에서 산다는 것을 결정하기에 가장 큰 걸림돌이 되는 요소이다. 근래에 캄보디아의 병원이 아무리 좋아졌다고 하더라도 위생관념이나 의료기술이 우리나라의 기준에 한참 못 미치는 것은 자명하기 때문이다.
또한 캄보디아에서 살기 시작하면 풍토병에 걸리기 십상이다. 말라리아, 뎅기열, 아메바 이질 등등 동남아시아에 면역을 갖지 못한 신참 한국인들에겐 많은 병들이 도사리고 있다.
대부분의 외국인들이 겪는 설사병
필자가 처음 병원 신세를 진 것은 배탈이었다. 2008년 10월, 캄보디아에 온 지 4개월쯤 되었을 때 이질에 걸려 지독한 설사를 시작했다. 음식은커녕 물만 마셔도 화장실에 가야 했다. 한국에서 가져온 설사 특효약인 정로환을 먹으면 금방 나을 줄 알았는데, 좀처럼 낫지 않았다. 증상을 영어로 설명할 자신이 없었기도 했고, 설사로 무슨 병원까지 가냐라고 안일한 생각에 좀 버텨봤다.하지만 3주쯤 고생이 이어지니 생각이 바뀌었다. 몸무게는 8킬로 정도 빠졌고 무기력한 상황이 이어졌다.무엇보다 힘든 것은 항문의 쓰라림이었다...
결국 병원을 찾게 되었다. 병원은 생각보다 깔끔했고 걱정했던 만큼 의사소통이 어렵지 않았다. 캄보디아인 의사는 별 고민 없이 무심하게 특정 약을 처방해줬는데, 정말 칠흑과 같은 색깔의 알약이었다. 성분이 의심스러웠지만 가릴 형편이 아니었다. 의외로 약은 즉효약이었다. 이렇게 캄보디아 병원의 신뢰도가 형성되는 줄 알았다.
바이욘 사원에 조각된 고대의 병원 ⓒ 박동희
자력으로 이겨낸 뎅기열
2013년 7월 열이 올라 눕게 되었다. 고열에 시달리다가 결국 병원을 방문했는데 독감이라는 진단이었다. 해열제와 진통제를 처방받았고 집에서 요양을 했다.
그러나 이게 보통의 독감과는 차원이 달랐다. 고열에 이어 뼈마디가 끊어질 것 같은 고통이 찾아왔고, 편도선이 부어서 물조차도 삼키기가 어려워졌다. 식욕도 잃었다. 단순한 독감이 아닐 것 같다는 의심이 들었다. 하지만 뾰족한 수가 없이 마냥 버텼다. 지옥과 같은 고통 속에서 일주일 정도 지났을 때 온몸에서 붉은색 반점이 올라왔다. 뎅기열이 낫기 시작할 때 즈음 올라온다는 붉은 반점이었다.
돌팔이 의사가 뎅기열을 독감으로 오진했던 것이었다. 그 무서운 뎅기열에 걸렸다는 두려움과 곧 나을 것이라는 안도감이 동시에 찾아왔다. 뎅기열도 감기처럼 치료약이 있는 것이 아니었기에 의사를 찾기보다 그냥 남은 기간동안 해열제와 진통제로 버티기로했다. 결국 집에서 자가 회복으로 이겨냈다.
오토바이 사고
동남아시아 생활에서 병원의 신세를 가장 크게 진 것은 오토바이 사고였다. 2014년 9월 인도네시아에서 지금은 배우자가 된 여자친구를 뒤에 태우고 내리막길을 달릴 때였다. 아스팔트 위에 모래가 뿌려져 있었고 브레이크를 잡았지만 보기 좋게 미끄러져버렸다.
캄보디아에서 타고다니는 오토바이 ⓒ 박동희
달리던 속도가 있었기에 꽤 오랫동안 아스팔트에 갈렸다. 멈춰 선 직후에는 얼굴이며 팔이며 다리며 죄다 아스팔트에 갈아버려서 어디가 얼마나 다쳤는지 가늠을 할 수 없었다. 가장 걱정되었던 턱 그리고 팔은 상처가 깊지 않았다. 다만... 오른쪽 무릎이 갈린 정도가 심해 뼈가 드러나 보였다.
멘붕에 빠진 여자친구를 진정시키고(다행스럽게도 여자 친구는 거의 다치지 않았다), 지나가는 차량을 붙잡아 도움을 요청하여 가까운 병원 응급실로 옮겨졌다.
간호사들은 마취도 없이 상처부위의 아스팔트 조각들을 때 내기 시작했다. 피와 아스팔트가 뒤섞여 조각이 잘 안보였기에 물을 부어가면서 뽀득뽀득 씻으며 때어냈다. 너무나도 고통스러워서 비명도 안 나왔다. 의식을 놓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고통의 시간을 보내고 온 몸에 붕대를 휘감고 퇴원?! 을 했다. (입원할 정도는 아니라나?)
오토바이 사고 후 필자의 모습 ⓒ 신보람
맹장염에 걸린 아내
코로나의 창궐로 캄보디아에 홀로 두고 온 아내가 맹장염에 걸렸다. 배가 아프다는 소리를 자주 하였기에 늘상 아프던 그런 것인가 하다가도 혹시 몰라 병원을 가보라고 했던 것이 천만다행이었다.
우선 한국인 의사가 있는 헤브론 병원에서 맹장염 진단을 받았다. 그러나 한국인 의사는 프놈팬에서 수술하기를 권하였었다. 당시 코로나로 하늘길이 막혀 육로로 가야만 했는데 몇 시간 동안 가다가 더 큰 문제가 될 우려도 있었고, 수술 후에 돌봐줄 사람도 없어서 씨엠립에서 수술하기로 했다.
Angkor Sante 병원 ⓒ 신보람
수술을 위해 시엠립의 일본 병원을 알아보았다. 그러나 일본인 의사들도 코로나 이후 다들 귀국했다고 하였다. 별 수 없이 현지인 병원을 알아보았다. 'Angkor Sante'병원, 복강경 시술 장비를 갖추고 있는 유일한 병원이라 그나마 믿을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가격은 입원료 포함 천백 달러. 한국에 비하면 두 배로 비싼 가격이었지만 어쩔 수 없이 시술을 받았다. 그 후로 많은 지인들의 도움을 받아 무사히 회복할 수 있었다.
맹징 수술로 병원에 입원한 아내 ⓒ 신보람
어떻게든 살아간다
언제 어디서 어떻게 아플지 모르기 때문에 캄보디아에서 살기로 결심한 이상 캄보디아의 의료를 받아들여야만 했다. 싫다고 거부할 수 있는 것이 아니었다. 그런데 돌이켜 보면 그렇게 나쁘지만도 않은 것 같다. 오히려 이 지역에서 쉽게 발생하는 병들은 이 사람들이 더 잘 치료할 수 있기도 하다. 또한 여러 차례 경험해 본 결과 의료진들의 정성은 한국에 못지않았다. 캄보디아도 사람이 살아가고 있는 곳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