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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박동희 Sep 02. 2020

#5 킬링필드의 망령

나는 캄보디아에 살고 있습니다

2020년 9월 1일. 킬링필드의 주범 카잉 구엑 에아브(Kaing Guek Eav)가 77세의 나이로 사망했다는 기사가 떴다. 그는 크메르 루주 정권의 핵심 인물 중 한 명으로, 뚜얼 슬렝 교도소장을 역임한 사람이다. 그는 반인도적 범죄행위로 종신형을 받아 수감 중이었다.


캄보디아 법정에 선 카잉 구엑 에아브(2009년 7월 20일) ⓒ Smuconlaw (Flickr)


뚜얼 슬렝 교도소


뚜얼 슬렝 교도소는 우리나라로 치면 서대문형무소에 해당하는 곳이다. 크메르 루주 정권에 반대하는 사람들, 이른바 반동분자들을 고문하고 처형하기 위한 시설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14,000명이 여기에서 목숨을 잃었다고 한다. 지금은 박물관의 형태로 일반인에게 공개되어 있는데, 여전히 스산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뚜얼 슬렝 박물관에 전시되어 있는 희생자 사진 ⓒ 박동희


크메르 루주


크메르 루주(Khmer Rouge)는 캄보디아에서 1975년부터 1979년까지 집권한 공산세력이다. 크메르 루주의 지도자 폴폿(Pol Pot)은 마오쩌둥 사상에 영향을 받아 캄보디아에서 과격한 농업혁명을 시도했다. 모든 사람들이 농민이 되면 평등한 세상이 구현된다는 것이혁명의  골자였다. 폴폿은 집권 직후 집단농장을 건설하고 도시의 주민들을 강제로 이주시켰다.


그들은 농업혁명에 반대하는 사람들, 그리고 반대할 여지가 있어 보이는 사람들(똑똑해 보이거나 덩치가 큰 사람들)을 가차 없이 처단하였다. 불과 5년 만에 150만에서 200만 명 정도가 학살되었다. 이는 당시 캄보디아 전 인구의 1/4에 해당하는 수치였다고 한다. 세계적으로 유래 없는 이 사건은 캄보디아 제노사이드라는 이름으로 불린다.


크메르 루주의 만행은 킬링필드(1984)라는 영화로 세계에 널리 알려졌다. 최근에는 안젤리나졸리가 감독한 '그들이 아버지를 죽였다(2017)' 재조명되었다. 우리나라에서는 차지철 경호실장이 박정희 대통령에게 "캄보디아에는 300만 명을 죽이고도 까딱없었는데 우리도 100~200만 명 정도 죽인다고 까딱 있겠습니까!"라는 망언으로 알려졌고, 이 망언은 남산의 부장들(2020)에서 등장한다.



크메르 루주의 망령


크메르 루주가 몰락한 지 40년이 지났음에도 캄보디아에는 그들의 망령이 짙게 남아있다. 교사와 의사와 같은 지식인들의 부재는 국가의 건에 큰 어려움이 되고 있다. 또한 앙코르 제국이라는 영광의 역사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로부터 이어져온 모든 문화와 전통의 명맥이 끊겨버렸다.


무엇보다도 큰 것은 사람들의 마음에 새겨진 상처다. 몇 년 전 유적 복원의 료를 기념하여 돼지를 잡고 연회를 하자는 계획을 세웠지만, 마을 이장의 반대로 무산된 일이 있었다. 이장의 말은 사람들이 많이 모이면 좋지 않다는 것이다. 이러한 모든 것들이 크메르 루주가 남긴 공포와 폭력의 상처라 생각한다.


크메르 루주의 집권은 불과 5년에 불과한 기간이었지만 그 피해는 너무나도 다.


씨엠립의 왓트마이 사원에 안치된 크메르 루즈의 희생자들 ⓒ 박동희


진심으로 캄보디아를 사랑하는 한 사람의 입장에서, 특히 냉전으로 인해 애꿎은 개인들이 슬픔을 겪어온 현실에 대해 안타까움을 가지고 있는 한국인으로서, 캄보디아가 하루라도 빨리 크메르 루주의 망령에서 벗어나기를 바란다.


뚜얼 슬렝 박물관의 고문용 침대 ⓒ Pixaba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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