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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창록 Dec 07. 2020

독립이라는 이름의 홀로서기

자기 공간과 창작동인 뿔의 시

홀로 산 지 3년이 좀 넘었다. 대학생 때 드문드문 자취했지만, 그건 온전한 독립이라기보다 행성 궤도 언저리에 맴도는 위성 같은 생활이었다. 늘 혼자만의 공간을 꿈꿨다. 내 공간이 생긴다면 어떻게 근사하게 꾸밀까 상상하며 들떴다. 처음 방을 계약할 때, 이런저런 인테리어 소품을 사다 놓거나 하나에 1~2만 원 하는 작은 화분을 적당한 구석에 배치하기도 했다. 치장한 모습을 폰으로 촬영하며 혼자서 또 들뜨곤 했다.


혼자 살면서는 이전에 몰랐던 것들이 눈에 들어왔다.


예를 들면 화장실 타일 사이사이에 찌든 곰팡이는 무엇으로 제거하는 게 좋은지, 빨래를 방 안에서 건조하려면 어떤 세제를 사용해야 할지, 삶통의 연마제는 어떻게 제거해야 하는지, 습기를 제거하거나 환기해야 할 땐 어떤 방법이 좋은지, 냉동고 성에는 어떻게 없애야 하는지, 먹다 남은 밑반찬은 어떻게 보관하는 게 오래가는지, 배달음식을 시킬 때마다 얼마나 많은 일회용품이 따라오는지, 재활용 쓰레기를 버릴 땐 어떻게 분리수거해야 하는지, 집주인과 최적의 조건으로 지내려면 어떻게 소통해야 하는지, 사람다운 꼴을 유지하려면 얼마큼의 비용이 필요한지, 내가 여기에 살아 있다는 걸 증명하려면 공과금이 얼마나 들어가는지 등등.


이렇게 하나씩 발견하고 체감하다 보면 끝에 가서 이런 생각들에 닿았다. 내가 쓴 물건이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는지, 유기물이든 무기물이든 어떤 존재에게 무슨 영향을 미치는지, 나는 무엇으로부터 감정을 받아들이고 무엇에게 존재감을 전하는지.


본가에서 계속 지냈다면 깊이 알지 못했을 것들이었다. 혼자만의 공간이 생긴다는 건, 이런 사소하고 미세한 ‘발견’이 내 존재를 지탱한다는 사실을 깨닫는 것. 내 삶이라는 게 실은 이렇게 자잘하고 촘촘한 과정으로 구성된다는 것. 괜히 소중한 경험이었고, 앞으로도 잃고 싶지 않은 하나의 소우주였다.





미래진행


거리의 흰 여름은 해변 끝에서 밀려왔다 쓸려 가고


지구가 있다


무사히 열대를 건축할 때마다 게스트하우스에 칠해져 바닷물만 나누어 먹는 미성년들 하나의


우리는 열사병이다

이국의 해수욕장에서 죽음을 연습하고

낯선 중앙선을 따라 교복의 맥박으로 휘청거리다 헤드라이트에 머리카락 적셔지듯 끝나지 않을 방학이다

이곳이 장마


신기루로 푸릇하면 인생에서 무중력만 골라 아름다울 수 있다


우주가 돌아서 슬프다


늙어도 힙합이나 아이돌을 좋아할 수 있을까 미래학자는 영원히 미래학자인가

더 이상 추하고 싶지 않아서 환각을 터뜨리다가 그루피 혹은 히치하이커로 익사할 수 있을 것이다


파도를 참는 표정과 몸짓의 사생아들을 가장 먼 행성으로 놓칠 때

아무것도 이해하지 못한 척했다 어린 묘지들로부터 달려가며 파열하는 국경에서

섬망하다


거리의 아름다움은 거리에 있다 너와 나를 죽이는 절정에 세상은 실패했다


불을 끄고 손목을 놓았다


_ 창작동인 뿔(최지인 / 양안다 / 최백규), <한 줄도 너를 잊지 못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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