낯선 번호로 전화가 걸려왔다

10년이 지난 이메일의 응답

by 로라see

장을 보고 차에 짐을 싣으려는데 전화벨이 울린다. 요즘은 전화벨이 울리는 것 자체가 이상하려니와 쓸모 있고 의미 있는 연락은 모두 메시지나 메일이다 보니 전화벨 소리를 들으면 으레 피싱이거나 마케팅이 목적이라 반사적으로 생각한다. 벨은 울다 지쳤는지 어느새 멈추고 조용하다.


점심시간이 훌쩍 지나 나른한 오후 시간, 오랜만에 장을 봐서 그런지 피곤하다. 장 봐온 것은 나중에 정리하기로 하고 그냥 달달한 디저트를 곁들인 커피나 마셔야겠다.


커피를 내리며 핸드폰으로 이메일을 체크하는데 언니, 오랜만^^ 잘 지내지? 뜬금없는 제목이 상단에 떠있다. 나를 언니라 부르며 오랜만이라 인사할 사람이 누구지? 궁금한 마음에 재빨리 이메일을 열어본다.


언니, 오랜만^^
잘 지내지?
예전에 쓰던 메일함에 들어가 오래된 메일들을 정리하다가 언니가 10년 전에 나에게 보낸 메일을 봤어.
지금 내가 보내는 메일을 읽게 되면 나에게 전화해 줘.. 010-0000-0000


좀 전에 피싱이나 마케팅 목적으로 걸려온 전화라고 생각하고 무시했던 전화가 바로 내가 10년 전에 메일을 보내고 답변을 받지 못했던 친구에게서 걸려온 전화였던 것이다.


그제야 까마득히 오래전 친구에게 안부 메일을 보내고 답변을 받지 못했던 것이 기억이 났다. 답변을 받지 못했다는 것조차 친구의 답메일을 받고 알게 된 걸 보면 그동안 혼란스러운 삶을 살아내느라 정신이 없었구나. 나도 그 친구도.


나른한 오후의 무료함을 깨고 날아온 친구의 답메일은 마치, 오늘 점심 뭐 먹을 거야, 일상의 평범하고 다정한 인사 같다. 동시에 10년이라는 세월이 이리도 가뿐하게 흘러갈 수 있구나 먹먹했다.


우린 전화 대신 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았다. 지난 세월이 만들어낸 삶의 변화를 간단히 주고받고 올여름에 한국에 가게 되면 서로 연락해서 만나자 약속도 한다. 친구는 2024년 파리 올림픽 때 프랑스에 놀러 올 생각이니 그때도 보면 좋겠다, 또 약속을 해본다.


10년 만에 연락이 닿은 옛 친구와 톡으로 메시지를 주고받으며 머리로는 충분히 알지만 가슴에 와닿지 않았던 사실이 서서히 다가왔다. 긴 세월이 무색하게 가상공간의 아이디와 비밀번호만 기억한다면 시공간을 거스르는 여행이 가능하구나. 우린 지금 그런 세상에 살고 있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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