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 걷는 마음 2.

by 로라see

일 년을 꼬박 넘기고 두 번째 봄을 보내면서도 여전히 매일 걷는다. 내 생에 일 년 이상 꾸준하게 한 운동은 걷기가 처음이다. 작년 이른 봄 새순이 파릇파릇하고 꽃봉오리가 올망졸망한 얼굴로 나타났을 때였다. 처음 걷기를 하고 집으로 돌아오면서 온 마음과 온몸이 느낀 상쾌한 기분은 작심삼일을 넘기고 백일을 넘기고 결국 돌도 넘겼다.


요 며칠 아침 걷기를 하면서 삼 개월 전 브런치 가입 후 처음 올린 '매일 걷는 마음'이란 제목의 글이 떠올랐다. 그리고는 '매일 걷는 마음'의 시리즈 격으로 새로운 글을 써보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작년 봄 처음 걷기 시작했을 때 나는 몸과 마음이 꽁꽁 얼어붙어 잔뜩 움츠러든 채였다. 오랜 시간 이방인으로 외국 생활을 하며 주변 어른 도움 없이 혼자 아이를 양육하느라 영혼이 털리고 건강이 바닥을 치고 동시에 경력 단절인 채로 나이만 먹으며 사회적으로 경제적으로 이룩한 것 하나 없는 중년 여성. 자기 객관화 거울로 들여다본 나의 모습이었다. 하지만 난 그런 내 모습으로부터 도망칠 용기도 그런 나를 변화시킬 열망도 없었다.


지금은 제목을 '매일 걷는 마음 1.'로 변경한 그 글을 지금 다시 읽어보니 마치 딱딱한 돌 덩어리 마냥 속을 드러내지 않고 있었다. 마술 같은 손길을 거치기만 하면 다이아몬드가 될 수 있을 거라 착각하는 속마음만 보였다. 읽는 내내 부끄러웠다.


지금 쓰는 '매일 걷는 마음 2.'도 시간이 흘러 다시 읽게 되면 보나 마나 낯이 뜨거워지겠지. 그래도 현재 내 마음을 살펴보고 기록해두는 것이 부끄러움보다 중요하다는 걸 나는 안다. 그래서 나는 지금의 나를 쓴다.


매일 걷기를 반년 정도 지속한 어느 날 친구들과 독서클럽 모임을 시작했고 그리고 다시 반년이 흐른 어느 날 브런치 작가에 도전했고 다시 삼 개월이 흐른 지금 '매일 걷는 마음' 시리즈 편을 쓰고 있는 나에게 '매일 걷는 마음'은 어떤 의미일까.


봄이면 지천에 등나무 꽃이 만발하고 아카시아 향을 뿜어내는 마을에서 십 년 넘게 살고 있으면서 매일 걷기 전에는 그걸 모르고 살았다. 얼마 전 '봄이면 등나무 꽃이 흐드러지게 피는 마을에 살고 있어요'라는 제목의 글을 브런치에 올렸는데 그 글을 쓰면서 내가 지난 십여 년의 세월 중 많은 부분 기억하기 못하고 감각하지 못한 채 살았다는 걸 눈치챘다. 아카시아 향을 뿜는 등나무 꽃이 만발하고 곧이어 봄비가 내리면 멀리 보이는 등나무 아래에 마치 녹지 않는 플라스틱 눈송이가 소복하게 쌓인다는 것도 얼마 전 봄비가 내린 후 목격했다.


집안 일로 종종 거리며 이 방 저 방 뛰어다니 듯 걸어도 매일매일 청소기를 들고 거실에서 주방으로 안방에서 아들방으로 씩씩하게 걸어도 예민한 감각이 살아나는 걸 느껴본 적이 없다. 규칙적으로 대형마트에 가서 커다란 쇼핑카트를 끌고 마트 구석구석 꼼꼼히 훑으며 장을 볼 때도 구매 목적이 아니어도 매 시즌별 유행 아이템이 뭘까 백화점으로 쇼핑몰로 성실하게 아이쇼핑을 다녀도 감각이 깨어나는 걸 느껴본 적이 없다.


그런데 매일 걷기는 계절의 변화를 오감으로 느끼게 하고 숨어있던 기억을 되찾게 하고 일상의 평범한 풍경을 관찰하는 즐거움을 선사한다.


며칠 전 아침 일기예보를 검색해보니 이르면 점심시간 즈음 소나기가 내린단다. 지체하지 말고 비 맞기 전에 얼른 걷고 와야지 서둘러 집을 나서 파워 워킹으로 호흡이 빨라지는 지점에 다다랐을 때 연한 오렌지빛 들장미가 여리여리한 자태를 뽐내고 있다. 하늘은 이미 먹구름이 낮게 드리워져 사위가 회색빛인데 들장미는 오히려 청초하다.




어제 아침은 전날 한바탕 소나기가 휩쓸고 지나간 뒤라 연한 회색빛 아래에 수분을 촉촉이 머금은 푸른 잎들이 싱그럽고 풍성해 보인다.



그리고 오늘 아침 풍경이다. 먹구름이 완전히 지나가고 파란 하늘이 얼굴을 내비치고 있다. 위의 두 사진과 비교해 보면 들장미가 크게 눈에 띄지도 않을뿐더러 여리여리한 자태도 보이지 않고 청초한 분위기도 느낄 수 없다.


매일 같은 길을 걸어도 공기의 흐름이 다르고 바람이 부는 방향이 다르고 습도가 다르고 발아래 신발이 밀어내는 땅의 촉감이 다르고 들장미의 낯빛이 다르고 하늘과 나 사이에 놓인 거리가 다르다.


요즘 나에게 매일 걷는 마음은 해가 뜨고 달이 뜨고 바람이 불고 비가 오고 계절에 따라 오가는 꽃 손님이 다르다는 걸 온몸으로 감각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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