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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May 03. 2024

까미유 끌로델의 시선과 숨결을 만난 곳, 로뎅 박물관

  파리에서 나는 참 부지런한 여행객이었다. 아침 9시 전에 나가서 밤늦게까지 여기저기 다녔다. 여행을 가기 전에 나는 괜히 그 멀리까지 가서 어디 카페에 짱 박혀서 커피나 마시고 책이나 읽다 돌아오게 되는 건 아닐까 염려했다. 그래서 책도 사서 공부하고 여행 경로도 구상하며 계획을 세워 봤다. 여기저기 스폿을 찾아 돌아다니는 걸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남들 다 사진 찍는 곳에서 나도 똑같이 그렇게 사진 찍는 것도 좋아하지도 않으면서 하나도 빼먹지 않으려고 애를 썼던 것 같기도 하다. 


  날씨가 유난히도 좋았던 그날, 언제나처럼 9시쯤 숙소를 나섰다. 여행객이지 않아 보일 옷차림과 가방을 메었다. 파리지엔느가 되어 보고 싶다는 욕망 때문이었지만, 자꾸 가방에서 꺼내게 되는 여행책자와 수첩은 누가 봐도 여행객임을 인증했다. 뭐 어쨌든 그날도 나는 어느 미술관을 가려고 했고, 그 미술관 근처에 있는 맛집을 찾아가 뭔가를 먹으려고 했던 것 같다. 지하철을 타고 목적지를 가다가 창 바깥으로 보이는 파란 하늘과 풍경을 바라보다가 나도 모르게 지하철에서 내려버렸다. 


  여행 첫날에 강가나 공원에서 너도나도 상의를 벗어젖히고 드러누워 있는 사람들을 보면서 나는 외투를 끌어당겼다. 바람이 제법 쌀쌀한 10월의 가을날에 저렇게 옷을 벚어젖히다니. 이 사람들은 이게 지금 더운 걸까? 했었다. 하지만 보름 넘게 파리에서 지내면서 그들이 마음을 이해해 버리게 되었다. 나는 정류장 벤치에 앉아 해를 쬐며 너무도 따뜻하다는 생각이 들어 재킷을 벗었다. 이런 날 굳이 실내로 들어가는 바보 같은 짓을 할 뻔했던 나의 행동을 당장 멈추고 경로를 수정했다. 


   수첩을 한참 뒤적이며 나는 로뎅미술관을 선택했다. 굳이 미술관을 간다면 야외정원을 즐길 수 있는 곳으로 가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로뎅미술관에서 도착해서 커피 한 잔을 마시면서 조각공원을 돌았다. 작품들을 보는 것도 좋았지만 해를 쬐는 기쁨이 너무도 컸다. 교과서에서 지겹도록 봤던 작품인데, 역시 실제로 보는 느낌은 달랐다. 가만히 앉아 골똘히 생각하고 있는데, 그 생각이라는 것은 어지간히도 역동적이고 격렬해 보였다. 로뎅의 진가를 알게 되는 순간이었고, 전율이 일었다. 


  로뎅의 작품은 실내에도 있었다. 실내에 들어가고 싶은 생각은 없었지만, 그래도 건물 안에 있는 로뎅의 작품들을 놓치고 싶지 않았기에 안으로 들어갔다. 안에 있는 작품을 보다 나도 모르게 소름이 돋았다. 남성의 몸을 표현한 어떤 작품에는 사랑의 시선이 깊이 담겨 있었고, 또 어떤 작품에는 여자의 감성이 잔뜩 묻어있었다. 정원에서 만난 로뎅의 작품들은 외향적이고 과감했다. 내면을 들여다보는 듯한 통찰이 담기긴 했지만 그 느낌은 세차게 지나간 강한 물줄기 같은 느낌이었다. 


  내가 로뎅을 몰라서 그런가? 그는 동성애자였을까? 그렇다 해도 저렇게 여성적이고 섬세한 감성은 대체 어디서 나왔지? 아무리 봐도 여자의 손길이 스민 작품인 것 같았다. 로뎅은 애초부터 남성인 사람이 맞는 걸까? 별별 생각을 하며 별별 상상을 다 해보았다. '저 봐 저 봐, 동성애를 다룬 작품들도 있잖아.' 그러다 다른 작품들을 또 보면 '아 그런데 저건 또 너무 여자 모르는 남자 같은 느낌인데?' 대체 로뎅의 정체는 뭘까. 한국에 돌아가면 꼭 로뎅에 대해 찾아봐야지.


  한국에 돌아와서 나는 로뎅의 연인이었던 '카미유 끌로델'에 대해 알게 되었다. 줄리엣 비노쉬가 연기한 영화 <까미유 끌로델>도 찾아봤다. 깜짝 놀랐다. 내가 느꼈던 그 여성의 손길, 여성의 시선이 어쩌면 까미유 끌로델, 그녀의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예술이란 참 대단한 기운을 가지는 것 같다. 100년이 지나도 200년이 지나도 그 작품에 담긴 예술가의 숨결과 영혼이 살아서 존재하는 게 분명하다는 생각이 들었다. 나의 알아차림이 외롭고 쓸쓸했을 그녀의 영혼에 작은 위로가 될 수 있다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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