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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Apr 26. 2024

파리에서 핸드드립 커피를 마시려면 카페오테크로

<La Ca­féo­thèque>

  프랑스에서 마신 커피들은 정말이지 죄다 맛있었다. 도착한 날 얼떨결에 마시게 된 까르푸 커피도 깜짝 놀랄만한 감동의 맛이었고, 벼룩시장 좌판에서 사 마셨던 커피도 걸음을 멈칫하게 하는 맛이었다. 다리가 아파 쉬려고 들어간 카페에서 그냥 마셨던 커피들도 어머! 하게 만들었고, 빵집에서 빵을 굽는 동안 이거나 마시라며 내어주는 커피를 받아마시면서도 탄성이 나왔다. 내가 유럽을 오긴 왔구나 커피를 마실 때마다 실감했다. 하지만 그 감동의 커피들은 죄다 에스프레소 커피였다. 커피의 퀄리티가 이렇게 높은데 핸드드립 커피를 마실 수 있는 곳이 없다니. 


  여행 책자에 소개된 <La Ca­féo­thèque>를 첫날부터 가고 싶었지만, 아끼는 마음으로 며칠 동안 설렘을 부여잡고 있었다. 라 카페오테크는 핸드드립 전문점이라고 했다. 프랑스에서 마시는 핸드드립 커피가 나의 기대감을 한없이 끌어올린 터라, 오페라 가르니에를 갔던 날, 오페라 가르니에보다 더 큰 기대로 그곳을 가려고 했다. 그런데 길 가는 사람을 눈에 보이는 대로 붙들고 물어봐도 아는 사람이 없었다. 로밍을 하지 않았고, 그곳의 주소를 적어오지 않은 내 잘못이긴 하지. 그래도 그렇게까지 모를 줄은 상상도 못 했다. 


  오페라 가르니에 근처라는 것만 기억이 나서, 다시 그 근처를 헤매 다니며, 눈에 띄는 사람들에게 마구 물어봤다. "Excuse-moi. Pouvez-vous me dire où se trouve La Caféothèque?" (실례지만, 카페오테크가 어딘지 아세요?) 도저히 찾을 수 없어서 나중엔 그냥 포기하고 스타벅스가 어딘지 아냐고 물어봤다.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스타벅스가 오페라가르니에 근처에 있다길래 그거라도 구경하자 싶었다. 프랑스 사람들은 스타벅스도 잘 몰랐다. 


  프랑스 사람들에게 커피는 어떤 브랜드로 정형화된 무언가가 아닌 걸까, 아니면 스타벅스나 핸드드립에 관심이 없는 걸까. 스타벅스가 어딘지도 모른다는 사람들 속에서 나는 대답을 듣지 못하는 같은 질문만 반복하다 지쳐버렸다. 길을 물어보지 않은 새 사람을 찾으러 가는 길에 초록 여인의 간판을 발견했고 난 깊은 한숨을 쉬며 그 속으로 들어갔다. 와, 정말 광고 빨 사진빨인가 싶었다. 사진들에서 봤던 느낌은 어디에도 없었고, 실망스러운 마음을 빵과 커피로 추슬렀다. 

    옆 테이블에 앉은 여자가 사진을 좀 찍어달라고 해서 폰을 받아서 사진을 찍어줬다. 찍고 나서 사진을 확인하는데 깜짝 놀랐다. 사진 속 분위기가 예술이었다. 몇 번을 찍고 몇 번을 다시 봐도 대체 이제 무슨 상황인가 싶었다. 사진 속 배경과 실제 배경을 왔다 갔다 하며 몇 번이나 확인하면서 어이가 없었다. 여기가 사진에 이렇게 찍힌다고? 그래서 자세히 뜯어봤다. 샹들리에가 멋졌고, 벽지가 어딘지 고풍스럽고 우아한 분위기를 흘려 품격 있게 느껴졌다. 아~ 내가 안목이 없었구나. 


  그녀도 내가 찍어준 사진에 아주 만족했다. 그 덕분에 대화를 텄다. 그녀는 잠시 짬이 나서 머리 식히러 커피 한 잔 마시러 나왔다고 했다. 일상을 살고 있는 그녀는 여행하는 나를 부러워했고, 한 달간의 여행이란 말에 울랄라 하더니, 혼자라고 하니 브라보를 외쳤다. 갑자기 텐션을 올린 그녀는 추천 리스트를 읊었다. 처음엔 열심히 받아 적었는데, 끝나지 않는 브리핑에 기가 빨리기 시작했다. 그녀의 질주를 막아보려고 카페오테크를 아느냐고 물었다. 세상에. 그녀는 나에게 약도를 그려줬다. 


  카페오테크의 입구는 좁았다. 하지만 안으로 들어가니 꽤 넓은 공간이 펼쳐졌다. 로스터리 카페 특유의 감성이 있었고, 개성 넘치는 공간이었다. 맘에 들었다. 한 바리스타가 메뉴판을 건넸다. "나는 한국에서 왔는데, 파리에서 가장 오고 싶었던 곳이 바로 이곳이었어요." 끝나지 않은 말을 자르고서 어깨에 힘을 주며 그가 말했다 "하하, 여긴 세계적으로 알려진, 아주 유명한 곳이긴 하죠."하하, 그런데 파리에선 별로 유명하지 않나 봐요. 길을 물어도 아는 사람이 없어서 오기가 너무 힘들었어요." 하하하하...  


  "저는 핸드드립 커피를 정말 좋아해요. 힘들게 온 곳이니까 이곳에서만 맛볼 수 있는 특별한 커피를 먹어보고 싶어요." "그렇다면 여러 종류의 커피를 맛볼 수 있는 코스메뉴를 선택하셔야 해요." "아, 그런데 제가 커피를 여러 잔 마시지는 못할 것 같고, 이곳에서만 마셔볼 수 있는 특별한 커피가 있을까요?" "그렇다면 아주아주 특별한 스페셜커피를 추천할게요." 그는 13유로짜리 커피 한 잔을 나에게 추천해 주었고, 나는 그의 추천을 믿고 그거랑 타르트 하나 같이 달라고 했다. 


열정적인 스페인 출신의 바리스타

  그는 카운터로 가서 주문을 하고 왔는데 주문서는 주지 않고 내가 앉은 테이블에 깔린 테이블보 대용의 종이 귀퉁이를 북~ 찢어 거기다 메뉴와 가격을 써서 줬다. 이따 계산할 때 이걸로 하라고 했다. 무슨 계산서를 이렇게 주지? 싶었지만 여기 스타일인가 보다 했다. 그리고 그는 직접 커피를 내렸다. 스페인에서 왔다고 하는 그는 자신의 실력을 엄청 자랑하며 커피에 물을 부어 뜸을 들이더니 젓가락 같은 걸로 뜸 들인 커피를 조심스럽게 저었다. 아 뭐 하는 거지? 그는 아주 특별한 방식이라고 했다. 


  그는 뭔가 대단한 자부심을 가지고 있었고, 그것을 나에게 뽐내는 말들을 많이 했지만 그와 대화를 나누는 것에 나는 기가 빨리는 느낌이었다. 무엇보다 뜸 들인 후에 젓가락 같은 것으로 젓는 듯한 저 방식이 맘에 들지 않았다. 에이, 선입견이겠지. 물길을 저렇게 만들어 주는 방식이 있나 보지. 하지만 뭔가 찜찜한 기분이 들었다. 결정적으로 커피도 임팩트가 없었다. 평범하고 무난한 맛이었다. 대체 이게 뭐라고 한 잔이 13유로씩 하는 거야? 돈이 아깝단 생각도 들었지만, 그래도 안 해본 것보단 해보는 게 낫지. 


  조용히 커피를 마시려고 하는데도 그는 자꾸 뭔가 말을 걸었고, 내가 대답을 하려고 하면 반토막 잘라먹고 넘겨짚고 자기 얘기를 했다. 친절하려는 태도는 알겠는데 나랑은 너무 안 맞는 느낌이 들었다. 나는 가방에서 엽서를 꺼내 끄적거렸다. 기대가 커서인지 맛은 실망스러웠지만 그래도 분위기는 참 좋았다. 저 바리스타를 만나지 않고, 다른 바리스타의 추천을 받았더라면 어땠을까? 그래도 와보지 않고 한국으로 돌아가게 되었더라면 얼마나 아쉬웠을까.


  그렇게 오고 싶었던 카페오테크를 와보았다는 만족감을 안고 일어났다. 커피를 마시는 곳과 카운터는 공간이 분리되어 있어서 몰랐는데 카운터엔 어느새 긴 줄이 늘어서 있었다. 유명한 곳이긴 한가보다 싶었다. 바깥까지 줄이 이어졌는데 카운터에서는 나에게 먼저 계산서를 달라고 했다. 나는 찢어진 종이를 내밀었는데 주문서를 달라고 했다. "아니 저기 스페인 바리스타가 그걸 주라고 했어요." "당신이 마신 커피는 뭐예요?" "정확한 이름은 기억나지 않아요. 거기 쓰여있지 않아요?" "필터 커피를 마셨나요?" "네."


  9유로를 내라고 했다. 영수증을 보니 타르트 5유로에 필터커피 4유로를 더해 9유로를 달라고 했다. 13유로라며~ 합하면 18유로인데. 반값만 내라고? 오케이! 나는 얼른 계산했다. 그때의 통쾌함을 떠올리며 이 글을 쓰는 지금 나는 그 카페를 검색해서 메뉴판을 찾아봤다. 가장 비싼 메뉴가 14유로인데 그건 4잔을 마셔볼 수 있는 가격이다. 그 스페인 남자는 나한테 바가지를 씌우려 했던 것일까? 아니면 있던 메뉴가 사라진 걸까? 필터커피는 그냥 5유로인데 그 남자는 나한테 뭘 팔려고 한 걸까? 어쨌거나 그리운 곳. 다시 가 보고 싶다.

지금의 카페오테크 메뉴판과 흐릿해져 가는 10년 전 영수증


https://www.lacafeotheque.com/hom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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