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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Jun 16. 2023

조용한 숨결의 무게

영화 <클로즈>

루카스 돈트 감독의 <클로즈>

루카스 돈트 감독의 전작 <걸>을 보면서 한 어린 영혼이 자신의 인생을 선택하고, 그 선택을 고스란히 자리 어깨에 짊어매고 기꺼이 그 삶을 살아내는 모습에 나는 깊은 감명을 받았다. 그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삶의 무게감에 대해 생각해 보게 되었던 것 같다. 한 인물이 그에게 닥친 무거운 현실을 감당하는 모습을 담은 그의 작품을 보면서 나는 그의 차기작을 내내 기다리고 있었다. 영화에서 익숙한 장면들은 감정을 쏟아내거나 무너뜨리는 식으로 몸부림 치며 자신에게서 튕겨내려는 몸부림인데, 루카스 감독은 그 무게를 조용히 견디며 기꺼이 감당하는 인물의 내면을 잘 담는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클로즈>는 막 피려는 어리고 여린 새순 같은 두 소년을 담은 작품이다. 활짝 핀 꽃 사이로 두 소년이 달리면, 햇살은 까르르 쏟아지는 이들의 미소를 뚫고서 관객인 나에게 와닿는다. 햇살의 온기 때문인지 나는 나도 모르게 저들의 삶도 저 꽃들처럼 예쁘게 피어날 것이라는 기대로 맘이 부푼다. 거칠 것 없이 내달리는 곳은 꽃이 만발한 들판이고, 더없이 맑게 내뿜는 웃음소리는 공기 속에 녹아든다. 레오와 래미는 가족보다 더 많은 시간을 함께 하면서 내가 너인지, 네가 나인지 구분할 필요도 없을 정도로 붙어 다닌다. 영화는 이렇게 아름답게 시작한다.


하지만 갑작스럽게 사건이 일어나고 이것은 걷잡을 수 없는 상황으로 치닫는다. 하지만 감독은 이 사건 자체에는 큰 관심을 두지 않는다. 왜 그런 사건이 일어났는지, 사건의 경위나 진행 과정이 어떤지, 그래서 결론이 무엇인지 따위는 제쳐둔다. 가만히 생각해 보면 우리는 남의 일에 관심이 없고, 자신에게 닥쳐진 일만을 큰 사건으로 여기게 되는데 어쩌면 그래서인지 감독은 사건에 대해서는 그저 괄호에 담아 한 줄 지문으로 흘려버린다. 대신 그것을 흘려보내지 못하고 품고 살아가는 작은 영혼의 한 호흡, 한 걸음에 집중한다.


감독은 무거운 현실을 조용히 받아들이는 작고 여린 한 인간에게 바짝 다가선다. 목구멍까지 차오르는 울음을 침으로 밀어 삼키며 소리도 없는 호흡을 아무도 모르게 뱉고 삼킬 때, 감독은 그 침묵을 주시한다. 슬픔을 터뜨려버리지도 않고, 잠식되지도 않으면서 가만히 조용히 묵묵히 일상을 또박또박 살아가는 그의 곁에서 그가 그것을 어떻게 품고 짊어지는지, 그리고 그것을 안고 살아간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소리 없이 말한다.


소년은 자신에게 던져진 슬픔을, 그 고통을 튕겨내려 하지 않는다. 몸부림치지도 않고, 감정을 쏟아내지도 않는다. 소년은 햇살이 내리쬐면 눈동자를 반짝이고, 친구들의 농담에 미소를 스미며 아무렇지도 않은 듯 일상을 살아간다. 하지만 감독은 햇살에 반짝이던 눈동자의 암담한 시선과 미소 끝에 번지는 먹먹한 입꼬리를 놓치지 않는다. 이 작품에는 자기 앞의 생을 또박또박 살아가는 소년의 그 한 걸음 한 걸음에 담긴 묵직함이 고스란히 담겨 있다.


영화가 끝날 때까지도 햇살은 눈부시고, 꽃들은 지고 또 필 거란 생각이 밀려오는데 이젠 이것이 기쁨도 슬픔도 아닌 것만 같다. 이 작품을 보면서 전작에서 느꼈던 루카스 돈트 감독의 특별한 힘을 나는 다시 한번 느낀다. 다른 사람들이 보지 못하는 것을 또렷이 보고, 그것을 분명하게 전할 줄 아는 힘! 그에겐 그러한 능력이 있다. 나는 이 작품을 보고서 무거운 삶을 감당하는 방식, 타인을 이해하는 태도에 대해 곱씹어 생각해 보게 된다. 많은 사람들이 이 작품을 볼 수 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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