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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Jul 13. 2023

사막에 떨어진 인생 한 조각

영화 <원세컨드>

장이머우 감독의 <원세컨드>


  영화의 배경은 1970년대 중국이다. 당시에는 영화를 본다는 것이 지금과 많이 달랐다. 영화를 상영하려면 이전 상영관에서 틀던 영화의 원본 필름을 옮겨와 하나하나 세팅을 해야 했다. 그러면 영화를 상영한다는 것이 그 동네의 큰 행사처럼 여기며 마을 사람들은 그날을 손꼽아 기다리고 모두 한데 모여 영화를 관람했다. 영화를 관람하면 본 영화가 상영하기 전에 뉴스가 나와서 나라의 소식을 들을 수도 있었다. 


  감독은 이 영화를 메타영화로 표현한 바 있다. 자신이 생각하는 ‘영화’에 대해 표현한 작품이라 밝힌 것인데, 실로 영화는 아름다운 시처럼 스크린에 펼쳐진다. 영화가 현실을 담고 있지만 현실을 그대로 재연한 것을 영화라 하진 않는다. <원 세컨드>에서 말하는 영화는 아프고 쓰라린 현실을 치유하고 부서진 것들이 빛을 더한다. 내가 가장 소중하게 생각하는 어떤 순간은 살면서 바뀌기도 하고, 또 내가 기억하는 순간이 다른 이의 기억 속에선 다른 모습이기도 하다. 그리고 그걸 지켜보는 누군가는 그 순간이 다른 의미로 소중할  수 있고, 또 전혀 다른 모습으로 그 순간을 기억할 수도 있다. 


  한 남자(장역)가 사막을 걷는다. 모래바람이 부는 사막의 풍광은 아름답지만 언덕배기 사막을 오르내리며 온몸으로 모래 바람을 맞는 남자는 애처롭다. 남자의 걸음은 매끄러운 모래 위를 꾹꾹 누르지만 책장을 넘기듯 불어오는 바람에 발자국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다. 영화를 보러 가는 길이다. 아니 정확히는 영화 시작 전에 방영하는 뉴스를 보려는 것이다. 그 뉴스의 한 장면에 딸이 나온다는 얘기를 들었기 때문이다. 힘겹게 도착한 곳에는 이미 영화가 끝났고 다음 상영지로 필름을 배송하려고 모든 짐 정리를 끝낸 상태다. 어쩔 수 없이 남자는 다음 상영지로 걸음을 옮긴다. 


  아이(류호존) 하나가 나타나서 필름통을 훔친다. 그것을 알게 된 남자는 필사적으로 그 필름을 되찾으려고 한다. 딸을 찾으러 가는 아비의 심정이 느껴질 지경이다. 필름은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넘겨지다가 결국 흙길에 풀어헤쳐지고 뒤죽박죽 엉키고 꼬여 못 쓸 지경이 된다. 도저히 어쩌지 못할 것만 같은 상태로 필름은 도착했고, 도착한 필름으론 뭘 할 수가 없을 것 같다. 지금껏 달려온 남자의 인생 같기도 하고, 제대로 시작해 보지도 못한 아이의 인생 같기도 하다. 그러다 가만히 보고 있으면 어딘가 꼬인 내 인생도 다르지 않은 것 같다.  


  망가진 필름을 되살리려고 온 마을 사람들이 합세한다. 영화를 보려는 열망으로 모두 한 마음이 된다. 증류수를 만들고 필름을 씻어내고 닦고 말린다. 증류수에 씻겨 내려가는 필름이 맑아진다. 빨랫줄에 휘적휘적 널어둔 필름이 바람에 살랑대면 반짝반짝 빛이 난다. 나뒹굴던 인생도 빛이 날 수 있을 것만 같다경로를 이탈한 남자의 삶도, 깨져버린 것 같은 인생도 반짝여질 수 있을 것만 같다. 남자의 인생과 필름이 서로 겹친다. 남자는 필름 같고, 인생은 영화 같다. 내 인생도 저 언저리 어딘가 툭 올려두고 싶다. 


  남자는 다시 고비사막을 걷는다. 인생의 한 조각이 사막 위로 떨어져 날린다. 깨지고 부서지며 찾게 된 소중한 그 한 조각, 꼭 잡고 싶은 순간이 허공을 날아 모래를 뒹군다. 달려가 붙들고 싶지만 붙들린 몸으로는 바람에 날리는 조각을 어쩌지 못한다. 사람과 사람이 만나 서로 부딪치면서 금 가고 깨져 생긴 파편들이 종국에는 모래가 되어 바람에 흩어져 모래 속에 묻힌다. 줍지 못하는 그 한 조각 인생이 내 가슴에서 부서지는 이유는 나에게도 그런 순간이 있었다는 거겠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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