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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Aug 04. 2023

레전드와 레전드의 만남

영화 <제네시스: 세상의 소금>

영화는 죽음에 닿아있는 살가두의 사진들로 시작한다. 극한의 환경 속에서 죽음에 더 깊게 닿아있는 살가두의 사진이 스크린에 펼쳐진다. 죽음이 살아있고, 꺼진 빛은 강렬하다. 사진이 이끄는 감정의 급류를 타고 내 마음에 무언가가 강렬하게 내리 꽂힌다. 뭐지? 아마도 빔 벤더스도 나의 살가두에게 그런 강렬한 무언가를 느꼈던 게 아닐까 추측해 본다. 사실 그런 감정은 나만, 혹은 빔 벤더스만 느끼는 특별한 그런 것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보편성을 건드리는 살가두의 작품들이 바로 그의 정체성이 아닐까?


살가두의 사진은 멀찌감치에서 피사체를 바라보는 렌즈의 것이 아니다. 목소리조차 낼 수 없는 힘겨움에 처한 이들을 세상 밖으로 내어놓기 위한 목소리다. 살가두는 그들의 삶 속으로, 아니 삶이라기보다는 죽음에 더 가까운 그들의 고통 속으로 기꺼이 발 벗고 들어간다. 살가두가 전하는 것은 내가 처한 또 다른 현실이다. 내가, 우리가, 세상을 외면하고 비껴 서서 더욱 잔혹해지고 있는 비극이다. 


인간의 비극들 속으로 기꺼이 자신을 담그던 살가두는 노년에 카메라를 내 던진다. 꺼져가는 인간성에 빛을 밝히려던 그는 이제 죽어버린 땅에 시선을 꽂는다. 그는 겉잡을 수 없이 황폐해져버린 땅을, 그가 추억하는 초록땅으로 되돌려놓은 욕구를 느낀다. 그 사소하고도 무모한 바람으로 그는 망설이지 않고 남은 생을 내어놓고 그 땅에 덤벼든다. 그리고 늘 그래왔던 것처럼 빔 벤더스는 그의 옆자리로 다가선다. 그리고 조용히 카메라의 눈으로 그의 목소리와 움직임을 담는다. 


빔 벤더스 감독의 카메라 속에서 살가두는 위대하지 않다. 한 순간도 위대하지 않고, 앞으로도 위대해지지는 않을 것이다. 빔 벤더스는 살가도의 위대함보다는 그 이면에 집중한 것이 분명하다. 살가두가 피사체와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자신의 삶을 그들 속에 담았듯, 빔 벤더스 역시 살가두와 영혼의 온도를 맞추기 위해 그의 삶 속으로 자신을 내어 놓은 것만 같다. 그래서 빔 벤더스는 그를 올려다보지 않고, 담담하고 담백한 화법으로 살가두를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닐까? 


그 어느 곳에서도, 그 어떤 순간에도 자신을 세우지 않는 살가두와 그래서 더 위대하다는 것을 알아봐 준 빔 벤더스. 이들은 그야말로 세상의 소금이다. 살가두의 사진, 그가 세운 새 땅, 그리고 새로운 도전! 그런 삶이 의미 있는 이유를 그의 삶 속에서 찾아 가장 그 다운모습으로 보일 수 있는 영화로 그를 표현한 빔 벤더스! 창조는 모든 것을 다 벗겨내도 꺼지지 않는 빛과 식지 않는 열을 가진 영혼을 가진 이들의 순수한 도전만이 낳을 수 있는 전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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