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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Jul 26. 2023

꽉 찬 플롯과 완벽한 연기가 만나서

영화 <비닐하우스>

영화 <비닐하우스>는 문정(김서형)을 중심으로 펼쳐진 인물들이 각자의 욕망을 향해 나아가며 의도치 않게 부서지고 무너뜨리며 중심인물들이 서로 고통과 상처를 주고받는 이야기다. 탄탄한 구조를 가진 이야기는 매력적인 인물들을 뚫고서 뚝심 있게 밀고 나가고, 인물들은 이야기 속에서 개성을 뿜는다. 웰메이드 장르영화로서의 면모를 잘 갖춘 이 영화는 보는 재미가 꽤 쏠쏠하다. 


치매 어머니를 병원에 두고 아들과도 떨어져서 비닐하우스에서 혼자 사는 문정(김서형)은 요양보호사로 일한다. 문정이 돌보는 노부부는 시각 장애를 가진 태강(양재성)과 치매를 앓고 있는 그의 아내 춘화(원미원)다. 태강은 나지막한 목소리와 온화한 성품을 가진 듯해 보이고 그의 아내는 문정이 자신이 죽이려고 한다는 환상에 사로잡혀 문정을 괴롭히기 일쑤다. 문정은 무언가 상황이 꼬이고 막힐 때 자신의 머리를 쥐어박고 때리는 버릇이 있는데, 이것 때문에 자살방지모임을 나가게 된다. 거기에서 지체장애 3급을 받은 순남(안소요)을 만나게 되고 가까워진다. 


문정을 중심으로 한 태강과 순남은 서로를 돕고 서로에게 의지하지만 우발적인 사고가 서로의 상황과 묘하게 맞물려 얽히고설키면서 파멸로 치닫는다. 이들은 단지 각자의 욕망을 향해 각자의 방식과 속도대로 나아갈 뿐이지만, 그 나아가는 걸음들이 서로를 부서뜨리고 스스로를 무너뜨리는 쪽을 향한다. 그것을 그저 인과응보라고만 하고 넘겨지지 않는 이유는 나 자신 또한 욕망을 향해 나아가고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우발적인 상황 때문에 결국 체계적으로 차근차근 허물어지는 이 이야기는 군더더기 없이 깔끔하다. 너무도 깔끔해서 단조롭게 느껴지는 이 이야기 위에 서로 다른 캐릭터들이 부딪쳐 일으키는 사소한 상황들이 이 이야기에 생기를 입힌다. 어딘가 처연하고 처절해 보이는 문정의 미래에 파란불을 켜 주는 태강과 앞뒤 재지 않고 문정의 영역으로도 마구 뛰어드는 순남이 만들어가는 굴곡들이 이 이야기를 완성도 있게 매듭짓는다.


결론적으로 이 영화는 매력적이다. 제각각의 인물들이 관객들에게 제각각의 의미로 가닿으면서 공감과 위안을 주고, 각 인물들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들을 재탄생시킬 수 있는 여백을 품을 수 있는 공간이 있기 때문이다. 완벽한 서사와 뛰어난 연기가 이 영화의 알맹이이긴 하지만 그 알맹이를 가만히 바라보고 있으면 표면이 너무 매끈하고, 어디 하나 굴곡진 데가 없고, 무엇보다 그림자가 없는 그 알맹이는 내가 사는 이 세상의 것이 아닌 것만 같다는 낯선 거리감이 느껴지는 것 같다. 


그래서 궁금하다. 저 인물들에게서 연기를 걷어내고 나면, 내가 사는 이 세상의 어느 한쪽 끝에서 살고 있는, 자신만의 공간과 시간과 삶의 궤적을 뚜렷하게 가지고 있는 한 인물로 느낄 수 있을까? 어쩌면 그 인물들을 좀 더 친숙하게 받아들이는 데 있어 필요한 것은 군더더기 같은 장면들, 부스러기 같은, 인물들의 사소한 이야기였을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든다. 물론 이것은 지극히 나의 선호와 취향에 관한 얘기겠지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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