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Elle Jun 29. 2023

바람(wish)을 건드리는 바람(wind)

영화 <바람>

<바람>은 ‘정우’다. 정우가 직접 겪은 고교시절 이야기를 다루고 있고, 자신의 과거를 현재의 그가 직접 연기했다. 카메라도 김정국(정우)에 고정되어 있다. 그를 비추거나 그의 시선을 따르면서 정국의 외면과 내면을 꼼꼼하게 들여다본다. 영화는 카메라가 미처 따라가지 못하는 정국의 마음들까지도 정우의 내레이션으로 챙긴다. 카메라는 찌질한 상고생, 짱구 김정국이 성장해 가는 과정을 김정국에 바짝 붙어 들여다보면서, 바람(wind) 같은 그의 내면을 잘 표현하고 있다. 


제삼자의 위치에서 정국의 고1시절을 돌아보면 가장 크고 심각한 사건은 “경찰서 사건”이다. 온 학교가 떠들썩했고, 가족들이 마음고생을 한, 파장이 컸던 일이다. 그럼에도 정국은 스케일이 제일 컸던 사건으로 서면시장에서 정상고를 물리친 일을 꼽는다. 이는 카메라의 시선으로 잘 나타난다. 두 씬에서 카메라의 위치는 서로 대치된다. 경찰서에서 카메라는 2층의 높이에서 경찰의 시선을 따라 김정국을 내려다보지만, 서면시장에서 카메라는 김정국의 발밑에서 그를 올려다보며 서. 면. 시. 장.이라는 문구를 따라 하늘까지 시선을 끌어올린다. 경찰서에서 정국의 존재감은 바닥에 닿아있고, 서면시장에서 그의 존재감은 하늘과 닿아있다. 사건이 일으킨 파장의 크기는 중요하지 않다. 누가 어떻게 마무리했느냐도 중요하지 않다. 그 사건에서 자신의 위치나 존재감이 기억 속에 작용한다. 


영화는 바람 같은 시절을 겪은 정우의 고등학교 3년간의 이야기가 전면에 깔리지만, 조금 더 들여다보면 그 속에는 닿지 못하는 정우의 바람(wish)이 있다. 영화는 ‘그때 나는...’으로 시작하여 ‘내가 1학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이유는...’으로 끝이 난다. 영화가 끝나는 정국의 졸업 시점에서도 ‘돌아가고 싶었던’이라고 당시를 회상하고 있는 이 영화의 현재 시점은 영화의 프레임 안에 존재하지 않는다. 영화 밖에서 서술자로 존재한다. 서술어가 없는 저 두 대사의 주인공은 ‘정우가 연기하는 김정국’이 아니라 ‘김정국과 분리되어 있는 29살 현재의 정우’라 할 수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 영화의 가장 중요한 포인트는 시작과 끝에 내뱉는 정우의 저 두 문장에 숨어있다고 생각한다. 저 두 문장의 간격을 메워주는 정서는 아버지에 대한 그리움이다. ‘그때 나는...’ 아버지의 부재를 상상하지 못했던 때이고, 1학년으로 돌아가고 싶었던 이유도 아버지에 대한 회환 때문이었을 것이다. 29살 정우의 마음으로 본다면, 그 바람(wish)은 더 애틋해진다. 


장례식 장면에서 아버지는 건강한 모습으로 정국의 앞에 나타난다. ‘짱구박사~’하며 눈앞까지 바짝 다가오시는 아버지의 모습은 영화가 주는 선물 같다. 유효기간이 지나버려 이룰 수 없는 바람을 마법처럼 이루어주기 때문이다. 돌이킬 수 없어서 치유되지 못하는 아픈 마음을 <바람>은 영화의 힘으로 어루만져주며 그 바람을 이루어주는 것 같다. 정국은 아버지께 하고 싶었던 말을 직접 하지는 못하지만 아버지로부터 ‘다 안다~ 걱정 안 한다.’라는 말을 듣는다. 꺼억꺼억~ 밀려 차오르는 정국의 눈물과 함께 내 마음속에 묵혀있던 바람 하나가 함께 밀려 올라온다. <바람>은 바람처럼 살던 나의 방황기와 마음 아래 묻을 수밖에 없었던 묵은 바람(wish)을 건드리는 바람(wind)이다.

매거진의 이전글 뫼비우스의 띠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