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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Elle Jul 03. 2023

만화경으로 바라보는 찌질한 인생사

영화 <메기>

이옥섭 감독의 <메기>

<메기>는 지금까지 봐오던 영화들과는 많이 다르다. 이옥섭 감독과 구교환 배우가 만나면 일단 발칙하고 재기 발랄하다. 이 영화도 불량식품처럼 알록달록 시선을 잡아끌지만, 재료는 신선해서 먹으면 건강해질 것 같은 그런 느낌이다. 알록달록한 이야기 속에 물들지 않은 단단함이 있고, 밑바닥 어딘가에는 묵직함도 깔렸다. 마치 단편을 이어 엮은 듯한 산발적인 이야기들 속에서 메시지는 중심을 딱 접고 서 있다. 감독이 전하고자 하는 의미 또한 알록달록한 이야기들을 정신없이 뚫고 지나가는 동안에도 주먹 안에 꼭 쥐어져 있다. 하지만 보는 내내 재미있고, 보고 나서도 웃게 된다.   


이야기는 온통 당혹스럽다. 병원 엑스레이실에서 남몰래 섹스를 즐기다 갑자기 엑스레이 사진이 찍히고 그 야릇하고도 황당한 사진 때문에 병원은 발칵 뒤집힌다. 여자친구가 선물한 반지를 잃어버렸는데 나중에 보니 친한 동료가 그 반지를 발가락에 끼고 있다. 아니 이럴 수가! 하지만 알고 보면 여자친구와는 상관이 없다. 그건 애초부터 발가락반지로 만들어진 거다. 이야기들은 시종일관 이런 식으로 툭툭 튀어져 올라온다. 찌질하기 그지없는 대사들이지만, 이 영화에서만큼은 기발한 상황 속에서 유쾌한 실수로 아주 상큼하게 펼쳐진다. 나의 한심함이나 너의 찌질함, 우리들의 아쉬운 인생사가 영화라는 만화경 위에 형형색색 내 펼쳐진다.


구덩이에 빠졌을 때 우리가 가장 먼저 해야 할 일은 구덩이를 키우는 일이 아니라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일이다. 영화에서는 우리가 만나는 구덩이들을 다각도로 나열하면서 구덩이를 더 키우는 일들이 어떤 것이고, 구덩이에서 빠져나오는 것이란 어떤 것인지에 대해 생각하게 한다. 살면서 만나는 구덩이들은 여러 형태로, 여러 방식으로 우리를 잡아끌지만 우리는 빠져나오기 위해 에너지를 집중하지 않을 때가 많다. 구덩이를 넓히는 혹은 구덩이를 빠져나오는 주인공의 모습은 옴니버스 이야기 속에서 주름졌다 펼쳐지며 하모니를 만들어내는 아코디언 같다.


영화 <메기>는 흔들리는 사람들의 삐걱이는 이야기이자 불안정한 우리들의 불투명한 삶이다. 형광빛을 뿌리는 배우들의 빛나는 연기는 부조리극 같기도 하고 블랙코미디 같기도 하다. 알록달록한 인생사 속에서 무거운 메시지들이 우스꽝스러움으로 똘똘 감겨 아름답게 피어오르지만, 나약하고 흔들리는 사람들 가운데에서 메기는 흔들림 없이 고요하게 어항의 밑바닥에 깔려있다. 메기는 산발적인 이야기들을 하나로 꿰는 구심점이자, 불안정한 사람들의 위안이다. 다양한 이야기들이 삐걱삐걱 어우러지는 이 영화는 나를 비추는 거울 같기도 하다. 그런 의미에서 이 영화는 나를 우리로, 우리를 세상으로 꿰며 그 가운데 위로를 던지는 작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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