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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Nov 13. 2017

순례자가 되어 길을 떠나다

이스라엘 성지순례 에세이

순례(pilgrimage)는 인간 욕망이다.


그렇다. 누구나 가지고 있는 인간본성(human nature), 그 깊숙한 곳에 뿌리내려 있는게 바로 순례다. 이 욕망은 더 나은 삶에 대한 인간의 보편적 욕구이며 이는 정화(purification)에 대한 간절한 바람이다. 종교성이 인간성의 한 중요요소라고 본다면 순례는 성스러운 삶을 위한 거룩한 행위이며 그  표현이다. 그래서 인간들은 고대로부터 성스러운 곳을 향하여 방랑자처럼 길을 떠났나보다. 이 거룩한 순례행위는 그리스도인, 유대인, 무슬림 그리고 불교인과 힌두교인 등 많은 신앙인들이 오랫동안 시행해 온 아름다운 전통이다. 비바람맞으며 위험에도 아랑곳 않으며 안락한 세속적 삶을 잠시 뒤로하고 자기정화(self-purification)란 이름으로 기꺼이 순례를 떠났다. 자기정화의 순례길을 가는 순례자는 헌신, 참회 그리고 감사의 마음을 노자처럼 가득 채웠다. 순례 중이나 후엔 그 순례의 열매로 축복이나 기적을 바라기도 하였다. 결코 쉽지 않은 육체적 고난을 감내해야하는 순례는 여행이란 단어와 근본적으로 다르며 순례는 지상의 삶을 천상으로  격상시키기에 내면적이자 영성적인 여정이다.



오랜 역사를 지닌 가톨릭 순례는 순례자가 지나는 장소, 만나는 사람 또 순례 중 일어나는 작은 일들을 통해서 오직 한분이신 ‘그분’을 만난다. 순례는 그래서 자신의 변화를 체험하는 성스러운 시간이다. 순례체험은 성서속의 이야기들은 직접 생생하게 되살아 남으로 새로운 의미를 갖게 되고 순례자의 영성의 눈도 밝게 되는 것이다. 그래서 19 세기 프랑스의 작가 프랑수아-르네 샤토브리앙(François-René Chateaubriand)은 “(순례를 마치고)고향으로 돌아온 순례자의 신념은 더 깊어졌고 편견은 더 낮추어 졌다(There never was a pilgrim who did not come back to his village with one less prejudice and one more idea).”라고 했다.


예수님 시대때도 예루살렘 성전순례는 일년에 세번해야하는 유대인의 의무였다. 헤롯 대왕의 통치기간 동안 약 30만에서 50만 명의 유대인 순례자들이 유월절, 초막절, 그리고 오순절의 전통적 전례 행사를 위해 예루살렘에 모였다고 한다. 예수님도 12세때부터 가족과 함께 다윗의 도성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갔다(루가 복음 2:41-42). 바로 그 솔로몬의 성전이 있었던 바로 그 자리 바깥 벽으로 요즘 유대인들은 성지순례를 간다. 거기엔 그들 선조들의 무덤이 있으며 그리스도인과 마찬가지로 신성한 장소이다. 이 성전의 벽이 ‘통곡의 벽’이라 일컫는 바로 그 서벽이고 이 고대의 벽 사이사이에 자신의 소망을 적은 쪽지를 넣으며 유대인들은 기도한다. 이 통곡의 벽이 있는 예루살렘의 구시가에서 가톨릭신자들은 그리스도의 발자취를 따라 걷는다. 이 길은 ‘십자가의 길’로 보통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 부른다. 가톨릭성당안의 십자가의 길 14처와 똑같은 것이다. 무슬림들은 옛 성전터인 알-악사 모스크와 주위의 다른 모스크 참배를 위해 예루살렘으로 순례를 온다. 그들의 예언자 모하멧이 승천했다는 바위도 바로 이곳에 있다.


이 성서의 고향인 이스라엘/팔레스타인 출신 순교자 유스티노 성인(St Justin Martyr. AD 100-165)은 다음과 같이 말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탄생의 증거를 원한다면 베들레헴에 가서 스스로 그리스도가 태어난 바로 그 동굴과 뉘여진 구유를 보라(If anyone wants proof for the birth of Jesus Christ, let him go to Bethlehem and see for himself both the cave in which he was born and the manger in which he was laid).”


초기의 가톨릭 순례자들은 걸거나 말을 타고 또 지중해 바다를 배로 건너 순례를 갔다. 그들의 순례는 깊은 신앙과 자기 희생이 없었으면 하기 힘든 멀고도 긴 여행이었다. 그리고 초기의 성지순례자들은 여러 위험에도 직면했을 것이다. 로마제국의 그리스도교 승인 후로는 조직화된 순례 시스템이 개발되었고 가톨릭 교회도 이에 따라 이스라엘 성지순례길을 개발하고 성서의 땅 곳곳의 성지찾기와 보존할 곳도 연구조사하며 순례자의 성지순례를 도왔다. 초대교회의 위대한 순례자는 콘스탄틴 황제의 어머니인 헬레나 성인이었다. 그분이 아니었더라면 지금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 곳곳에 흩어진 성서 이야기속의 정확한 성지는 영영 잃어버렸을지도 모른다. 중세엔 유럽의 성지 순례자들을 도우기 위해 여러 수도원들이 창설되었으며 그들의 일은 ‘호스피스’를 순례길을 따라 설치하고 운영하며 순례자들을 도운 것이었다. 이 중세의 호스피스는 지금의 호텔개념과 병원개념이 합쳐진 것이다. 또 순례길을 따라 순례자들을 보호하기 위해 군인들이 곳곳에 배치되기도 했다. 그리고 전쟁이 일어난 지역은 순례자들이 안전하게 통과할 수 있도록 특별법도 있었다고 한다. 거기에다 순례자는 서신으로 우편서비스까지 이용할 수 있었다고 하니 중세시대에 얼마나 많은 이들이 이스라엘로 성지순례를 떠났고 그 시스템이 발달 되었는지 알 수있다.



먼길을 온 구약성서시대의 유대인 순례자들은 예루살렘이 보일 때 너무 기뻐 노래와 춤을 추었다고 한다. 구약성서의 시편 122 편에는 예루살렘 성전을 순례하는 것이 얼마나 기쁜지 이렇게 말하고 있다.


“그들이

‘우리 주님의 집으로 가자!’


라고 말했을 때 나는 기뻤다.

아, 예루살렘...

우리는 벌써 주님의 성문안에 서 있구나.”


-시편 122

I was glad when they said to me,

“Let us go to the house of the Lord!”

Our feet are standing within your gates,

O Jerusalem.”


-Psalm 122

https://brunch.co.kr/@london/6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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