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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Dec 06. 2017

대림절의 기다림과 크리스마스...

런던 에세이

둥근 대림화관(Advent Wreath)위 자주색 대림초를 밝히면 크리스마스의 설레임이 일어납니다. 이제 몇 주 앞으로 성큼 다가온 크리스마스를 맞아 모두들 몸도 마음도 다 따뜻하길 기도합니다. 성당 밖은 이제 한참 겨울의 정점으로 치달아

칠흑같이 어둠이 짙어지는데 비해 성당 안은 대림초가 켜져 따뜻하고 밝아 보입니다. 어둠과 밝음의 극명한 대조입니다. 밖이 더 어두울수록 안은 더 밝게 보입니다.


영국의 예수회 사제이자 시인이었던 ‘제라드 만리 홉킨스(Gerard Manley Hopkins)’신부도 크리스마스를 맞으며 이 어둠과 밝음을 이미지로 삼아 우리 모두가 성탄절의 의미인 밝음속에 살기를 아래의

시에서 염원하였습니다.


Moonless darkness stands between.

Past, the Past, no more be seen!

But the Bethlehem Star may lead me

To the sight of Him Who freed me

From the self that I have been.

Make me pure, Lord: Thou art holy;

Make me meek, Lord: Thou wert lowly;

Now beginning, and alway:

Now begin, on Christmas day.

    -Gerard Manley Hopkins­


달빛없는 어둠속.

과거, 그 과거는 이제 보이지 않는다!

대신, 베들레헴의 별이 날 인도하소서

지금까지 살아온 나로부터

해방시킨 그 분앞으로

맑게 살게 하소서, 주님: 당신이 거룩하신 것처럼;

겸손하게 하소서, 주님: 당신이 낮추신 것처럼;

지금부터 그리고 항상:

새 출발을, 이 성탄절에.

    -제라드 만리 홉킨스 (저의 번역)



이 시는 첫째로 짥고 간결하지요. 우리의 시조나 일본의 하이쿠같은 분량이며 짧은 만큼 주는 메시지도 간결하고 읽기 쉽습니다. 먼저, 크리스마스를 맞는 한겨울밤은 춥고 어둡지요. 대낮의 태양도 아닌 어렴풋한 달빛마저 없다고 이 시의 첫째줄에서부터 시작합니다. 그리고 시인은 이 춥고 어둠속에 서 있습니다. 이 추운 어둠속에선 아무것도 볼수없고 또 보질 못한다는 것은 기억에서 사라짐을 뜻합니다. 이에 시인은 물리적 어둠 속 뿐만아니라 영혼의 어두운 기억 즉 둘째줄에서 지난 자신의 과거를 끄집어냅니다. 과거는 우리의 기억속에 항상 존재하죠. 자주 기억속에서 괴롭히기도 하고요. 여기서 과거가 보이지 않는다는 말은 육안으로 안보이는게 아닌 기억속에서 사라졌음을 ‘시각상’으로 설명합니다. 과거는 어둠처럼 까맣게 칠해져 이제 분간을 할수없다는 것이죠. 한편으론, 이젠 더이상 과거에 얽매이지 않는 자유를 뜻하기도 합니다. 시인은 이 어둠속에서 자유인입니다. 어찌보면 역설일 수도 있지요. 하지만 어둠속의 이 자유는 진정한 자유가 아닙니다. 이제 과거로부터 자유롭지만 ‘살아가는’ 인간이기에 ‘방향(direction)’필요합니다. 어둠속에서 길을 잃은 거나 마찬가지입니다. 즉 삶에서 빛이 필요하단 이야기고 이렇게 어둠속에서 마냥 살수는 없죠. 한편으론 현대의 많은 이들은 이 어둠속 자유만 알고 살고 있지요. 시인은 어둠속에서 본능적으로 한 줄기의 빛을 바라고 이 빛이 동방박사가 보고 따라갔던 ‘베들레헴의 별(the Star of Bethlehem)이라고 합니다. 신약 복음서에 기록된 이 별은 영국에서 크리스마스 트리를 장식할때 항상 트리의 맨 꼭대기에 붙여 놓습니다. 이 별을 달지 않으면 크리스마스 트리가 아니죠. 또 성탄절 캐롤송에도 자주 등장합니다.


“오, 경탄의 별, 밤의 별.

왕처럼 고고한 빛을 지닌 별,

서쪽으로 인도하는, 아직도 가고있는,

주님의 큰 빛으로 우릴 인도하소서.”

“O star of wonder, star of night,

Star with royal beauty bright,

Westward leading, still proceeding,

Guide us to thy perfect light.”


이 별은 상징적으로 순례자인 그리스도인들의 삶의 지표입니다. 어디로 가야하는지,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 ‘진리쪽으로’ 방향을 잡아주죠. 메시아 즉 하느님께로 향하는 그리스도인의 인생에서 그 ‘길잡이’가 됩니다. 현대의 GPS나 톰톰처럼 길을 찾는 유용한 수단이죠. 이 시에선 이 베들레헴의 별이 하늘에 떠 있는 밝은 별이 아닌 마음속의 별로 읽을수 있습니다. 여기서의 과거는 지난 세월 결코 행복했던 또 기억하고 싶은 것이 아님을 눈치채게 되는데 지금까지 살아온 ‘자신으로 부터의 해방’을 염원하는데서도 이 마음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이 빛을 본다는 것은 과거로부터 미래로 옮겨가는 행위(processing)을 요구합니다. 시인은 ‘어두운 과거’로부터의 새 출발을 원하고 있는 것이죠. 그리고 당당히 과거의 자아로부터 해방을 시켜주신 이는 그 분, 동방박사가 베들레헴의 별을 따라가 만나뵈었던 아기 예수, 즉 메시아를 뜻하는 것이고 이는 시인의 ‘믿음(faith)’입니다. 이 분을 뵈었다는 것은(신앙이 갖고 있다는 것은) ‘깨달음’이 있었다는 것이며 이 깨달음이 달빛마저 없던 과거의 어둠을 몰아내 주었습니다. 해방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 분의 면전(in the sight of Him)에선 무엇하나 숨길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이 분이 바로 세상과 인간을 비추는 ‘빛 자체’이시기 때문입니다(Christ is the Light). 이 빛으로 비추면 한자락의 어둠도 있을수가 없다는 말도 됩니다. 이 밝고 거대한 빛이 어둠을 싹쓸이로 몰아내기 때문이죠. 시인은 그분 면전에서의 이 깨달음으로 자기의 못난 과거로부터 헤어나올 수 있었고(해방되고) 새 출발을 할수 있는 원동력이 되었습니다. 또 이 깨달음은 이제  과거와 다른 새 삶을 사는 것으로 인도됩니다. 한마디로 ‘그 분처럼’ 사는 것입니다. 그 분은 ‘큰 빛(The Light)’이시고 시인은 ‘작은 빛(a light)’이기 때문이죠. 그래서 시인은 그분처럼 살게해 달라고 기도합니다. 첫째로, 아무런 세상의 욕심이 없는 ‘순수함’으로 사는 것이고 또 이 삶을 위해 ‘낮추는’ 삶을 살게 해달라고 합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예수성탄)는 그냥 메시아가 탄생한 날을 경축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분을 따르는 그리스도인은 자신의 삶을 반추해보는 날이며 바로 ‘새 삶의 탄생일’이 되어야 한다고 시인은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크리스마스는 구세주 아기

예수의 탄생일이자 새 삶의 ‘출발점’인 것입니다.

베들레헴 성탄성당의 구유동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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