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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Dec 16. 2017

자기희생의 상징: 펠리칸

이스라엘 성지순례-예루살렘


예루살렘의 최후의 만찬 장소였던 '세나클(Cenacle)'에서 밖으로 나가는 문쪽 고린토식 기둥에 펠리칸(Pelican) 심볼 조각이 남아 있다. 이 심볼로 이곳이 한때 가톨릭 성당이었음을 증명해 주고 있다. 중세유럽에서 펠리칸은 중요한 상징이었다. 그것은 어미새가 자식들에게 먹일 먹이가 없으면 자식을 살리기 위해 직접 가슴을 뜯어 피를 흘려 자식에게 먹이는 것이다. 그래서 이 상징적인 새를 그리스도의 십자가 죽음과 연결시켰다. 그래서 펠리칸은 예수의 수난(the Passion of Jesus)과 성체성사(the Eucharist)의 중요한 상징이 되었다. 초기와 중세 가톨릭 미술, 건축, 조각엔 펠리칸은 많이 나타난다. 중세 신학자 겸 철학자 토마스 아퀴아스는 “당신을 흠숭하나이다(Adoro te devote)”란 성가에서  “사랑스럽고 거룩한 펠리칸, 가슴으로부터 (영적)영양을 공급할 수 있으며...(loving divine pelican, able to provide nourishment from his breast...)"라고 묘사했다.


스페인의 무적함대 ‘아마다’를 물리친 영국의 처녀 여왕 엘리자베스 1세도 자신을 직접 이 펠리칸 심볼에 적용했으며 가슴에 피흘리는 펠리칸 어미를 자신에 빗대어 “성공회의 어머니(mother of the Church of England)"라 칭했다. 당시 니콜라스 힐리아드(Nicholas Hilliard)란 화가는 직접 이를 여왕의 초상화 가슴 부분에 조그맣게 그러나 또렸하게 펠리칸을 그려 넣어 잉글랜드 국민들에게 펠리칸의 이미지를 각인시켰다. 심지어는 유명한 ‘킹 제임스 역 영어 성서’의 1611년 판에는 책표지 밑에 펠리칸이 보이기 한다.


어쨋든, 펠리칸은 ‘자기 희생’이라는 상징을 가지고 여러모로 변용되어 차용되었다.


https://brunch.co.kr/@london/187


아래 그림: The ‘Pelican’ portrait of Queen Elizabeth I (1533-1601) associated to Nicholas Hilliard

The ‘Pelican’ portrait, Queen Elizabeth I

associated to Nicholas Hilliard, 1573

Oil on panel © Walker Art Gallery, Liverpool

여왕의 가슴 중앙에 펠리칸이 보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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