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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r 05. 2018

어느 흙수저 배우의 성공이야기

아카데미 상: 게리 올드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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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카데미 시상식이 끝났다. 누가 누가 상을 받았는지 미국뿐 아니라 전세계 미디어가 다투어 보도한다. 케케묵은 논쟁거리인, 영화도 예술(?)이라치면, 어떻게 작품을 자로 재듯 1등과 2등을 가를수 있을까? 소설과 시, 회화와 조각 그리고 음악까지 상품과 중품 그리고 하품으로 등수를 감히 가를 수 없는 예술작품에 등수를 줄줄이 매기는 것은 어이없고 쓸데없는 짓 아닌가? 등수는 보는 이의 주관적인 입장이지 객관적 수치로 말할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영화상’은 작품상이 아닌 ‘인기상’이라해야 오히려 맞지 않을까?



하지만, 누가 또 어느 개인이 상을 받았다는 것은 또다른 의미가 있다고 본다. 상을 탄 작품이 영향과 영감을 주듯, 상을 받은 연기상 주역들도 나름의 영향과 영감을 준다고 본다. 올해는 영국배우 ‘게리 올드만(Gary Oldman)’이 남우 주연상을 받았다. 미국적이고 영어로 제작된 영화를 주대상으로하는 영화제임에도 세계적인 관심을 끄는 이 영화제에서 최고상을 가져간 이 영국인의 주연상은 거시적으로 영국사회를 다시금 돌아보게 하는 계기도 되었기에 이 배우의 수상엔 나름의 의미가 크다고 본다.



게리 올드만은 런던에서 나고 자랐다. 그는 토박이 ‘런더너’이다. 그가 자란 런던 동남부의 ‘뉴 크로스(New Cross)’지역은 북쪽의 첼시(Chelsea)지역이나 가까운 남쪽의 ‘블랙히스(Blackheath)’ 지역과 정반대되는 가난하고, 노동자 계층이 살며, 지역 인프라도 좋지 않으며, 그게다 범죄빈도도 높은 지역이다. 소위 이미지가 안좋은 지역이다. 게리 올드만이 살았을 당시는 가난한 아일랜드 이민자들이 몰려 살았고 그들은 가까운 ‘써리 독’이나 지금은 다국적 금융기관이 밀접한 런던의 새 금융지구 ‘카나리 워프’의 부두에서 일하던 노동자들이 대부분 복작대며 살던 삶의 터전이었다. 지금은 노인이 된 영국의 국민배우 ‘마이클 케인’도 이곳에서 가까운 지역에서 나고 자랐다. 이제는 아이리쉬 대신에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더 많이 몰려사는 구역이 되었고 이 구역엔 흑인들을 백인들보다 더 많이 볼수 있는 구역이 되었다. 그렇지만 이 동네에 위치한 예술대학으로 유명한 ‘골드 스미스 대학’이 위치해 있고 새로운 아방가르드 예술의 전초기지로 캠퍼스 주변 거리와 카페엔 젊은 새내기 예술가들로 활기가 넘치는 곳이기도 하다. 하지만 이곳에 적을 두고 사는 일반 시민들은 아직도 런던의 노동자계층이나 이민자들을 대변하는 동네로 여겨진다.



게리 올드만은 이 동네의 평범한 ‘하참 파크(Hatcham Park)거리에 있는 집에서 자랐다고 한다. ‘뉴 크로스 게이트’ 역에서 그다지 멀지 않다. 아직도 동네 귀퉁이엔 알콜 중독자였던 그의 아버지가 자주 술에 취해 친구들과 고성방가를 했을 펍(pub),‘더 파이브 벨(the Five Bells)’술꾼들을 맞고 있다. 영국인이라면 누구나 아는 연속극 ‘이스트엔더스(EastEnders)’의 배경과 너무도 흡사한 평범한 주민들이 복작대고 살며 이곳에서 오래 산 주민들은 아직도 이 펍을 미팅장소로 삼고 여기서 서로 만나 안부를 묻는 곳이다.



어디서 사람들을 만나면 ‘뉴 크로스’에 산다고 자랑스레(?) 말못하는 이 동네에 성당이 있었고 난 여기 성당에서 살았고 일을 했다. 이제는 노인이 된 이민자들이었던 아일랜드인들, 60년대에 몰려든 카리브해 연안 옛 영국 식민지의 흑인들과 그 뒤를 이어 몰려와 사는 아프리카 이민자들이 성당의 신자들이었다. 가끔은 가까운 골드 스미스 대학 경내를 산책도 하고 이 지역의 어수선한 거리를 걸으면 어느새 마주치는 곳이 이 ‘더 파이브 벨’ 펍이었다. 여기서 오래 산 신자분 자주 말씀하셨다. 이 펍의 단골들은 게리 올드만이라면 ‘누구 누구의 아들 녀석이지’로 기억한다고 했다. 그 아버지는 게리 올드만이 아직도 어렸을 때 가정을 버린 알콜중독였다. 가정을 버린 아버지는 한때 선원이었고, 용접공이었며, 하루 하루가 힘들었을 거친 노동의 피로를 이 펍에서 술로 풀어냈고 고성방가로 스트레스를 내뱉었을 것이다. 그는 그저 이곳의 다른 사람들과 똑같은 평범한 소시민이었다. 이런 환경에서 자랐을 게리 올드만을 기억하면 가끔 그가 출연한 영화들을 떠올렸다. ‘시드 엔 낸시(Sid and Nancy)’도 그렇고 특 ‘닐 바이 마우스(Nil by Mouth)’는 그가 자란 이곳의 환경과 너무도 비슷했다. 그래서 게리 올드만은 ‘레옹’이나 ‘배트맨’ 영화에 나오는 역도 꽤 어울리지만, 나만의 편견인지 사회의 어두운 면을 묘사한 리얼리티 영화들에 더 잘 어울리는 것같았다.



게리 올드만은 겨우 16살에 학교를 그만두고 스포츠 용품을 파는 상점에 점원으로 일을 했다고 한다. 이곳에서 가까운 페캄(Peckham)이었다. 나중에 더 남쪽인 시드컵(Sidcup)에 위치한 ‘로즈 브루포드 대학(the Rose Bruford College)’에서 연기를 익혔다고 한다. 영국 연기지망생들의 엘리트 학교들인 ‘라다(RADA.Royal Academy of Dramatic Art)’나 ‘람다(RAMDA. The Royal Academy of Music and Dramatic Art)가 아닌 런던시민들도 이름을 잘 모르는 학교에서 연극과 영화코스에 등록한 것이었다.



게리 올드만의 환경이나 학력으로 보면 어떻게 영국사회가 굴러왔는지 ‘소셜 모빌리티(social mobility)’란 관점에서 중요하다고 본다. 그의 성공은 어떻게 보면 영국의 사회 시스템이 제대로 작동했다고 보여지기도 한다. 그리고 흙수저에서 열심히 노력해 자신의 분야에서 영국뿐 아니라 세계에서 최고를 이룬 그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그리고 그의 잠재성을 알아보고 그를 기꺼이 반긴 사회시스템이나 분위기도 본받을 만하다. 물론, 개인적으론 그도 실패와 좌절도 맛보아야 했을 것이다. 특히 여러번의 이혼경력으로 볼 때 개인사가 그렇게 순탄치만은 않았을 것이다. 또 알콜 중독인 아버지처럼 그도 한때는 알콜의 깊은 늪에서 헤매었다고 한다. 그래서 남에게 밝히지 못하는 그만의 부단한 노력과 인내 그리고 연기에 대한 열정이 분명히 있었을 것이다. 그런고로, 지금 한창 인기를 얻고 있는 영국배우들을 비교해도 게리 올드만의 성공은 여러모로 높게 평가받아야 한다고 본다. 일년에 수천만원하는 등록금을 내는 사립학교를 다녔고 그로인해 옥스브리지와 영국의 다른 명문 대학을 나온 배우들, ‘히들스톤’이나 ‘레디메인’ 그리고 ‘컴버바치’와는 또다른 각도에서 이 명배우의 성공을 조명해보아야 할 것이다. 007 영화의 ‘M’으로 나온 ‘쥬디 덴치’는 지금 영국의 영화계에선 소위 '워킹 클래스' 청년들이 들어와서 활동할 공간이 점점 줄어든다고 걱정했다.  그런만큼 흙수저들이 자신의 잠재성을 펼칠 무대로 향하는 길목에 많은 암초가 있음을 말하는 것이다. 그 암초들을 제거해줘야하는 지금의 영국‘소셜 모빌리티’ 시스템에 문제가 있다는 말도 된다. 그녀의 말처럼 영국의 사회 시스템도 우리나라처럼 ‘빈익빈 부익부 사회로 돌아가지 않을까 걱정된다. 아카데미상과 골든 글로브 그리고 영국 BAFTA까지 싹쓸이 한 게리 올드만의 ‘윈스톤 처칠’경 역의 천재적 연기와 더불어 그의 성공은 그래도 옛날  영국의 사회 시스템이 지금에야 효과를 보고있다는 것도 된다. 다만, 그 효과를 축하하며 ‘소셜 모빌리티’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도 병행되어야 할 것이다.



몇년 뒤, 다시 런던 동남쪽 ‘뉴 크로스’를 지나친다면 혹시 게리 올드만이 자란 바로 그 거리에 ‘청색 접시(blue plaque)’를 볼 수 있지 않을까? 벽에 붙여놓은 그 접시엔 그가 자란 곳이 바로 이곳임을 새겨 놓은 글자들이 궂은 영국날씨에도 번쩍거릴 것이다. '2018년 아카데미 주연상’을 받은 명배우 ‘게리 올드만’이 바로 여기서 자랐고 뛰어 놀았다고… 그리고 이 표지를 보고 자랄 이 동네의 많은 아프리카계 이민자들의 아이들도 기회가 평등하게 보장되어 자신의 잠재성을 마음껏 펼치는 열린 사회에서 계속 자랄수 있기를 기원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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