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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Aug 03. 2018

고흐가 하늘로 날아간 성당

런던 율리시즈 -미술 에세이

"두 갈래 길에서 서서 어디로 갈까?"


미국 시인 프로스트의 '가지 않은 길(The Road Not Taken)'처럼 두 갈래 길을 바라보며 어쩔수 없이 '한 길'만을 선택해야하는 갈림길에 설 때가 많다. 고흐도 그 두 갈래 길에서 많이 방황하고 서성거렸을 것이다. 그러나 누구도 가지 않은 길이란 없다. 앞서 간 사람들이 있었기에 길이 생겼다. 그걸 '역사'라고 해야 하나. 많은 사람들이 걸어다녔던 길이든 오솔길처럼 하루에 몇명이 다니던 길이든 길은 그만의 역사를 지니고 있다. 역사란 시간의 연대표다. 연대표에 기록되었든, 아님 지워졌든, 우리의 삶은 계속해서 기록된다. 그런 연대기적(Diachronic)시간의 흐름을 거슬러 여기 갈래 길 중앙에 '성당'이 서있다. 성당은 왼편 길이든 오른편 길이든 그 중앙에 우뚝 서있어 연대기적 시간의 흐름을 넘어서 있다. 즉, 공시적(Synchronic)시간 선상에 있다. 고흐는 한때 성직자가 되려 했다. 벨기에의 탄광촌에서 직접 사목경험도 했다. 성당은 그의 경험을 일러준다. 한때 그 길로 갔었던 경험을 말이다. 고흐는 끝까지 그 길로 가지 못했다. 그래서 고흐는 다른 길을 찾아 나섰다. 하지만 한때 고흐가 갔던 그리고 계속해서 가려했던 그 길은 예술가 고흐의 자양분이 되었음엔 틀림없다.


오베르-수르-와즈(Auvers-sur-Oise)란 작은 타운은 파리에서 북서쪽 약 27km에 위치해 있다. '일 - 드 - 프랑스'에 속하니 파리 근교이다. 우리나라의 경기도 쯤이다.고흐는 여기서 자신의 생을 정리했다. 한 사람의 인생을 흐트러진 책들을 선반에 차곡차곡 정리하듯 할 수는 없지만 이때는 1890년이었다. 이젠 100년도 훨씬 넘었다. 이 프랑스의 타운은 고흐로 인해 또 고흐의 작품으로 영구히 기억되는 곳이다.  특히 이 성당은 앞서 말했듯이 그냥 종교건축물이 아닌  고흐의 작품으로 연대기적 흐름을 넘어 공시적 시간선상에 있음으로 '불멸화(immortalized)'되었다. 위대했지만 초라했던 고흐때문에...


공시적 시간선상의 이 성당도 사실 연대기적 역사로도 만만치 않다. 중세기인 12세기부터 13세기 사이에 지워졌다하니 약 800년 역사의 성당이다. 정식 이름은 성모승천 성당(the Church of Our Lady of the Assumption)이다. 8월 15일이 축일인 성모승천 교리에 따라 성당안 뜰에 있는 두 갈래길이 회오리 바람처럼 육중한 성당을 하늘로 들어 올리는 느낌도 든다. 후기 로마네스크(the late Romanesque)스타일 성당이지만 고딕식 뽀족창문도 로마네스크의 완만히 둥근 창틀과 함께 보인다. 두 시간대를 합쳐 놓았다.


예술사가들은 이 가톨릭 성당이 고흐의 네들란드 느넨(Nuenen) 시기를 연상시키며 거기 프로테스탄트 교회를 떠올리게 한다고 한다. 고흐는 비록 남쪽인 프랑스에 살고 그림을 그렸지만 바람 세찬 북녁 고향을 그리워했을 것이다. 이 그림에서 보이는 성당은 사실 이 성당 뒷편 모습이며 그래서 그림 뒷편에 성당 정문이 있다. 전체적으로 밝은 느낌의 그림이나 자세히 보면 성당 안은 어둡다. 그리스도의 빛을 밝혀야하는 성당안이 어두움이라면 약간 문제가 있다. 그리고 성당건물이 서있는 곳도 그 자체의 그림자에 갇혀있다. 오픈된 푸른 하늘과 대조적이다. 그래서 연대기적 흐름을 뛰어넘어야 할 성당이 밝지도 또 빛을 발하지도 못한다. 이는 그저 자연적인 현상을 그대로 보고 그린 고흐가 아니었다.


고흐가 엄격한 복음주의적 교회로부터 떠난 후 동생 테오(Theo)에게 편지를 썼다. 그리고 이 편지안에 셰익스피어의 '헨리 4세 제 1부(Hrnry IV, Part 1)'를 인용했다. 1880년 7월이었다. 그러니 이 그림 그리기 딱 10년전이었다. 그의 셰익스피어 인용은 어둡고 텅빈 성당은 "텅비고 몽매한 설교(empty and unenlightened preaching)"를 상징한다고 했다.


“그들의 하느님은 성당안에서 술취한 셰익스피어의 폴스타프 하느님과 같다(Their God is like the God of Shakespeare's drunken Falstaff, 'the inside of a church')".


여기서 폴스타프(Falstaff)는 셰익스피어의 연극에 나오는 '존 폴스타프 경(Sir John Falstaff)'을 지칭하며 무려 네 곳의 희곡에 나오는 셰익스피어가 창조한 가공의 인물이다. 그는 코믹하고 우스꽝스런 인물이며 대게 뚱뚱하고 우매한 인물로 나온다. 하여튼 고흐는 이 셰익스피어 작품속 인물을 인용하며 제 구실을 못하는 당시의 그리스도교를 우회적으로 빗대었다.


고흐가 세상을 떠난해에 그린 이 아름다운 성당이 위치한 '오베르'는 다른 예술가들도 즐겨 찾고 또 살기도 했다고 한다. 고흐를 돌보고 치료한 의사 친구인 폴 가셰(Dr. Paul Gachet. 아래 고흐의 그림 참조)가 이곳에 살았기에 고흐가 여길 왔다고 한다. 그가 이곳에 온 게 1890년 5월이었고 그가 생을 마감한게 그 해 7월이었으니 겨우 두달 남짓 고흐는 이곳에서 살았다. 들리는 말에 의하면 동생 테오가 형 고흐의 장례식을 바로 이곳 성당에서 치르려했으나 당시(100년도 넘은 1890년) 가톨릭 교리에 따라 프로테스탄트 신자인 고흐인데다 자살이란 이유로 장례식이 거부되었다고 한다. 결국 고흐는 37년의 짧은 생애를 살다, 이곳 타운의 공동묘지에 묻혔다.  임신한 여인 마리아와 그녀를 동반한 요셉을 냉정하게 거절한  베들레헴의 그 여인숙 주인이 이 젊은 커플이 후에 누군지 알았다면 어떤 마음이 들었을까? '방 없어요!'하며 물리친 이 젊은 커플의 배속 아들때문에 베들레헴이 온 세상에 알려진 것을 안다면, 그래서 우후죽순 수많은 베들레헴의 호텔들이 전세계로 오는 손님으로 호황을 맞는 지금을 안다면 어떤 생각이 들까? 오베르 성당은 오늘도 묵묵히 서있지만 한때 거절한 초라한 화가땜에 세상에 그렇게 알려졌고 베들레헴처럼 전세계에서 사람들이 찾아온다. 자신을 화폭에 담으며 짧게 살다간 화가땜에 이 성당은 유명세를 맘껏 치르고 세계적 명사가 되었다.


형인 고흐와 많이 싸우고 또 그런 형을 가장 잘 이해한 동생 테오도 형의 죽음 6개월 뒤에 세상을 떠났다. 그는 이곳 공동묘지 형의 무덤옆에 나란히 묻혔다. 그러나 그게 다는 아니다. 그렇게 그들은 세상으로부터, 또 예술세계로부터 가치를 전혀 인정받지 못하고 갔지만 불후의 명작들을 세상에 남겼다. 이 명작들로 인해 화가 고흐는 계속해서 반복 부활하며 사람들의 마음속에 살아있다. 프로스트의 시처럼 한 길을 택했고 다른 길은 포기했지만 그의 화폭에는 여전히 그가 가지않은 궁금하고도 신비한 '가지않은 길'을 그렸다. 그래서 예술을 불멸이라 할까. 이 성당안의 불빛이 밝아지는 날, 바로 그날 우리 모두 승천하는 날이 아닐까? 그때까지 이 성당을 중심에 두고 두 갈래 길을 선택해야 할것이고 계속해서 길을 따라가다 결국 승천이 일어나는 그림 뒷편 성당의 정문에서 서로 만나리라... 끊없이 펼쳐진 일-드-프랑스의 노란 밀밭을 아래로 내려다보며 푸르디 푸른 창공으로 훠훠 날개 물들이며 날아 간 고흐처럼...


그림:

De Kerk van Auvers, 1890. by Vincent van Gogh. Oil on canvas. 74 cm × 94 cm (37 in × 29.1 in), Musée d'Orsay, Paris

사이트: www.musee-orsay.fr/en/

참조:

Erickson, Kathleen Powers. At Eternity's Gate: The Spiritual Vision of Vincent van Gogh, 1998, ISBN 0-8028-4978-4. Page 171.

오베르 성모승천 성당
고흐 묘비석 옆에 해바라기가 있다.
폴 가셰 의사. 아마추어 화가이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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