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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Aug 06. 2018

지게진 아낙네?

런던 율리시즈-미술사 에세이-노동하는 여성

"지게!"

처음 이 그림을 보곤 깜짝놀랐다. 과연 유럽에도 '지게'가 있었을까? 농촌에서 짐을 나르는 도구로 등에 지던 '지게'말이다. 윗 그림을 보면 분명히 우리나라 농촌에서 쓰던 지게다. 모양도 그렇고 멜빵을 양 어깨에 걸친 모습도 똑같다. 여기에다, 지게를 진 사람이 여성이어서 놀랍다.


위의 그림은 '어빈 퍼친거(Erwin Puchinger. 1875-1844)'란 오스트리아 출신 화가의 작품이며 1940년 작품이니 그리 오래되지 않은 그림이다. 그림의 제목이 '농촌 아낙네(PEASANT WOMAN. Bäuerin mit Kinder)'인 것처럼 들판에서 짚을 지고 가는 아낙네의 모습이 보인다. 옆에는 그녀의 딸인지 물통(우유통?)과 막대기를 들고 같이 들판을 걷고 있다.


어빈 퍼친거는 1875년 7월 7일 오스트리아 비엔나에서  당시 유명한 공직자 집안에서 태어났다. 커서는 새로 문을 연(1888) '그래픽예술 연구학원(Graphic Arts and Research Institute)'에 다니다 그 후 응용미술 학교 (the School of Applied Art)에서 수학하였다. 그래픽이니 응용이니 하는 제목에서 보듯 순수회화보단 응용이나 장식예술을 많이 배운 것으로 보인다. 나중엔 유명한 벽화 화가이자 미술학교 교수였던 프란츠 폰 마쉬(Franz von Matsch)밑에서 배웠다고 하며 이 교수는 유명한 클림트 형제(Gustav 와 Ernst Klimt)와 함께 일했다고 한다. '키스'란 그림으로 오늘날까지 세계적으로 유명하고 비엔나를 대표하는 화가 중 한사람인 구스타프 클림트와 두살어린 그의 동생 에른스트였다. 그들의 합작품은 당시 오스트리아의 부유한 구매자들에게 인기가 많았고 주문도 많이 받았다고 한다. 퍼친거는 당시 유럽예술계의 세기말현상과 함께 오스트리아의 예술중심축인 비엔나에서 영향을 끼쳤으며 '전면적 예술(Total Art. Jugendstil and Gesamtkunstwerk)'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한다. 이 운동은 응용예술과 순수예술 사이의 차이를 없애는데 주력한 운동이었다. 그는 또 조국 오스트리아 뿐만 아니라 유럽 각지를 여행하고 여러 도시에서 일도 했다. 가까운 프라하로부터 먼 파리와 심지어 런던까지 가서 작업했으며 또 로마를 비롯한 이탈리아 각지를 돌며 그리스-로마의 고전미술을 직접 보고 거기에 심취하기도 했다. 파리 만국박람회의 오스트리아관에선 그의 큼직한 그림이 걸려있었다고 하니 오스트리아에선 그의 명망이 엄청 높았음을 알수있다. 퍼친거가 살았던 시대가 시대인 만큼 그는 여러 장르의 미술을 고루 섭렵했고 거기에다 30년을 미술학교에서 후배를 양성한 미술교수였기도 했다.


다시 그림으로 돌아가서 이 그림의 주인공인 농사꾼 여성의 강인한 모습 그리고 그 곁에서 같이 걸어가는 아이가 아들이 아닌 딸인 걸로봐서 약간은 예외라는 느낌이 든다. 서양회화에서 여성의 역할과 모델은 한정되었고 보통 남성들의 '응시대상(Gaze)'으로 많이 그려졌다. 여성이 등장하는 그림들의 배경은 보통 침대위나 실내환경이었다. 마네의 '풀밭위의 점심'등을 비롯한 그의 여러 그림들 심지어 드가나 피카소의 수많은 그림속의 여성들도 위의 그림처럼 강인하고 독립적인 경우가 드물다. 그리고 보통 남성의 전유물로 여겨지는 '노동'을 이 그림에서 직접 대면한다. 거기에다 당시 독일어권 표현주의 그림속 여성들이나 인기많은 클림트 그림속의 화려한 여성들 그리고 엉망으로 헝클어지진 에곤 쉴레의 그림속 여성들과도 판이하게 다르다.


하지만, 그림의 주인공과 주제를 뺀 그림 그 자체로는 당시 아방가르드 유행기법과 달리 다소 지루하고 진부한 전통적인 형식이다. 오히려 그 뒤(2차 대전 후)에 따라오는 냉전시대의 사회주의 또는 전체주의 국가들의 사실주의적 그림냄새가 물씬 풍긴다. 그래서 혹시, 이 그림이 여성의 독립적인 정체성 강조가 아닌 나치 독일의 프로파간다를 여기서 읽을 수 있는 건 아닐까? 같은 비엔나 출신의 히틀러는 1938년 3월에 오스트리아를 독일에 합병시켜버리며 이를 '재통일(reunification)'이라 했다. 이 그림의 연도를 보면 1940년이니 오스트리아가 독일에 통합된 뒤 2년 후에 그려졌고 또 1939년 독일의 폴란드 침공으로 시작된 2차대전 초반에 그려졌으니 그럴법도 하다. 하지만 자세한 내용과 정보는 찾을수가 없다.


하여튼, 이 지게 진 아낙네 그림은 정치적인 관점을 피하면 단순하게 열심히 일하는 강인한 시골여성으로 보여진다.  소매를 걷어부친 그녀의 팔뚝은 노동에 단련되었는지 튼튼해 보이고 맨발이다. 엄마도 또 그 곁의 딸도 맨발이다. 왜 맨발일까? 뒤로 언뜻 보이는 오스트리아쪽 알프스 봉우리인지 높은 산이 인물들 뒤로 보인다. 대자연 속에서 자연과 더불어 살아가는 순수한 원시적 인간의 모습으로 보이기도 한다. 우유통인지 물통인지를 든 소녀를 그려 넣은 것으로봐서 이런 자연과의 조화롭고 이상적인 삶의 연속을 지시하는 것은 아닐까? 비록, 남성이 여기선 빠졌지만 말이다. 그래서 엄마와 딸로 이어지는 모계혈통과 관련시키면 페미니즘적 관점으로 읽을 수도있다. 전쟁과 폭력 그리고 능동태와 외적 행동을 남성적 상징으로 또 조화와 균형 그리고 수동태와 내적 수용성으로 보는 여성적 상징으로 갈라 이분법적으로  해석한다면 그림의 의미도 달라질 것이다. 그렇지만 이런 관점도 서투른 것이 자연의 개발과 착취를 남성성으로 오인한다면 이 그림의 노동하는 여성을 자연과의 조화로 보기보다 노동력 '착취'로 볼 수도 있기 때문이다. 사회주의나 공산주의 국가에서 양성평등을 거론하며 여성노동력 착취를 했던 예에서도 알수 있다.


하여튼, 이 그림에선 무엇보다 오스트리아, 좀 더 넓게는 유럽의 시골에선, 우리나라 지게같은 게 정말 많이 사용되었는지도 궁금하다.


그림:

Peasant Woman with Child by Erwin Puchinger. 1940. oil on canvas. Public Domain.

Bäuerin mit Kind, Öl/Leinwand, um 1940

위 사진:

http://chungheongong.com/(C)/C-3/js1.htm?ckattempt=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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