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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Dec 29. 2018

사랑과 어둠 그리고 아모스 오즈

런던 늦은 저녁

아모스 오즈. 출처: NY Times

이스라엘 작가 ‘아모스 오즈(Amos Oz)’의 부고를 보는 순간 잡다한 여러 생각이 한번에 떠올랐다. 예루살렘 구시가의 좁고 빤질빤질한 골목들이 기억나고 거기서 쏟아지는 번잡한 소음도 들렸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간의 복잡하고, 골치아프고, 해묵은 그러나 꼭 해결해야만 하는 정치문제도 떠올랐다. 하지만 가장 먼저 떠오른 것은 죽기 전 그는 그의 아버지와 화해를 했을까? 하는 생각과 평생을 그리워했을 돌아가신 그의 어머니 ‘파냐’와 하늘나라에서 만날 것을 상상하며 가슴이 뭉클했다.



개인적으로 그의 소설책을 재미있게 읽었다. 오즈에게 감사한다. 여러모로 생각하게끔 하는 그의 소설들이었다. 비록 그의 14권에 달하는 소설 중 고작 3권을 읽었지만 짧은 기억력에도 아직 그 3권을 다 기억하는 걸보면 인상이 깊었던 책들이었다. 자서전적인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로 그의 성장과정을 이해했고 ‘나의 마이클'로 근현대 이스라엘사의 복잡한 상황과 그 속에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행복도 간접 경험했다. 마지막으로 ‘쥬다스(유다)'는 종교와 정치에 관한 것이어서 더욱 더 재미있게 읽었다. 그의 책을 읽으면서 아마추어가 도리어 용감하다고 어렴풋이 이런 사람이 노벨상을 받아야 한다고도 여러번 생각했다. 신문을 읽으니 매번 노벨상 후보에 올랐지만 상은 끝내 못받았다고 한다. 상이 무슨 대수랴. 그가 쓴 소설과 에세이로 사람들에게 큰 영향을 끼쳤으면 됐지 무슨 상까지는… 그러나 사실 그는 노벨상빼고 탈만한 문학상은 다 받았다. 심지어 몇년 전 우리나라 ‘박경리 문학상’도 그에게 수여됐다.



‘힘 또는 용기’라는 뜻의 히브리 단어, ‘오즈(Oz)’를 아모스는 스스로 선택했다. 조상으로 물려받은, 즉 아버지의 성이 아닌 ‘오즈’를 그는 택했다. 원래 그의 성은 ‘클라우스너(Klausner)’라는 동유럽과 독일계 아슈케나지 유대인의 성을 가지고 있었다. 그가 겨우 12살 때 우울증으로 고생하던 어머니가 약물과다복용으로 자살하자 소년 오즈의 인생은 180도로 달라졌다. 2년후인 14살에는 아버지를 집에 남겨두고 훌쩍 떠나버렸다. ‘훌다'라는 키부츠로 들어가 이내 성도 갈아버렸다. 우리나라에서 ‘성을 간'것이 과격하고 지독한 말인것을 참고로 하면서 핏줄과 역사를 중시하는 유대인으로서 성을 바꾼다는게 어떤것인지 대강 짐작을 해본다. 그러나 그의 자서전적 소설인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에서 그가 묘사한 아버지는 그에게 나쁜 아버지도 아니고 성을 갈만큼 철천지 원수는 더더욱 아니다. 가끔씩 연약하고 학자로 성공하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애착과 애정도 많이 보인다. 뒤늦게 런던에 와서 학위까지 받았던 그의 아버지였다. 뛰어난 머리로 여러 외국어를 말하고 쓸줄 알았던 똑똑한 사람이었다. 아마도 가까이서 지켜본 어머니의 고통과 그 죽음에 대한 그의 심한 죄책감은 오히려 어머니를 지키지 못한 아버지에 대한 반감을 가져오지 않았을까? 결코 건드리고 싶지 않고 내보이고 싶지 않은 개인사를 솔직하고 용기있게 그리고 객관적으로 기술한 그의 자서전적 책을 읽으며 괜히 가슴아픈 개인사에 대한 쓸데없는 참견이라는 생각도 많이 들었다. 우울증을 앓은 그의 어머니는 폴란드-우크라이나 유대인 출신이며 대단한 미인이셨다. 당시 폴란드의 대학엔 유대인, 특히 여성이 공부할 기회를 주지 않자 체코 프라하의 ‘찰스(카알) 대학'에서 문학을 공부했던 재원이었다. 그리고 책에서도 나오듯 수많은 이야기들을 어린 아모스에게 들려주였고 아마 그런 밑바탕이 오즈가 소설가로 성공한 밑거름이 되지 않았을까 생각한다. 신문을 보니 그의 죽음을 알린 맏딸도 ‘파냐'로 그의 어머니와 이름이 똑같았다.



오즈는 비록 고등교육을 받은 부모와 그런 집안환경에서 자랐지만 종교적으로는 무관심하고 특히 전통적이고 엄격한 유대교파와는 거리가 멀었다. 하지만 종교에 대한 그의 관심은 누구보다도 컸다. 유대인으로 그리스도교의 성서인 신약성서에도 강한 애착을 가지고 읽었고 또 고민하였다고 한다. 물론 그 결과로 ‘쥬다스’라는 소설을 몇년전에 출판한 것이었고 이 책은 2015년 맨 부커상 최종후보에까지 올랐다. 영국 가디언 신문과의 인터뷰에선 사춘기때부터 신약성서를 읽었고 16살 땐 만약 신약성서의 4대 복음서를 읽지 않는다면 르네상스 미술이라든가 바흐의 음악 또는 도스토예프스키의 소설들을 이해못하리라 깨달아 탐독했다고 하니 과연 어릴적부터 유대인과 유대문화라는 틀을 벗어나 세상과 진리를  탐구하려한 흔적을 엿볼 수 있다. 키부츠의 또래 사춘기 아이들이 밖에서 놀거나 여자애들을 졸졸 따라다닐때 그는 예슈아(예수)안에서 위안을 받았다고 능청스레 말했다. 하지만, 그의 말에서 그가 남들과 달랐음을 발견할 수 있고 어머니를 잃은 후 끊임없이 평화와 위안을 얻으려한 사춘기 소년의 심리상태와 그런 지식에 대한 욕구도 함께 느낄 수 있다.



오즈는 살아생전 예민한 정치적 발언도 마다하지 않았다. 지독한 우파인 벤냐민 네탄야후와는 상극이었다. 이스라엘과 팔레스타인의 미래의 완전한 평화를 위해 ‘두나라 해결책'를 제시한 초창기 인물중 한 사람도 그였다. 심지어 트럼프의 미국대사관 예루살렘 이전도 (역설적으로) 반기면서 다른 나라도 미국을 뒤따라야 한다고 했는데 그것은 세계 다른 국가들이 동예루살렘이 팔레스타인 수도임을 인정하고 팔레스타인 주재 대사관들을 그리로 옮길 것을 동시에 주장했다. 그의 ‘두나라 해결책'과 괘를 같이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오즈의 삶은 예루살렘과 뗄레야 뗄수없는 깊은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는 그가 나고 자란 예루살렘을 지독히도 사랑하였다. 그래서 그의 소설엔 어김없이 예루살렘이 등장하고 부모님이 공부하고 만났던 예루살렘 히브루 대학이 자주 나오며 아버지가 사서로 일했던 국립도서관도 가끔  등장한다. 즉 예루살렘과 그는 한몸이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조부모들와 부모들이 유럽에서 이스라엘로 이민을 왔어도 그는 유럽 유대인의 자손이라기보다 예루살렘 시민이었다. 예루(시티)와 살렘(평화) 두 단어로 이루어진 이 거룩한 도시에서 나고 자라며 진정한 평화가 이곳 예루살렘뿐만 아니라 온 세상에 오기를 염원했다. 그는 그의 소설과 에세이와 강연으로 그가 경험했던 이 불화와 전쟁 그리고 폭력이 난무했던 ‘평화의 도시’란 예루살렘에 평화를 안착시키기 위한 노력을 아끼지 않았다. 이제는 탈많고 시끄러운 ‘지상의 예루살렘(Earthly Jerusalem)’이 아닌 고요하고 평화로운 ‘천상의 예루살렘(Heavenly Jerusalem)’에서 그가 편히 쉬기를 기원한다. 좋은 소설 써주셔서 감사하다는 말도 함께 하고싶다. 그의 책들로 인해 성서속의 예루살렘 뿐만 아니라 결코 평화롭지 못한 지금의 예루살렘까지 애정을 가지게 해주셔서 감사하다.



Shalom…


그리고


May he rest in peace...

아모스 오즈와 그의 부모님. http://www.eilatgordinlevitan.com
영화화 된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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