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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Mar 19. 2019

"아무 계획도 없습니다..."

헤밍웨이가 추천한 도서목록

1934년 봄, 작가가 되고자 소망했던 한 젊은이가 있었다. 막연한 젊은 시절, 세계경제에 몰아닥친 대공황의 우울함에도 젊음과 순수한 열정은 그대로였다. 그는 그의 우상인 소설가 어니스트 헤밍웨이를 만나기 위해 따뜻한 남쪽 플로리다로 히치하이킹을 하며 긴 여행을 했다.


그는 바로 아놀드 사무엘슨(Arnold Samuelson)이란 젊은이었고 모험심이 강한 22살 청년이었다. 그 해 1934년 봄 그는 남쪽으로 길을 떠났다. 큰 나라 미국에서 북에서 남으로 장장 2천 마일(약 3천 km)를 여행했다. 그 2천 마일 장거리 여행끝엔 그의 우상 헤밍웨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기 때문이었고 그를 만나면 가가 꿈인 그에게 희망의 빛이 남쪽 플로리다의 햇빛처럼 타오를 것이라 믿었다. 그러나 그도 현실을 묵과할수 없었고 마음 한켠에 어둠이 남아있었다  그는 나중에 고백했다. 그 여행을 떠난 건 사실 미친짓이었다고.



아놀드는 노르웨이계 이민자 부모에게서 노스 다코타(North Dakota) 주에서 태어났다. 그는 미네소타 대학교에서 언론학 강좌를 이수했지만, 졸업장에 대한 5달러의 수수료는 지불하지 않았다고 한다. 당시 5달러면 지금은 얼마일까? 하여튼 대학 졸업 후 그는 덩치 큰 미국땅을 다 보고싶었고, 근사하게 여행도 해보고 싶었고, 그걸 글로 직접 써보고 싶기도 하였다. 그래서 그의 본심은 작가가 되는 것이었다. 남쪽으로의 긴 여행 전 그해 4월, 아놀드는 ‘코스모폴리탄' 잡지에 "One Trip Across”라는 제목의 헤밍웨이가 쓴 글을 읽었다. 뒤에 이 글은 헤밍웨이의 네 번째 소설인 "To Have and Have Not"의 일부가 되었다고 한다. 아놀드는 이 글에 너무 감명받았고 헤밍웨이를 만나야만 한다고 결심했다. 우상을 만나려면 장장 2천 마일의 장거리 여행을 해야했다. 그리고 가난한 젊은이에겐 히치하이크가 선택아닌 필수였다. “정말 어리석은 짓으로 보였다."라고 나중에 아놀드는 그의 책에 썼다. 그래도 젊고 패기있고 꿈이 있었기에 가능했다. 논리로 잘라 말하기엔 어리석었지만 과연 어리석은 행동이었을까? 특히 1934년은 미국이 대공황기였고 겨우 스물두 살의 작가 지망생은 이런 어리석은 짓을 마다할 이유도 명분도 마땅히 없었다. 당시 대부분의 가난한 미국의 남쪽 노동자들이 일자리를 찾아 공업지역인 시카고나 디트로이트 등 북쪽으로 향할 때 아돌드는 햇빛 많고 날씨 좋은 남쪽으로 떠났다. 그는 플로리다로 먼저 내려가서 화물열차를 얻어 타고 본토에서 키웨스트(Key West)로 갔다. 키 웨스트엔 그의 우상 헤밍웨이가 살고 있었다. 물론 그의 우상이 그를 기다리고 있진 않았다. 무작정이었고 어리석었고 또 무대뽀였다. 우상숭배란 이런 것이다.


아놀드가 키 웨스트에 도착했을 때 그는 이곳 남쪽 미국이 경제가 특히 침체되어있었고 어렵다는 것을 직접 눈으로 보았다. 대부분의 공장들이 문을 닫았고 어업은 형편없었다. 아놀드는 그날 밤 짊어지고 온 배낭을 베개 삼아 하늘의 별을 보며 부두에서 잠을 청했다. 그래도 부둣가라 바닷바람이 불었고 고맙게도 윙윙대던 모기도 쫒아주었다고 한다. 그렇지만 밤중에 순찰하던 경찰이 그를 깨웠고 결국 지역 경찰보호소에서 그날 밤 신세를 져야했다. 지붕이 있고 안전한 대신 모기가 들끓는 경찰보호소에서 첫날 밤을 보낸 후, 아놀드는 이  곳에서 가장 유명한 인사의 집을 무턱대고 찾아가 문을 두드렸다.


아놀드는 그가 처음으로 헤밍웨이를 만났을 때를 회상했다. 그가 키 웨스트에 있는 헤밍웨이의 집 현관문을 노크했을 때, 직접 문을 열고 나온 이 유명인사는 홈리스처럼 보이는 젊은이 앞에 눈을 찡그리며 서서 방문객이 먼저 말하기를 기다렸다. 그러나 갑자기 아놀드는 할 말이 없었다. 우상을 바로 앞에서 보니 너무 감동했을까 아님 실망의 전기충격이 잠깐 있었을까? 준비해둔 말은 한 마디도 생각나지 않았다고 한다. 헤밍웨이는 키가 크고, 어깨가 넓으며, 양팔을 옆구리에 늘어뜨린 채 서 있었던 걸로 아놀드는 기억했다. 그리고 그는 마치 싸움할 준비가 되어있는 투사처럼 본능적으로 자신의 몸무게를 발가락에 대고 약간 앞으로 웅크리고 있었다고 아놀드는 기억했다. 그러고 보니 일생의 중요한 순간이어서 그런지 할 말은 비록 잊었지만 기억은 생생하게 그대로 살아 있었나 보다.


"무엇을 원하나?"라고 헤밍웨이가 물었다. 어색한 순간 후 겨우 아놀드는 “코스모폴리탄에서 당신의 글 'One Trip Across'를 읽었습니다.” 너무 좋아 여기 내려와 당신을 만나보려 했다고 설명을 덧붙였다. 헤밍웨이는 그제서야 긴장을 푸는 것 같았다고 아놀드는 기억했다. 이 유명인사는 생전 처음보는 사람앞에 그리고 불쑥 찾아 온 이 젊은이에게 그날은  바쁘다고 말했지만 다음날 오후 1시 30분에 다시 오라고 하며 기회문을 열어 놓았다.


그날 다시 보호소에서 하룻밤을 더 보낸 후, 아놀드는 헤밍웨이의 집으로 다시 돌아왔다. 어찌 이 기회를 놓치랴. 카키색 바지와 침실 슬리퍼를 신은 편안한 차림새의 헤밍웨이는 그의 집  북쪽 현관 그늘에 앉아 있었다. 그는 위스키 한 잔과 뉴욕타임즈를 읽고 있었다고 아놀드는 기억했다. 위스키와 어떤 신문인지도 아놀드가 사진처럼 기억하는 걸보면 자신의 생애에 중요장면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런데 왜 헤밍웨이는 쿠바의 ‘모히또'가 아니고 위스키였을까? 당시 모히또는 쿠바에서만 유통됐을까? 하여튼, 그들은 술 이야기 대신에 코스모폴리탄 이야기를 하는 것으로 시작했으며, 아놀드는 이때다 하고 드디어 을 쓰려는 자신의 실패한 경험담을 헤밍웨이에게 슬쩍 언급했다. 헤밍웨이는 그런 아놀드에게 글쟁이가 되기 위한 조언을 기꺼이 해주었다. 대낮에 마신 위스키때문에 관대함이 우러나왔을까? 술기운에 소설가의 글쓰기 비밀을 풀어내 버렸을까?


헤밍웨이는


- 한 번에 너무 많이 쓰지 않는 것이다(Never write too much at a time.)


- "절대 한번에 다 소진하지 마라. 내일을 위해 조금 남겨두어라(Never pump yourself dry. Leave a little for the next day).


- “중요한 점은 언제 멈출지 아는 것이다(The main thing is to know when to stop).”


등등 이었다.


그리고 헤밍웨이는 아놀드에게 현대 작가들은 피하고, 작품들이 세월의 시험대에 서있는 죽은 작가들과만 경쟁하라고 충고했다. 헤밍웨이는 단편집 2편과 책 14권의 목록을 적어 아놀드에게 건넸다(위 사진과 아래 목록 참조). 또 아놀드에게 자신의 소설인 "무기여 잘있거아(A Farewell to Arms)" 한권을 건네주며 그 책을 “읽고나면 돌려 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놀드는 고맙게 받아들였고 그날 저녁 이 책을 보호소에서 다 읽었다. 그도 그럴것이 거기 보호소에서 “또 하룻밤을 더 머물고 싶지 않았다” 라고 그는 회상했다. 그래서 덧붙이길 “다음 날 오후 나는 마이애미로 가는 첫 번째 화물기차를 타기 위해 ‘무기여 잘있거라’를 그날밤으로 다 읽어 버렸다. 다음날 책을 헤밍웨이의 집으로 도로 가져왔다." 그런데, 그가 헤밍웨이의 집에 도착했을 때 헤밍웨이는 이렇게 말하는 것이 아닌가.


“어제 네가 떠나고 나서, 내 보트에서 자면서 일할 사람이 필요할 것 같아. 지금 계획하고 있는거 있나?”


"아무 계획도 없습니다(I haven't any plans)."


그래서 아놀드는 헤밍웨이의 조수로서 1년 간의 소중한 경험을 시작했다. 아놀드는 하루에 1달러씩 받고 38피트짜리 선실 순양함인 ‘필라(Pilar)’호에서 숙식하며 이 보트를 항상 좋은 상태로 관리해 놓는게 그의 임무였다. 헤밍웨이가 낚시를 가거나 보트를 타고 쿠바로 갈 때 아놀드도 따라갔다. 그는 헤밍웨이와의 주목할 만한 회고록인 키 웨스트와 쿠바에서의 일년동안 헤밍웨이와의 나누었던 대화와 자신의 경험에 대해 글을 썼고 책을 펴냈다(아래 그의 책 참조). 


헤밍웨이의 아래 추천도서목록 중 몇권을 읽었느냐도 중요하지만 아놀드의 열정에도 감탄한다. 누구에게든 계획없다고 당당하게 대답하며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순간이 올 것이다. 아놀드처럼 2천 마일을 달려 갈 열정이 있다면 또 보호소에서 며칠밤을 묵을 준비가 되어있으면...


*헤밍웨이가 아놀드에게 추천한 독서목록

“The Blue Hotel” by Stephen Crane

“The Open Boat” by Stephen Crane

“Madame Bovary” by Gustave Flaubert

“Dubliners” by James Joyce

“The Red and the Black” by Stendhal

“Of Human Bondage” by Somerset Maugham

“Anna Karenina” by Leo Tolstoy

“War and Peace” by Leo Tolstoy

“Buddenbrooks” by Thomas Mann

“Hail and Farewell” by George Moore

“The Brothers Karamazov” by Fyodor Dostoyevsky

“The Oxford Book of English Verse”

“The Enormous Room” by E.E. Cummings

“Wuthering Heights” by Emily Bronte

“Far Away and Long Ago” by W.H. Hudson

The American by Henry James


***

아놀드 새뮤얼슨의 책: Arnold Samuelson. “With Hemingway: A Year in Key West and Cuba”(Henry Holt & Co; Reissue edition, 198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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