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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n 11. 2017

파리! 생 드니 대성당

프랑스의 역사를 품은 생 드니 바실리카

세상이 뒤숭숭하다.

조선 인조때 감상헌이 한양을 떠나며 지은 시조 한 구절처럼 “시절이 하 수상”하다. 오늘(2016년 어느날)은 하루종일, 일요일임에도 불구하고, 벨기에 브뤼셀을 테러로부터 방어하려 군인과 경찰이 도시전체를 통제한다는 뉴스가 나온다. 시민들은 지하철도 탈수없고 쇼핑하러 시내도 못나간다. 작금 유럽의 엄연한 현실이다. 그리고 몇일 전에는 파리에서 프랑스 특수부대가 테러분자들 밀집 지역이라 믿어지는 ‘생 드니(Saint Denis)’ 지역에서 대-테러 특별작전을 폈다는 뉴스가 전세계에 보도되었다. 영화도 아닌 실제 상황에서 얼굴을 가린 특수부대 요원의 화기와 군복을 tv 스크린으로 대하니 시절이 ‘정말’ 하 수상하다. 아이러니하게 이로 말미암아 ‘생(t) 드니’라는 파리 지역 이름이 전세계로 알려졌다.


생 드니 즉 영어로 세인트 데니스(St. Denis)이다. 가톨릭 국가인(사실 지금은 이렇게 말할수도 없다.) 프랑스의 지명과 도로명은 많은 경우가 성인의 이름을 따라지었는데 파리 시내에서 그리 멀지않은 북서쪽인 이곳도 이 성인의 이름을 따랐다. 런던에서 유로스타를 타고 파리의 북역(Gare du Nord)으로 가다보면 한 역을 지나는데 이 곳이 ‘생 드니’ 역이다. 물론 유로스타는 여기에 정차하지 않는다. 수많은 사람들이 파리를 가보았을 것이다. 그러나 파리 관광을 가더라도 유명한 노트르 담 성당, 루브르 박물관, 에펠탑, 개선문 그리고 베르사이유 궁전을 둘러보면 끝이다. 가끔씩 ‘오페라의 유령’ 실제 모델인 ‘오페라’를 휙 지나며 차 안에서 본다거나 개선문 앞에 내려 사진을 한 몇 장 폼내며 찍고 다음 행선지로 향하는 것이 보통이라 들었다. 이곳 ‘생 드니 바실리카(The Basilica of Saint Denis. 불어로 Basilique royale de Saint-Denis)’는 생소할 것이고 그리 많이 찾지는 않는 것같다.


그리고 파리를 자주 들렀고 방문도 했지만 파리의 주보성인(patron saint)은 누구일까라고 묻는다면? 프랑스의 여러 성당에서 보는 목잘린 성상이 자기 머리를 들고있는 조각을 보고 기이하고 특이하다 느끼면서도 왜 또 누구일까 생각을 못했다면 대답은 이곳에 있다. 안타깝게도 지금 이 성당 구역은 테러 사건때문에 파리 시민외에도 이름이 알려지게 되었지만 이 유명한 성당만으로도 방문할 가치가 충분히 있다. 이 성당이 있는 지역은 파리에서도 이민자들, 특히 북 아프리카계의 이민자들이 몰려사는 곳이고(런던의 브릭스톤, 투팅, 사우스올처럼) 또 파리의 가장 가난한 지역이다. 심지어는 이 곳의 중고등 학생들이 파리의 부유한 지역으로 비교 견학하는것을 엮은 책까지 나왔을 정도이니 알만하지 않은가.


사실 나도 여기에 이 유명한 성당이 있는 줄을 몰랐다. 늙으막에 대학에서 다시 미술사 공부를 할때 학급전체가 젊은 여선생님을 따라 졸졸졸 파리로 견학을 갔는데 그 중의 한곳이 이곳이었다. 성당 앞에서 조그만 가면 우리나라 남대문 시장처럼 시끄러운 거리시장이 있다. 여기엔 모로코, 알제리 그리고 튀니지와 아랍 아프리카 사람들이 온갖 것을 팔고있다. 이렇게 고풍스런 성당이 이곳에 그리고 역사적으로나 미술사적으로도 이 성당을 빼놓고 얘기할수 없을 정도인 이 곳 더구나 중세의 성지인 이곳을 몰랐다는 것이 내심 부끄럽기도 했다.

이 성당은 수도원 성당(베네딕도회)이며 지금은 바실리카로 불리는 특권을 바티칸으로부터 부여받았다. 이 성당이 중세 미술사를 얘기할때 빠지지 않는 것이 한 시대가 아닌 몇 백년을 풍미한 고딕미술\건축의 최초의 성당이란 것이다. 파리 시떼(Cite)의 노트르담 성당도 모네가 그린 루앙 성당도, 아니 유럽 관광을 하면 매번 들르는 모든 고딕성당들의 어머니가 바로 이 성당이다. 유럽의 이미지와 그대로 겹치는 고딕성당들이 생 드니 고딕성당을 사실 모방하고 발전시킨 것이다. ‘고딕(Gothic)’ 이란 말은 유럽을 수시로 침이한 오랑캐였던 ‘고트’족의 건축이란 말로 문화적 자부심 강한 이탈리아인들이 비하하면서 부른 말이 미술사의 한 시대 이름으로 남았다. 이 고딕성당을 시작으로 그리스와 이태리 반도로부터 오백년을 넘게(터키의 하기아 소피아 성당이후로) 옴짝달싹도 안한 지중해 미술과 건축이 북서유럽으로 넓어지며, 특히 문화적 측면에서 프랑스의 존재감을 서서히 드러내는 전초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것이다. 그래서 처음에는 고딕이란 말 대신에 ‘프랑스 스타일(French Style. 또 Opus Francigenum)’이라고 불리기도 했다고 한다.


이 성당에서 보면 고딕 성당의 중요한 요점들을 다 볼수 있는데 예로들면 위가 뾰족한 아치형(pointed arch) 정문과 창문 틀, 둥그스러한 천장(vaulted ceiling)형태 그리고 건물에 비해 상대적으로 큰 스테인드글라스 창문과 원형의 장미창(장미처럼 장식해 Rose Window로 불린다) 그리고 높은 벽을 지탱시켜주는 성당 외벽에 날개처럼 생긴 버트레스(the flying buttresses)등이다. 성당 입구 큰 정문 위의 장식(tympanum이라 불린다. 고딕성당에선 항상 볼수 있는)엔 성상들을 장식해 놓았는데 생 드니 성당엔 중앙에 그리스도 왕(Christ in Majesty)을 조각해 놓았다.

그럼 누가 이 최초로 지상의 천국을 상징한 고딕성당 아이디어를 상상해내고 지었을까? 그는 이 생 드니 수도원의 원장(Abbot)이었던 수제(Suger. c. 1081 – 1151)였다. 그는 프랑스 왕들의 축근 인물이었고 종교 미술에 관심이 많았다. 이 경이로운 새로운 건축물을 완성하곤 유럽의 많은 주교들과 수도원 원장들을 축성식에 초대했는데 한가닥 한다던 참석자들은 이 새로운 성당의 아름다움과 새로움에 입을 다물지 못했다는 전설이 있다. 유럽 각지로 돌아간 이들이 이 고딕스타일을 모방해 성당을 짓기 시작했는데 이제 로마네스크 미술과 건축의 시대는 저물고 고딕풍은 그리스도교 중세유럽의 대표적 건축물로 자리를 잡기 시작했다.


영국의 더람 대성당(Durham Cathedral. 부분적으로 고딕 스타일), 독일의 쾰른 대성당, 스페인의 부르고스(Burgos) 대성당까지 사실상 이 한 스타일로 유럽을 평정한 것이다. 건축뿐 아니라 성당 안밖의 조각인 성상들이 로마네스크 미술에 비해 더 현실감있고 실제적으로 표현해 내었고 화려한 색상의 스테인드 글래스로 성서의 여러 이야기들을 표현했다. 그래서 고딕 성당은 하나의 종합 미술관이었으며 대부분이 문맹이었던 시절 교리를 가르치는 훌륭한 시각교육장이었다. 또한 르네상스 미술로 이어지는 중심 역할을 한 것이다. 심지어 유럽 선교사들의 선교로 아시아, 라틴 아메리카 그리고 아프리카까지 이 고딕스타일에 기초한 변형된 건축물(특히 바로크 형식)이 지어졌다. 우리나라의 명동성당도 고딕형태의 부활인 고딕 리바이벌(Gothic Revival)형식이다.

비록 1144년경에 성당 대부분이 완성이 되었지만 그전에 작은 성당이 이 자리에 이미 세워졌는데 이는 이 성당의 주보성인인 생 드니 즉 데니스 성인의 유해를 모신 장소에 성당을 세웠다고 한다. 데니스 성인은 제네비브 성인과 함께 파리의 주보성인(patron saint)으로 예술가의 언덕,  몽마르뜨 언덕에서 순교하셨다고 한다. 바오로 성인의 유명한 아테네 언덕밑 시장에서의 연설에 감동받아 그리스도인이 된 디오니시우스 아레오파기트(Dionysius the Areopagite)와 이름이 같아 자주 혼돈을 일으켰는데 이는 중세의 ‘황금 전설(Golden Legend)’라는 책에서 연유한다고 한다.


그럼 왜 몽마르뜨(Montmartre. 순교자의 산. 우리나라 절두산과 비슷한) 언덕에서 순교한 데니스 성인이 약 10km 떨어진 이곳에 성당이 세워졌을까. 몽마르뜨에서 참수(beheading) 당한뒤 이 성인은 자신의 잘린 머리를 직접 두손으로 들고 약 10km를 걸어 이곳까지 오셨는데, 걸으면서도 강론을 하셨다고 한다. 물론 믿기 어렵지만 기적이란 믿음이 있으면 모든 불가능도 일어나는게 아닐까? 그래서 이 성인을 그린 그림이나 조각은 목잘린 상태의 성인이 두손으로 자신의 머리를 들고 서있는 것이다. 그리고 성인은 파리의 제 1대 주교로 주교의 상징인 관(mitre)을 참수당한 머리위에 쓰고 있다. 그런데 문제는 이 성인을 그린 성화에는 성인의 특징인 ‘후광(halo)’을 머리가 없는 어깨위에 그린 그림이 있는가 하면 한편으론 잘린 머리위에 즉 성인의 가슴위에 그린 그림도 있다는 것이다. 하여튼 화가나 조각가들도 고심이 많았을 것이다. 파리의 성당들을 가보신 분들은 자주 이런 목잘린 성상에 머리를 가슴앞에 든 모습을 많이 보았을 것인데 이는 생 드니를 표현한 특징(iconography)이다. 파리의 노트르담 성당 정문에서도 바로 보인다(쉽게 보이니 한번 찾아보시길…).


노트르 담 성당이 프랑스 역사에서 차츰 중요 성당으로 자리를 잡으며 두 성당간의 알력도 있었다. 이 성인의 머리부분을 노트르 담 성당이 보관하고 있다고 주장했고 생 드니 성당은 이에 맞서 성인의 머리까지 포함한 전체 몸을 이 성당의 제단아래 묻었다고 주장한다. 하여튼 진실이 어디에 있는지는 모르겠지만 두 성당 모두 프랑스 역사에서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것이다. 프랑스 왕의 대관식은 ‘렝’ 성당에서 전통적으로 치러졌지만 대신에 생 드니 성당은 세 명의 왕과 왕비를 뺀 나머지 모든 프랑스의 왕과 왕비가 묻힌 곳이기도 하다. 우리가 잘아는 루이 16세와 그의 오스트리아 왕비 마리 앙뜨와네트도 우여곡절끝에 여기 묻혔다. 그래서 이 성당은 공식으로 프랑스 왕족 무덤(royal necropolis of France)이 되버렸고 프랑스 정식 명칭에도 ‘로얄(royale)’이라는 명칭이 들어가 있다. 중요성으로 미루어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Westminster Abbey)과 비슷하다. 성당 지하(Crypt)에 내려가면 왕족들의 무덤들을 볼수 있는데 대부분이 대리석인 무덤위에 새긴 장식들과 조각들도 볼수있다.

하여튼 프랑스의 역사로나 미술사적으로보나 생 드니 성당은 그리고 이 성당의 이름을 딴 지역은 중요한 곳이다. 또 파리의 가톨릭 교회 역사로도 빼 놓을수 없는 곳이다. 중세엔 많은 순례자들이 데니스 성인의 유해가 모셔진 이 성당으로 순례를 왔다고 한다. 어떤 의미에선, 가톨릭 입장에선, 프랑스의 정체성(identity)이 새겨진 곳이다. 물론 정체성은 끊임없이 변한다. 이런 프랑스의 정체성을 거울삼아 새로운 다민족 현대 프랑스의 정체성을 만들어 가는 것도 좋은일일 것이다.


또 다른 프랑스 주요 성인인 리옹의 이냐시오 성인(주교였던)은 지금의 시리아 터키쪽 소아시아가 고향이다. 그는 하느님의 모상(Imago Dei)인 인간이 완전(perfect)하게 처음부터 창조된 것은 아니라고 보았다. 대신에 하느님의 뜻을 따라 윤리적으로 살며 ‘채워’나가며 ‘만들어’나가는 것이고 종국에는 ‘완전’한 인격체인 하느님의 모상을 ‘완성’시키는 것이라고 보았다. 즉 우리의 삶이란 그 과정의 연장선상에 있는 것이다. 영국 신학자겸 철학자인 ‘존 힉(John Hick)’은 이 인간학 이론을 새롭게 부활시킨 ‘영혼 만들기(soul-making)’의 과정으로 풀어내었다. 저스틴 웰비 성공회 켄터베리 대주교님은 인터뷰에서 파리 테러사건을 접하고는 잠시 하느님의 존재에 의문을 품었다고 신문에 나왔다. 참 정직하시단 생각이다. 이런 의문이면 성직자뿐 아니라 신앙인이면 누구나 가질 것이다. 마더 데레사가 경험했던 ‘어두운 밤’과 비슷했지 않았을까 쉽다. 신앙에 대한 의문이면 인간에 대한 본질적 물음과 같다. 영혼 만들기의 과정중의 하나이다. 완전함으로 가는 또는 ‘하느님 왕국(Kingdom of God)’을 지상에 건설하는 과정의 진통, 어둠속의 터널,이라고 좋게 생각하고 싶다. 그렇지만 끔찍한 태러를 보면 사실 우리 모두가 의심도 들고 불안한게 사실이다. 마음과 지혜를 모아야할 시간이 아닐까?


데니스 성인은 죽음으로서 신앙을 증거했다. 신앙을 위해 남을 죽이는게 아닌 반대로 자신의 목숨을 기꺼이 바친것이다. 똑같은 죽음이지만 순교와 테러는 다르다. 성인이 참수당한 이 몽마르뜨를 거쳐간 수많은 예술가들이 그랬고 또 지금도 언덕의 계단에서 초상화를 그려주는 가난한 화가들도 모두 다 시절이 ‘하 수상’하더라도, 인조때의 김상헌처럼 떠나면서 ‘올똥말똥 하노라’하며 아리송한 말을하며 피하는게 아닌, 우리의 자리를 굳건히 지키는 것이, 또 그것이 테러를 이기는 힘이 아닐까?


https://brunch.co.kr/@london/35

https://brunch.co.kr/@london/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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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드니 바실리카 정면
많은 프랑스의 왕과 왕비들의 무덤이 있다.
크립트
생 드니 성상. 박해로 잘린 자신의 머리를 들고 있다.
성당의 부조. 여기서도 생 드니를 볼수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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