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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n 13. 2017

엘 그레코의 선문답

예술사-엘 그레코의 '성모승천'

‘엘 그레코(El Greco)’가 그린 ‘성모승천(The Assumption)’은 우선 엄청 큰 그림이다. 높이가 4미터가 넘고 폭이 2미터가 넘는다고 상상해보라. 이 그림은 스페인의 옛 수도, ‘톨레도’의 ‘산토 도밍고 엘 안티구오(Santo Domingo el Antiguo)’ 성당의 중앙 제단화로 그려졌다. 그리스의 크레타 섬 사람인 엘 그레코가 스페인에 정착하고 처음 주문받은 작품으로 화가가 그 전에 살았던 베니스의 ‘티치아노(Titian)’의 ‘성모승천’과 비슷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그러나 티치아노의 삼단으로 구분된 성모승천과 다르게 이 그림은 이분으로 구성되었다. 즉 천사들과 중앙의 승천한 성모가 있는 천상부분과 제자들이 있는 지상부분이다. 그래서 관람자는 우선 이 하늘과 땅을 구분해서 보아야 하며 더 나아가 이 두 세상을 연결시키는게 그림을 읽는 방법이다.

우선 그림 아래부분, 지상의 제자들은 서로 저마다 다른 곳을 응시하며 성모승천에 대해 놀라움과 경이의 표정을 보이고 있다. 동시에 이들은 무슨 영문인지 모르는 듯 혼란에 빠진 듯해 보인다. 왜냐하면 그림 아래 중앙의 관, 즉 죽은 성모가 누워있어야할 관이 텅 비어있기 때문이고 성모는 육체와 영혼 모두 천상으로 들어올려(승천. Assumption)졌기 때문이다. 이는 가톨릭 교회의 교리이다.

전승에 의하면 성모는 깊은 잠(deep sleep)의 상태에서 하늘로 들어올려졌다고 한다. 그래서 ‘잠자는’이란 뜻의 도미션(Dormition) 이라고도 불린다. 특히 그리스 정교회에서 이 용어를  쓴다. 제자들은 도상으로 위쪽인 천상, 즉 성모가 승천된 하늘을 쳐다보지 않고 각자 서로 다른 방향을 보고 있는 것이다. 하지만 딱 한 제자만이 위로 향해 응시하는데 이는 ‘제임스 성인(St. James. 야고보)’이다. 관 뒤쪽의 제자도 위로 향하는 듯 보이나 사실 왼편을 수평으로 바라보고 있다. 예수의 제자인  제임스 성인은 성모승천의 기록이 있는 자신의 책(역사적 근거로는 희박하다), 즉 ‘제임스 복음서(아포그리파/위경:성서목록에 들지 않은 기록들을 지칭)를 들고 있다. 그 앞엔 화가 엘 그레코의 그리스 이름이 보인다.

대신 그림의 위쪽 부분인 하늘의 천사는 성모승천의 기쁨을 표현하며 기도와 복종의 표현으로 앞쪽의 천사는 두손을 모으고 있다. 승천된 성모는 조각달을 밟고 있는데 이는 동정녀 마리아의 순수함을 상징한다. '효성'이라고도 한다. 성모의 몸은 완전히 천상의 영역에 포함되나 그녀의 아래 옷자락 부분은 이 초승달 아래로 있어 지상과의 연결을 암시해 보여준다.

이 그림은 화가 자신이 활동했던 베니스 중심의 매너리즘과 가톨릭 교회의 반종교개혁 미술의 대표적 그림이다. 그 예로서, 그림속의 인물들의 형상이 대게 길게 늘어뜨린(elongated) 점, 각 인물의 옷자락의 풍부한 표현과 그 속에서 각각 다르게 비틀어진 인물들의 몸동작표현 등이다. 이러한 드라마틱한 표현들과 함께 엘 그레코의 과감한 색상 사용으로 성모승천이 주는 강한 메시지를 그대로 전하고 있다.

'빈 관(empty coffin)'을 보며 경이와 혼란을 동시에 경험하는 제자들은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다. 제자들은 이 '빈 관' 주위에 우루루 모여 있으면서 각각 자기만의 해석으로 우왕좌왕 분주하다. 성모의 육체가 있어야 할 텅빈 관을 보며 성모를 잃어버렸다며 찾으려 할지도 모른다. 신앙없는 인간의 모습이다. 그래서 신앙으로 그 ‘빈 관(the empty coffin)’을 묵상하며 이 ‘빈 관’이 지시하는 의미를 파악해야 한다고 엘 그레코는 말하는 듯하다.

여기서 이 ‘빈 관’은 예수 부활이 일어난 그 ‘텅빈 무덤(the empty tomb)’과 일명 상통한다. 이  ‘빈 관’은 기호학에서 말하는 것처럼 ‘지표’ 즉 ‘the signifier’ 이며 여기서 ‘지의’ 즉 ‘the signified’는 ‘성모승천’이다. 그림의 반, 즉 위쪽 천상을 가린다 하더라도, 그림 아래 부분 지상의 '빈 관'만으로도 천상(하느님의 뜻)을 알아채는 것이 곧 '믿음'이다. ‘빈 관’은 바로 ‘성모승천'이 일어났음을 보여주는 명백한 증거이기 때문이다. 사물을 그냥 보는게 아닌 그 ‘본뜻'을 읽어내는 것이 ‘해석’이 아닐까?

그래서 엘 그레코가 이렇게 말하는 듯 보인다.

"어리석은 자야. 믿음이 있으면 산도 옮긴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벌써 잊었느냐? 허둥대지 말고 이 ‘빈 관’을 보며 묵상하여라. 그리고 이 빈 관이 가리키는 의미를 찾아내도록 하여라..."

승천한 성모가 펼친 두 팔처럼 열린 자세는 우리 삶에서 항상 필요할 것이며 그 자세로 엘 그레코의 ‘성모승천’의 메시지도 읽을 수 있으리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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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The Assumption of the Virgin.  

1577–79. El Greco. Oil on canvas

158 3/4 x 83 3/4 in. (403.2 x 211.8 cm); original image, approximate: 156 1/16 x 79 3/4 in. (396.4 x 202.5 cm). Art Institute of Chicago, Chicago.


원래 상태의 제단화의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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