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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l 11. 2017

낮잠자던 아그리젠토의 철학자

이탈리아 여행 에세이-시칠리아

아그리젠토(Agrigento)는 괴테가 방문한 시칠리아의 여러 곳 중 하나였고 당시는 기르젠티(Girgenti)라 불렸다. 아그리젠토엔 괴테(Goethe)의 행적을 기려 ‘괴테’라 이름붙인 호텔도 있었다. 괴테는 아테네만큼 그리스 문명의 흔적을 오롯이 간직한 이 고대 유적의 찬란함에 감탄했었다. 그리고 서양문명의 원천인 이 곳에서 위대한 영감의 샘물을 마시려 했을 것이다.

그래서 ‘시칠리아엔 모든 길로 통하는 열쇠가 있다’고 까지 극찬하지 않았을까?



괴테가 본 고대문명의 도시, 아그리젠토에 사람이 살기 시작한 것은 그리스 사람들이 이곳에  식민지를 세우기 훨씬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그러나 기원전 580년 한무리의 ‘겔라(Gela)’ 사람들이 이주하면서 아그리젠토는 바깥 세상에 알려졌다. 이 사람들은 그리스의 로즈(Rhodes)와 크레테(Crete)로부터 온 사람들이었는데 이곳을 그들은  아크라가스(Akragas)로 불렀다. 그래서 아그리젠토는 원래 ‘아크라가스'였다.



이 고대도시의 정점은 기원전 5세기 말, 폭군 테론(Theron. 488-472 BC)의 시기였을 때였다. 이때는 군사력이 막강하여 가까운 북아프리카의 카르타고를 몇번이고 격파시켰다. 카르타고의 사악한 풍습인 산사람을 바치는 풍습(human sacrifices)도 금지시켰다. 비록 폭군치하 였지만 윤리적으로 더 문명화되고 진보하였단 말이다. 그리고  경제가 좋아지자 예술, 특히 그리스 문명답게 문학과 연극이 꽃을 피웠다. 이 시기 아그리젠토는 찬란한 문명 도시였다. 그리고 제우스의 신전(the Temple of Zeus)도 이 시기에  건설했다. 중국의 한나라 이전의 이야기이니, 까마득한 고대에 벌써 이곳 시칠리아의 아그리젠토엔 문명의 꽃이 활짝 피었다.



그러나 기원전 406년에 아그리젠토는 카르타고에 격파되어 엄청난 희생을 가져왔다고 한다. 그리고 후기인 기원전 4세기 후반에 그리스 본토 코린토(신약성서의 코린토와 같은)에서 지중해를 건너 온 용병, 티몰레온(Timoleon) 장군에 의해 아그리젠토는 재건되었다. 기원전 210년에는 그리스가 아닌 이탈리아 본토에서 온 로마군에 의해 포위되고 그 이름마저 라틴식 이름인 아그리젠툼(Agrigentum)으로 바뀌었다. 그리고 로마제국 이후로 비잔틴 제국, 아랍제국, 노르만 제국, 스페인 제국, 프랑스의 부르봉 왕가 등이 차례로 이 시칠리아를 다스렸고 아그리젠토도 이 부침많은 역사를 모두 경험하였다. 세계사에 길이 남긴 대제국들이 시칠리아에 남긴 흔적들은 바로 시칠리아의 역사이자 본모습이 되었다. 또 2차 세계대전시에는 아그리젠토가 공습에 의해 많이 파괴되었다고 한다.



2500년 흥망성쇠의 역사속에 아그리젠토는 유명한 사람들을 많이 배출시켰을 것이다.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는 그중에서도 가장 유명하다. 그리스 고대철학에 나오는 철학자, 엠페도클레스(Empedocles. c492-c432 BC)는 완화된 민주주의를 옹호했다고 전한다. 전설에 의하면, 그는 시칠리아의 에트나(Etna) 화산 분화구에 스스로 뛰어들어 죽었다고 한다. 이 고대 철학자의 무모함은 그가 이 분화구에 뛰어듬으로 그가 신의 능력, 즉 기적을 보여주기 위함이라고 한다. 그는 요즘과 같은 의미의 철학자는 아니었을 것이다. 철학과 신학, 마술과 정치, 그리고 자연을 연구하는 과학자의 역할까지 손을 댄  다재다능한 인재였다고 한다. 하여튼,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에 뛰어든 뒤 그 증거로 에트나 화산은 그의 신발을 분화구에서 토해냈다고 한다. 사람들은 그의 신발이 청동(bronze)으로 변했음을 발견했다.



진짜일까?



난 화산의 펄펄 끓는 분화구 속에 사라져 간 엠페도클레스를 약 1800년이 지난 14세기 ‘단테’의 ‘신곡(Divine Comedy)’ ‘지옥(Inferno)’편 4장에서 발견했다. 그는 다른 유명한 그리스 철학자들(소크라테스와 플라톤 등)과 함께 이 곳에 살고 있었다. 이곳은 ‘림보’라 불리는 지옥의 제1원(the first circle) 이었다. 에트나 화산의 분화구는 그 자체로 지옥이었을 텐데 그 지옥으로 뛰어들었다는 것은 기이하고, 분명 자살의 행위이다. 그런데 단테가 그를 그래도 좀 더 나은 지옥의 제 1원에 배치한 것도 이상했다. 왜냐하면 단테의 지옥은 자살한 사람들은 더 아래 단계인 제7원에 배치시켰기 때문이다. 단테는 이 떠도는 풍문을 몰랐을까?



난, 아그리젠토의 ‘신전의 계곡(the Valley of Temples)’ 고고학 유적지 정문 앞, 긴 줄에 서서 공항에서 하는 것과같은 삼엄한 체크인을 기다리며 내내 엠페도클레스가 뛰어든  분화구가 떠올랐다. 찌는 듯한 날씨가 더욱 더 부질없는 상상력에 연료를 무료로 공급하였다. 2500년 타임머신  안으로 들어가는 정문 입구에서 임무가 막중한 '경찰견'이 처연히 경찰차를 그늘로 삼아 낮잠을 즐기고 있었다. 그의 부하들은 땀흘리며 길게 줄 서있는 한 사람 한사람을 체크하고 있는데 말이다. 


철학자와 경찰견.

2500년전과 지금 2016년 10월.

전혀 다른 두개의 시각으로 이 고대 유적지를 둘러보았다.



계곡이라 하기보단 얕은 언덕에 있는 신전의 계곡엔 도합 9개의 신전이 남아 있었다. 그중에 ‘콘코르디아 신전’이 보존이 가장 잘 되있었고 ‘제우스’나 ‘주노’ 그리고 '헤라'의 신전은 거의 파괴되었다. 아니, 긴 세월을 견디지 못하고 쓰러졌다. 다행히 콘코르디아 신전은 거의 1000년이 지난 기원후 6세기 경부터 그리스도교의 성당으로 쓰여 그나마 거의 원형이 보존되었다. 아테네의 언덕에 서있는 파르테논 신전과 비교해도 그 아름다움은 손색이 없었다. 더구나 밝은 시칠리아의 햇빛에 그을러 황금색을 띤 기둥들은 한마디로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아침에 본 그 아름답고 성스러운 시또회 성당의 외벽과 색깔이 비슷하였다. 거기에다 정제된 아름다움도 같았다. 이 정제된 아름다움은  모두 도릭(Doric)식 신전들의 기둥에서 뿜어져 나왔다. 우리나라 산에 많은 고사리 형인 ‘이오니아(Ionic)’식도 아니고 아칸서스 형태를 보여주는 ‘고린토(Corinthian)’식 기둥도 아니었다. 가장 오래된 이 도릭 기둥들은 심플한 원형으로 조각했지만 정제와 절제가 느껴졌다. 그래서 기원전 1세기 건축사가 비트루비우스(Vitruvius)는 도릭식 기둥을 남성적이라 표현했다. 난 세월에 무너져 내린 거대한 기둥들을 밟아도 보고 손으로 만져도 보고 둘레를 재려 안아보기도 했다. 흩어진 고대의 돌덩이에 코를 갖다대며 벌렁벌렁 냄새도 맡아보았다. 온갖 짓을 다하며 엠페도클레스가 분화구로 뛰어들어갔듯 2500년 시간속으로 뛰어들기 위해 안간힘을 썼으나 끝내 뜨거운 태양에 지치고 말았다.



그래서 엠페도클레스가 했다는 말,



“각자는 각자의 경험만 믿는다(Each man believes only his experience)”에 동조할 수 밖에 없었다.

엠페도 클레스는 어떤 경험을 했을까?


화산의 분화구에 무식하게 뛰어들었지만 엠페도클레스는 그렇게 순진무구한 사람은 아니었다. 경험을 중시여긴 과학 철학자의 타이틀을 붙이고서, 그리스 고대철학엔 항상 그가 등장하니 말이다. 그리고 그가 주창한 우주가 4원소, ‘지.수.화.풍’으로 이루어졌다는 이론은 후대에도 지대한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혹자는 그가 입자 물리학(particle physics)를 주창한 최초의 과학자라 불러주기도 한다. 이 계곡에서 가까운 아그리젠토에 면한 바다엔 그의 이름을 딴 ‘엠페도클레 항구(Porto Empedocle)’가 있다. 문물만 교환하는게 아닌 사상과 지식도 교환하는 항구의 특성으로 후대에 그의 이름을 붙인 걸까? 그 지식의 교환은 지중해 바다를 초월한 당대뿐 아니라 시간도 초월한 것같다. 아직도 사람들은 지수화풍의 원리에 고개를 끄덕이니 말이다.



신전의 계곡 답사가 거의 끝나는 부분에 휴게소가 나왔다. 찌는 듯한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듯했다. 시칠리아의 유명한 아이스크림도 팔고 있었다. 우루루 아이스크림을 사서 그늘에 앉아 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게 먹었다. 체면이고 뭐고 없이 그 시원함과 달콤함에 모두들 취했다. 정신이 겨우 들자 신전의 계곡 입구에 곤히 낮잠을 자던 시칠리아 경찰국 소속 ‘낮잠 경찰견’이 떠올랐다. 그 순간, 게으르다고 웃어버린 이 경찰견이 이해됐다. 하하하… 혼자서 소리나게 웃었다. 사람들이 날 쳐다보았다. 꼭 분화구에 뛰어들던 엠페도클레스를 쳐다보듯이...


"혹시  엠페도클레스가 그 경찰견으로 환생한 건 아닐까? Who knows..."


:::::

*시칠리아 경찰견 아저씨. 경찰차를 그늘로 삼아 세상모르게 낮잠을 자고 있었다. 뒤로는 2500년전 고대 유적지가 보인다. 사실, 부러웠다.

*엠페도클레스. 아그리젠토가 배출한 고대 그리스 철학자. 소크라테스 이전의 철학자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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