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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Jul 17. 2017

브뤼겔이 그린 티격태격 인간세상

예술사-브뤼겔의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

‘사순절’이란 가톨릭 신자들(성공회와 정교회 신자들도)이 40일 동안 ‘경건과 절제’의 마음가짐으로 다가오는 그리스도의 부활을 준비하는 기간이다. 사순절이란 영어 단어 ‘Lent’는 고대 영어 ‘봄(Spring)’이라는 뜻에서 유래했지만 원래는 40일이란 라틴어(Quadragesima)에서 왔다. 사순절은  첫번째 니케아 공의회(the first Council of Nicea)가 열렸던 기원후 325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되었다. 하지만 이 절기는 사도시대부터 내려오던 전통이었다. 가톨릭 교회의 교회력에 따라 사순절은 일년중 가장 엄숙하고 경건한 기간이다. 근원은 예수님이 광야에서의 40일간 금식으로 보낸 성서구절에 기인하며 이슬람의 라마단도 사순절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고 한다. 사순절 동안 전통적으로 ‘단식 또는 금식’도 많이 하는데 생물학적으로 꼭 필요한 음식섭취절제를 통한 자기부정(self-denial)과 희생의 한 표현이며 많은 이들은 개인적으로 자기만의 ‘사순맹세(Lenten Resolution)’를 하기도 한다. 한편으로 이런 사순절의 금식과 경건에 반해 사순절 바로 전인 ‘사육제(Carnival)’에선 고기와 술을 마음껏 즐기는 축제의 장이 되어버렸다. 사육의 의미인 ‘카니발(Carnival)’이란 말속에 고기란 말이 들어있고 다가오는 사순기간에 고기를 못먹으니 그전에 맘껏(?) 먹자는 의미도 들어있다. 해마다 뉴스에 나오는 브라질 리오(Rio)의 유명한 리오 카니발 축제도 똑같은 말이다.



사순절에 관계된 서양 회화는 다른 성서의 주제에 비해 그렇게 많지는 않은 것같다. 대신에 사순절을 보내는 이유가 되는 부활이나 십자가에 관한 성화는 무수히 많다. ‘사육제와 사순절의 싸움(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이란 재미있는 제목의 그림은 네덜란드 쟝르화가(일상을 많이 그리는)인 ‘피터 브뤼겔(Pieter Bruegel. 브뤼헐)’의 작품으로 1559에 완성되었다. 다른 많은 그의 그림과 같이 합스부르그 왕가가 있던 오스트리아의 비엔나 박물관이 소장하고있다. 이 그림은 제목에서처럼 이 사순절 절기와 사순절의 출발인 ‘재의 수요일(Ash Wednesday)’ 바로전인 사육제에 관한 그림이다. 브뤼겔은 네들란드 또는 서유럽 저지대 지방(지금의 네들란드나 벨기에, 즉 베네룩스 3국지역. 영어로 Low Countries라 한다) 출신으로 당시 이 지대는 가톨릭인 스페인의 통치아래 상업이 발달하고 또 최근에 발명된 구텐베르그 활자로 인근 독일처럼 인쇄업도 발달하였다. 그가 활동했던 지금의 안트워프(Antwerp)는 당시 가장 번성한 무역항으로 조금 과장해서 아마 19세기의 파리와 20세기의 뉴욕을 합친것과 같다고도 한다.



이러한 경제적 번영과 더불어 문화도 덩달아 번성하였지만 한편으론 종교개혁의 여파로 심한  몸살을 앓고 있었다. 이 그림은 이러한 종교적 혼란과 한편 경제적 번영이 가져온 물질적 풍요의 시기인 이 지방의 사육제와 사순절 묘사로 당시의 사회상을 도큐멘트처럼 보여준다. 이 그림에서 여관(Inn)이 있는 왼쪽과 성당이 있는 오른쪽을 뚜렷이 대조 비교해 보여주며 왼쪽은 쾌락을 오른쪽은 종교적 규율과 절제로 가볍게 읽을 수 있다. 수많은 인물들이 나오는 복잡한 양상의 이 그림은 한편으론 알레고리와 상징이 풍부하여 미술사가들은 이 알레고리와 상징들이 뭘 말하는지 읽어내려 노력하였다.



우선 이 그림의 배경은 남 네들란드 어느 타운 광장이다. 안트워프로 읽을 수도있다. 그림에서 안트워프 대성당(루벤스의 그림이 있는, 그리고 플란더스의 개에 나오는 네로와 파트라슈가 동사하고만 바로 그 성모성당) 왼쪽편과 광장을 비교하면 비슷한 점도있다. 그러나 북유럽의 타운 광장은 거의 비슷한 구조라 정확하진 않다. 이 당시 유럽에서 사육제와 사순절은 타운의 중심인 이런 넓은 광장에서 치러졌다. 당시엔 또 사육제로 의인화된 허수아비(effigy)를 만들어 축제끝에 불태우곤 하기도 했는데 이 그림에서도 사육제는 의인화되어 아주 뚱뚱한 남성으로 묘사되었다. 그는 타운을 가로질러 사육제 편의 리더로 행진을 이끌며 축제를 주관하고 있다. 큰 몸집의 이 남자는 맥주통(beer barrel)에 걸터앉아 있다. 그 통앞엔 돼지고기가 걸려있고 그의 머리엔 고기 파이를 이고있다. 그리곤 또 긴 구이용 꼬치(이렇게 긴 구이용 꼬치는 처음이다)를 무기처럼 흔들고 거기엔 돼지머리도 꽂혀있다. 이쯤이면 그림을 보다가 슬며시 웃음이 나올 것이다. 그는 앞에 보이는 사순절을 맞아 싸울준비가 된것처럼 보인다. 꼭 옛날 학교 운동회에서 청백 양편으로 나누어 하던 기마놀이같다. 허리엔 꽃인 푸줏간 칼이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의 직업이 푸줏간 장이(butcher)임을 알수있다. 당시 고기집을 운영하는 사람들의 단체가 있었는데 이 단체에서 전통적으로 사육제 기간동안 고기를 납품했다. 역시 옛날이나 지금이나 ‘돈’이 관계되어 있다.  브뤼겔은 이 사실에 기반해 사육제의 의인화된 남성을 푸줏간 주인으로 상정했으며 이 남자가 사육제 편의 중심인물로 선택된 것은 당연하다.



맥주통 뒤의 남자는 노란색 옷을 걸치고있다. 여기서 노란색은 ‘속임(deceit)’이라는 의미를 가지고있다. 그 뒤를 한 여자가 따라오는데 머리위에 빵과 와플을 이고있다. 그 유명한 벨기에의 달삭한 와플을 이 그림에서도 볼수있으니 약 500년도 넘은 벨기에의 명물이다. 그녀는 한 손에는 컵(tumbler)을 들고 다른 손엔 초를 들고있다. 역시 ‘속임’이라는 의미를 담고있다. 그녀 옆에는 피리부는 사람이 나오고 이는 당시 ‘루터교 신자’를 의미했다. 16세기는 프로테스탄트 종교개혁으로 루터파는 사순절을 폐지했지만(나중에 다시 부활시킴) 아직 사육제는 그대로 지키고 있었다. 칼빈파는 대부분을 파기해 버렸다. 가만히 술집을 들여다보면 온통 술주정뱅들이 모여있다. 당시 인기있던 ‘더러운 신부(The Dirty Bride)’란 풍자쇼를 구경하는 관람자들이 여관앞에 웅성대며  몰려있다. 거리를 가로질러 불구자들이 적선을 요구하는 모습도 나오고 그들 뒤에는 백파이프를 연주하는 사람이 병자들을 이끌고 행진하는 모습도 보인다. 또 아이들이 천진난만하게 놀고있는 모습도 보인다. 당시 타운 광장의 일상적인 모습이다.



그럼 다른 한쪽인 그림의 오른쪽을 보면 사정은 확 달라진다. 여기선 절제(abstinence)와 경건(piety)이 지배한다. 사람들은 우물에서 물을 긷고 가난한 이들에게 적선을 하며 병자를 돌본다. 그리고 중요한건, 성당 미사를 간다. 성당앞은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이 기도를 마치고 나오고 있다. 수녀들일지 모른다. 하지만 당시의 일반 부인들도 비슷한 옷을 입었다. 성당 옆문으로도 줄을 이어 미사를 마친 이들이 광장으로 쏟아져 나오고 있다. 그림 앞쪽 중앙의 ‘사순절 부인(Lady Lent)’은 수녀처럼 복장을 하고 있다. 그녀는 짐마차(cart)에 타고 앉았는데 한 수도사와 수녀가 이를 끌고있다. 그들은 아주 피골이 상접하게 말라보인다. 특히 오른쪽 수녀의 얼굴로 이를 금방 확인할수 있다. 금욕과 금식으로 사순절을 보낸다는 것을 시각적으로 보여준다. 그녀를 따르는 사람들은 빵과 비스킷을 사람들에게 나눠주고있다. 사순절 의무인 자선(almsgiving)의 행위이다. 그녀의 짐마차를 보면 전통적인 사순절 음식이 담겨있는데 프레첼(pretzels. 짭잘한 반죽으로 구운 과자), 벨기에의 유명한 홍합 조개(mussels) 그리고 역시 먹고싶은 달삭한 와플(waffles)이 담겨있다. 그녀가 든 무기처럼 생긴 도구(아님, 오븐에서 피자를 구울때 쓰는 도구처럼) 끝에는 청어 두마리가 올려져 있다. 이는 사순시기 동안 고기를 멀리하고 생선을 먹는 가톨릭의 전통을 앞의 푸줏간 장이의 돼지고기와 비교해 친절히 알려준다. 성당 정문안을 들여다보면 성상들이 천에 가려져 있는걸 볼수 있는데 이는 가톨릭 교회에서 사순절, 특히 성주간동안(부활 바로전 일주일)에 모든 성상과 십자고상을 부활전야까지 가리는 전통을 그대로 보여준다. 부활 자정미사 바로전에 이 성상과 성화들의 덮은 천을 벗기는데 이는 ‘구세주의 부활로 인해 생명을 다시 얻은(…brought back to life like the Saviour himself)’것을 의미하는 전통이다. 브뤼겔 당시에는 종교개혁이 현재 진행중이라 성상과 성화는 물론이려니와 옛 전통과 풍습들이 종교개혁가들에 의해 파손될 위험에 처해있었다. 가톨릭교회의 사순절 전례와 풍습은 프로테스탄트 개혁가들에겐 강한 비판의 대상이 된 것이다. 특히 브뤼겔이 활동했던 안트워프는 이 혼란의 중심지였다. 그림의 뒷 배경을 보면 여자들이 음식을 장만하는 것이 보이고 특히 사순절 동안 고기 음식을 안 먹음으로 대신 생선이 보인다. 한 남자는 여관으로부터 와인을 들고 나오며 한 여자는 와플(또?)을 굽고있는 장면도 보인다. 그림 맨 뒤쪽으로는 모닥불이 있는 걸로보아 다른 축제들이 진행되는 것으로 보이며 강강수월래처럼 서로 손을 잡고 춤추는 사람들과 거지들도 보인다.  



브뤼겔은 이 그림을 위에서 내려다보는 관점(a bird’s eye view)에서 그렸다. 양편, 즉 의인화된 사육제와 사순절의 대치로 당시의 종교개혁으로 인한 혼란과 갈라진 사회의 단면을 이 관점에서  금방 눈치챌 수있는 것이다. 이 분쟁으로 얼룩진, 그럼에도 일상을 살아가는 일반인을 생생하게 또  풍자적으로 드러내는 이 그림이 묘사한 중앙부분의 결혼한 커플은, 브뤼겔의 특기인 상징적이고 은유적인 이 그림의 중심이라고 생각된다. 이들은 결혼한 커플로 관람자들은 그들의 얼굴은 볼수없고 등만 볼수있는데 대낮임에도 훨훨 타고있는 횃불을 든 얼간이 광대에 의해 인도되며 그래서 미술비평가들은 이 커플이 우매한 일반대중을 상징한다고 한다. 이는 곧 어떻게 일반대중이 쉽게 혹하며, 또 잘못된 사상을 따르거나 세상이치를 이성적으로 보지못하는 우둔함을 지적하기도 한다. 여자의 허리에는 불켜지지 않은 등불이 달랑거리고 있다. 왜 불이 켜지지 않았을까? 상징적으로 그녀는 이성(reason)에 의해서가 아닌 얼간이(fool)에 의해 인도되고 있는 것이다. 사람들은 이성의 불을 켤수 있음에도 켜지 않았다. 이 시기에 한편으로 ‘휴마니즘(Humanism)’이 유행했고 브뤼겔도 이에 영향을 받았음에 이런 해석도 타당하다. 또 대낮임에도 활활 타오르는 횃불과 뒤의 모닥불은 ‘분쟁과 파괴(dispute and destruction)’의 상징도 되며 또 세사람 옆에 코를 땅에 박은 돼지도 역시 손실과 파괴를 의미한다고 할수있다. 그러나 여기서 주목할 것은 왜 그 광대가 대낮임에도 횃불을 켜서 들고 이 커플을 인도하며 왜 이 커플은 바보스럽게 이를 따르고 있는지를 음미해보면 화가의 의도를 쉽게 읽을 수 있다. 대낮임에도 또 눈을 뜨고서도 ‘바른 길’을 가지 못함을 우회적으로 그려낸 것이다.



이 브뤼겔의 그림은 화가 당시의 시대상과 사회상을 여실히 보여주며 풍자적으로 재미있고 과장되게 묘사하고 있다. 로마네스크 스타일로 그려진 이 그림에 등장하는 수많은 인물도 각각 여러가지 방법으로 읽힐 수 있으며 또 그림의 정확한 답은 사실 없을 것이다. 그러나 일반적인 해석은, 당시 종교개혁의 여파로 흉흉해진 민심을 브뤼겔은 프로테스탄트는 사육제로 가톨릭은 사순절로 대비 묘사하고하고 있다. 당시 네들란드 또는 플랑드르 지방은 계속되는 칼빈파(일번적으로 장로교 계통)와 가톨릭의 종교분쟁으로 얼룩졌다. 또 미술사가들은 대중적인 인기가 있었던 전통적인 사육제를 엄숙한 성직자로 대변되는 사순절이 이런 대중적 축제들을 위축시켰다고 보기도 하지만, 일반적으로 이 그림은 사순절의 승리를 뜻한다고 비평가들은 해석한다. 이것은 푸줏간 장이로 의인화된 사육제가 왼손으로 이별을 고하는 듯 보여지며 얼굴은 하늘로 향하고 있어서이다. 이런 해석에 게댄다면 브뤼겔이 본 인간활동이란 자기만족이며 그래서 위선의 행위로 보았기 때문이다. 한편으론 경제적인 번영의 시기에 인간이 이렇게 타락할수 있음을 사육제로 의인화해 보여준다. 그렇지만 꼭 사순절의 승리라든가 아니면 가톨릭 교회의 우월함을 묘사한 것으론 보이지 않는다.



이 그림은 앞서 말했다시피 분명히 ‘위에서 보는 관점(a bird’s eye view)’으로 혼란한 사회상과 분열을 일으키는 종교적 맹신 그리고 그로인한 인간의 우둔함을 풍자하고 있다. 하지만 개인적으론 이 풍자적 그림이 ‘신의 관점(God’s view)’에서 인간세계를 내려다 보는 것이라고 해석하고 싶다. 칼빈파와 가톨릭, 사육제와 사순절, 고기와 생선, 과식(glutton)과 금욕(fasting)을 뚜렷이 대비해 보여주는 동시에 어느 한쪽에만 치우치는 우둔함(foolish)을 양쪽 인물들을 통해 풍자적으로 보여주는 점에서 말이다. 그래서 이 그림 해석의 열쇠는 ‘극’을 강조하는 양편의 인물들이 아니라 중앙의 인물들에 있다. 양편 인물들이 다 자기들이 옳다고 주장하지만 사실 이는 중앙의 인물들처럼 우둔하다는 것이고 지혜의 혜안이 없다는 뜻도 된다. 지혜란 사육제처럼 그저 육체의 만족(동물적인)도 아니며 사순절처럼 정신만의 만족(자만)도 아니다. 지혜는 지식과 다르며 창조주로부터 나온다. 그래서 진정으로 지혜의 원천인 세상 근원인 창조주를 향한 기도와 묵상과 자선으로 연결이 되지 않는다면 한쪽으로 치우치고마는 ‘우’를 범하고 만다. ‘신의 지혜(divine wisdom)’란 사순절의 참된 의미를 아는 것이며 ‘왜(why)’라는 질문과 함께 금식과 절제의 의미를 되새기지 않는다면 의미없는 신체적 고통만을 가져올 뿐이며 이는 육체적(flesh) 쾌락만 추구하는 그림 왼편의 사육제 편 사람들과 하등 다를바 없다는 것을 말한다.



이는 특히 그림 뒤쪽 성당 건물앞에 있는 두 그루의 나무를 통해서 알수 있다. 사순절인 2월이나 3월의 플랑드르 지방은 잎이 없는 앙상한 나무들 뿐이다. 이는 또 그림에서처럼 사순절의 이미지인 절제와 금욕를 내포한다. 부활절을 맞는 4월쯤에(그래서 북유럽 언어, 영어를 포함해서 사순절이란 말은 봄이다) 이 나무들에서 잎이 날 것이다. 계절의 순환이고 창조주의 섭리다. 그래서 화가는 이 대립과 혼란의 일상을 통해서도 거기에 새로운 생명과 희망인 푸른 잎이 나오는 부활이 있음을 암시한다. 이 부활은 사육제 쪽이 아닌, 그 반대인 사순절쪽 성당앞에 의도적으로 그려넣었다. 하지만 성당과 여관, 둘 다 인간이 만든 건물이다. 또 광장은 인간세계를 뜻하는 곳이다. 티격태격 살아가는 인간세계인 이곳 한쪽에 이 두 그루의 앙상한 나무(자연이자 신의 창조물)를 브뤼겔은 일부러 그려넣은 것이다. 금욕과 금식을 통해 사순절을 보내는 사람들도 이 창조주의 섭리를 깨닫지 못하면 평생 잎이 나지 않는 앙상한 나무로만 남을 것이란 경고의 구실도 한다. 부활의 희망을 이 그림에서 수수께끼처럼 읽어본다.



P.S. : 이 그림을 그린 브뤼겔은 아버지 브뤼겔(Breugel the Elder)이며 똑같은 이름의 아들 브뤼겔(Breugel the Younger)도 있는데 아버지를 따라 화가였다. 하지만 워낙 유명한 아버지라 평생 아버지 그림을 베낀 그림으로 살았다. 이 아들은 서양 미술사에서 아버지 덕을 본 몇몇 화가중 하나일 것이다. 이보다 한 백년전 르네상스 이탈리아에선 피렌체의 필립보 리피와 그의 아들인 필리피노 리피가 있다. 둘 다 유명한 성화들을 그렸다.


그림:


‘The Fight Between Carnival and Lent’. 1559. By Pieter Bruegel the Elder. oil-on-panel. 118 cm × 164 cm (46 in × 65 in), Kunsthistorisches Museum, Vienn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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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치 청군과 백군의 기마전 모양처럼 사육제(왼쪽)와 사순절(오른쪽)이 서로 대치하고 있다. 뚱뚱함과 홀쭉함, 음주가무와 절제, 탐욕과 자선을 대비시켜 보여주고 있다.

사육제 편 모습

사순절 편 모습.

우매한 부부. 대낮에 횃불을 들고 있는 광대를 따라가고 있다.

우물에서 물을 긷는 모습이 보이고 또 옆에 생선이 보인다. 사순절 동안 육식을 금하고 대신에 생선과 채소등을 섭취하였다. 많은 서구의 가톨릭 신자들은 이 전통을 따라 매 금요일 '금육'을 한다.

광장의 모습. 특히 불구자들의 모습도 생생히 브뤼겔은 그려넣었다. 약 500년 전(1559년)시대상과 사회상을 한 그림 안에 오롯이 보여준다. 특히 앞쪽의 아저씨는 남대문시장 등 전통시장에서 많이 보았던 고무 튜브를 아랫부분에 동여맨체 물건을 파시거나 동냥을 하시던 분들을 기억나게 해서 안타깝고 슬프다. 언젠가 모든 분들이 평등하고 행복하게 사는 그 날이 빨리 왔으면 하고 고대한다.

한 그림안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다. 실지로 하나 하나 센 사람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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