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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런던 율리시즈 Aug 27. 2017

예루살렘에서 평화의 곡성을...

이스라엘 여행 에세이-예루살렘 2

예루살렘 거리는 어디에고 사람없는 데가 없다. 몇 천년을 이 좁은 곳에서 이곳 사람들은 그렇게 복작이며 살았다. 그래서 사람없는 예루살렘 구시가를 본다는 건 호러영화를 볼때처럼  긴장감이 슬쩍 감돈다. 사실, 예루살렘은 역사적으로 그런 호러영화의 장면들이 수없이 많았다. 그 호러 중의 호러인 ‘십자가의 길’이 구비구비 예루살렘의 좁은 거리를 아직도 흐른다. 로마 총독 본디오 빌라도의 옛 집부터 ‘성묘성당’까지 곳곳에 그 호러의 십자가 자국을 숨기고 있는 곳이 예루살렘이다. 이 호러를 뒤로하고 거리로 나온 사람들은 아랍사람, 아르메니아 사람 그리고 유대인들, 그리고 지금은 이들보다 더 많아 보이는 성지순례객들이 한때 호러의 거리였던 이곳을 가득 메우고 있다.



이른 아침 예루살렘을 터벅터벅 걸었다. 새벽이었다. 간밤의 쓰레기를 치우는 환경미화원 아저씨는 이 고대의 거리에도 계셨다. 밝은 유니폼을 입고서. 꼭 역사를 가로질러간 침략군들이 저질러 놓은 일을 이곳 사람들이 감내했듯이, 지난밤의 쓰레기를 그렇게 묵묵히 치우고 계셨다. 아랍 쓰레기, 아르메니아 쓰레기, 유대인 쓰레기, 그리고 순례객들의 쓰레기가 뒤섞인 걸 다같이 한곳으로 차곡차곡 모으고 계셨다. 그분에겐 쓰레기는 쓰레기일 뿐이었다.



다윗 왕의 아들 솔로몬 왕은 자신의 부친이 천도한 이 옛 도시의 언덕에 거대한 ‘솔로몬 성전’을 지었다. 부친의 꿈을 아들이 드디어 이룬 것이었다. 그러나 지금 옛 영화는 다 사라지고 그 흔적만 서벽에 남아 세계 곳곳에 흩어졌던 그들의 자손들을 모으고 있었다. 그들은 이곳 높다란 면벽하고 윗몸을 앞뒤로 흔들며 기도를 하고 있었다. ‘통곡의 벽’이라고들 하지만 어이어이 통곡의 곡성은 들리지 않았다. 그저 낭랑한 외국어 기도소리만 들릴 뿐이어서 성령강림절에 주절주절하는 외국어를 이해한 성령에 감도된 사도들이 절로 기억났다. 이 거대한 벽 너머로 솔로몬 성전의 중앙자리라 생각되는 바로 그 지점엔 이슬람의 황금 돔이 번쩍번쩍 광채를 내고 있었다. 풍수상 최고의 요지라 예루살렘 공식사진엔 항상 이 돔이 나온다. 예언자 마호멧이 사우디의 메카에서 축지법으로 이곳으로 날라왔다고 한다. 들어 가볼수 없는게 안타까웠다. 이곳에서 솔로몬의 지혜를 터득하길 원한 부질없는 기대도 금방 사라졌다. 주위 나라들에서 온 수많은 솔로몬의 애첩들이 기거했던 후궁이 흔적없이 사라져 버린 것처럼 말이다. 하지만, 예루살렘은 민초들이 지나다닌 좁은 거리가 좋다. 종로의 허름한 뒷골목처럼. 화려했던 옛 성전터 보다도 이 좁은 옛길이 더 좋다. 왜냐하면 이사야 예언자가 나체로 예루살렘 거리를 미친사람처럼 뛰어다녔던 그 이상한 거리엔 알수없는 신비감과 자유를 느낄수 있기 때문이다.



사실대로 직언하면, 이 예루살렘의 거리에서 나는 몇 천년전 구약의 이야기보다도 훨신 더 생생히 살아 꿈틀대는 이스라엘 소설가 ‘아모스 오즈(Amis Oz)’의 소설속 이야기가 더 많이 떠올랐다. 폴란드와 러시아 출신이었던 부모와 조부모님들의 이야기가 그의 자전적 소설 ‘사랑과 어둠의 이야기(A Tale of Darkness and Love)’에 고스란히 나온다. 비록 이 올드 시티(Old City)라 불리는 이곳이 주 배경은 아닌 조금 비켜간  ‘케렘 아브라함(Kerem Avraham)’이 배경이지만 전 예루살렘을 중심으로 때로는 따뜻하게 때로는 처절하게 때로는 슬프게, 그래서  진리를 서사중에 슬쩍슬쩍 드러내는 이 작가의 소설이 예루살렘 방문기간에 계속 떠오를 수밖에 없었다.



이른 새벽 예루살렘을 보며 아모스 오즈의 가족 중, 특히 그의 러시아 출신 쉴로밋(Slomit) 할머니가 떠올랐다(그의 부모님에 대한 이야기는 훨씬 더많은 분량이고 따뜻하고 아픈 이야기의 중심이다.). 쉴로밋 할머니는 유럽에서 예루살렘에 도착한 바로 그날 예루살렘의 어지러운 시장통 거리에서 머리가 찡할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 영국 위임 통치기간이던 이 시기, 그러니까 1948년 이스라엘이란 독립국가가 탄생하기도 전에 유럽에서 유대인 박해를 피해 남편과 당도한 조상의 땅, 젖과 꿀이 흐른다고 믿은 약속의 땅이었다. 부푼 희망을 꼭 껴안고 당도한 팔레스타인 땅 예루살렘은 유럽에서 나고 교육받은  ‘유럽인’이었던 그녀에겐 충격 그 이상이었다. 비좁은 거리, 꾀죄죄한 거리의 조그만 상점들, 면도하지 않은 아랍 상인들, 온갖 희한한 중동의 과일을 늘어놓고 파는 거리, 고함소리, 낙타 지나가는 소리... 그리고 이상한  동방(중동)의 향료냄새는 지저분한 거리의 한구석에서 썩어가는 쓰레기 냄새와 함께 이 유럽인 할머니의 코로 잠입해 그녀의 유럽식 뇌를 교란시켰다. 그래서 할머니는 희망을 안고 정착한 이 예루살렘에서 ‘세균(germ)’과의 전쟁을 시작했다. 그리고 안타깝게도 그녀의 남은 평생은 이 전쟁에서 결국 벗어나질 못했다. 세균과의 전쟁… 아모스 오즈는 이 보이지 않는 세균과 할머니와의 전쟁을 희화화하며 이 할머니 머리속 상상의 ‘무시무시한 세균덩어리’에 대해 고통받은 할머니를 따뜻하게 그리고 애정이 묻은 마음으로  그리고 있다. 그같은 의식있는 작가가 아니면 어느 누가, 또  그가 그런 경험을 직접 관찰하지 않았다면 어떻게 그렇게 생생히 묘사할 수 있을까?(어느해엔 노벨문학상이 그에게 주어지길…)



그의 할머니는 혹여 이 세균에 감염될라 아침에 일어나자마자 자고 난 이불을 밖에서 탈탈 터는 일을 마치 종교의식처럼 성스럽게 거행했다. 집안 구석구석에 혹시나 잠복하고 있을 세균박멸을 위해 항상 DDT를 아낌없이 뿌렸다. 그의 할아버지도 할머니를 도와 간밤에 스며든 모든 세균들을 집밖에 털어내는 일에 성스럽게  동참하셨다. 시장에서 사온 채소와 과일은 씻고 씻고 또 씻어냈다고 한다. 그것도 모자라 할머니 자신은 뜨거운 물에 날마다 목욕을 해서 몸에 붙은 끈질긴 이 진절머리나는 세균의 완전박멸을 기도했다고 작가는 회상했다. 세균박멸 대장이신 할머니는 어린 손자인 작가에게도 빰을 맟춘 후  항상 그녀의 가방에서 손수건을 꺼내 입맞춘 뺨 자리를 닦아주셨다. 그러던 할머니가 (면역력이 약해져) 결국 세균말살 목욕제례를 하시다 집안 욕실에서 돌아가셨다고 한다.



예루살렘의 구시가 거리는 남대문 시장과도 비슷하고 모로코의 옛 도시 페즈(Fez)와도 비슷했다. 메디나(Medina)라고 불리는 꼬불꼬불한 아랍식 전통 거리를 그대로 보여주었다. 그러나 페즈와 비교해서 그렇게 길지도 않았고 페즈처럼 ‘미로’에 헤메다 길잃을 염려도 없었다. 그러나 예루살렘도 페즈처럼  ‘미로’는 있었다. 꼬불꼬불하며, 올라가고 내려가는 좁은 거리를 걸으면 햇빛으로 가린 하늘보기보다 아모스 오즈의 할머니가 기겁한 향료냄새와 사람냄새가 나에겐 더 좋았다. 자란 환경이 달랐던 그의 할머니는 그렇게 세균과의 전쟁을 내내 하시다 힘에 부쳐 끝내 돌아가셨다. 이 유대인 약속의 땅에서 말이다. 설겆이 할 때면 꼭 라면끊인 냄비를 따로 구분해서 씻으시던 돌아가신 어머니가 기억났다. 그땐 라면이 좋지않은 인스턴트 음식이라기 보다 먹고난 뒤 냄비에 들러붙은 끈적끈적한 기름기를 그토록 싫어하셨다. 다들 무엇이 그렇게들 싫고 무서웠을까? 아모스 오즈는 그의 할머니의 일화를 통해 ‘자아와 타자’에 대해 얘기한다. 세균보균자로, 세균의 출처로 무의식으로 인식한 예루살렘과 여기 사는 아랍 팔레스타인 사람들, 그들의 식생활, 의복, 종교 등등은 사실 할머니가 박해를 받아 떠나야했던 동유럽 생활과 하등 다를바 없다. 그 박해를 피해 왔던 젖과 꿀이 흐르는 예루살렘은 그녀의 ‘꿈의 땅’이자 ‘약속의 땅’이었다. 안타깝게도 ‘현실과 꿈’은 항상 다른 것이다. 할머니는 그 현실에 항상 ‘불만족’하셨을 것이다. 그 불만족은 아이러니하게도 그녀와 그녀의 핏줄인 유대인을 수없이 박해했던 위생적인 그녀의 고향땅과 그곳 사람들에 대한 것이었으며 그 화살은 눈에 보이는 영국 신탁통치 아래 팔레스타인에 사는 죄없는 아랍사람들이었다. 그래서 현실의 예루살렘과 할머니의 꿈의 예루살렘은 상당히 격차가 있었다. 할머니는 그 큰 격차를 애써 줄이려 날이면 날마다 세균과의 전쟁을 했다. 힘들게... DDT로 단단히 무장을 하고 가족들을 이 악질 세균으로부터 보호하기 위해 그녀는 갖은 애를 다 썼다. 방향제가 있었으면 박스째로 사다 뿌리실 할머니셨다. 결국엔 그 격차를 줄이지 못한채 그녀는 욕실에서 그처럼 돌아가셨다. 전쟁중에 전사한 용감한 군인처럼... (이제는 세균없는 하늘 나라에서 편하시길… 그리고 라면없는 하늘나라에서 우리 어머님도 같이…) 예루살렘의 좁은 거리에서 이스라엘과 아랍의 꼬불꼬불한 미로같은 복잡한 관계는 이렇듯 할머니의 실화에서처럼 강력한 DDT로도 풀리기 힘든 것이다.



너무 닳아 반들반들해진 돌로 깔린 예루살렘의 미로를 걸으며 쉴로밋 할머니를 기억했다. 세균이 맘껏 설치는 산적한 쓰레기 더미도 보았다. 그 거리 위로 복잡하게 이리저리 얽힌 전기줄과 전화줄이 머리를 잠시 멍하게 했다. 아모스 오즈만큼 할머니를 희화화시키면서 복잡하게 얽힌 관계를 실제 상황으로 코믹하게 드러내는 작가는 못봤다. 그런 할머니를 그는 그런 방법으로 못내 그리워 했다. 세균과의 전쟁에 할머니와 함께 동참은 못하지만 전쟁에 열중했던  할머니를 이해하는 그임이 글자 사이사이 문장 사이사이에서 뚜렷이 다 보인다. 예루살렘의  반들반들해진 돌길의 좁은 거리는 할머니의 세균박멸 대청소의 결과물 일까? 아님, 시간의 결과물일까? 환경미화원이 매일 치우는 쓰레기는 누구누구의 쓰레기로 분리하지 않는다.  어느날 나와 타자사이의 경계선이 허물어지는 날, 바로 그날 다윗의 도시 예루살렘에 평화가 오는 날일 것이다. 문자 그대로 예루(도시)-살렘(평화), 평화의 도시로 …

예루살렘의 거리를 깨끗이 하시는 분. 사람들이 얼마나 지나다녔는지 반들반들해진 거리의 돌이다. 미끄러울 정도이며 사고도 종종 난다.

곳곳에 이런 미로가 보인다. 사람들은 어디로 갔을까?

성묘성당 앞에서...

멀리 이슬람의 황금 돔이 보인다. 통곡의 벽이 서쪽이니 이곳은 동쪽이다. 성전의 언덕에 솔로몬 성전이 있었다. 그 옛날에... 이 동문은 닫혀 있으며 유대인의 메시아가 오는 날이면(유대교에서), 그 대문이 열린다고 한다. 이 동문의 오른쪽 가까이에 그리스도교의 첫 순교자 스테판이 군중의 돌에 맞아 순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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