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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노희준 Mar 07. 2016

사람이 있는 책장

소설가 노희준의 전국책방탐방프로젝트2

  노희준의 전국책방탐방 프로젝트 두번째 시간.


  이 프로젝트의 두번째 이벤트를 공개하기로 한 날이지요.


  그 얘기는 조금 있다 하기로 하고요.


  일단 오늘 소개할 곳은 천안에 있는 <허송세월>이라는 책방입니다.


  책방에 도착한 시간은 저녁 여섯시 무렵이었습니다. 낮보다 기온이 떨어지기도 했고, 도시인이 하루중 외부자극에 가장 둔감해진다는 무렵이다보니 뭐랄까요, 나른하달까요, 허기진달까요, 기분이 알쏭달쏭한 상태였답니다. 꽤 헤매다가 시장으로 가는 언저리에서 <허송세월>이라는 간판을 찾아냈는데 이런, 책방은 닫혀 있는 듯 보였습니다. 정확히 말하자면 서점의 불은 내려가 있고 내실의 등은 켜져있는 애매한 상황이었지요. 다음에 다시 와야는 게 아니냐는 일행의 말을 무시하고 무작정 밀어본 결과 다행히도 문은 스르르 열렸지만 아 정말 뭘까,


  난로는 차갑게 식어있고 주인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습니다.



  불이 들어와있던 내실의 모습입니다. 주인이 없는 관계로 뭔가 무단침입의 느낌이 들었지요. 안쪽은 뭔가 어둡고 복잡하지만,




  <허송세월>의 바깥쪽은 이렇게 화사하고 깔끔한 책방이랍니다. 태양이 지평선에 착륙할 채비를 할 시간이어서 창으로는 말간 햇빛이 정면으로 날아들고 있었지요.


  작은책방의 공식이 되다시피 한 것이죠. 시중에서는 보기 힘든 팬시상품과 수공예품이 이곳에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저의 이목을 끈 것은 이곳에 있는 상품들이 아니었습니다. 주인장이 없는데도 주인장과 함께 있는 것처럼 느끼게 하던 것. 마치 우리가 본인이 없는 시간에 올줄 알고 남겨놓은듯한 주인장의 메시지, 다름 아닌 작은 종이에 적힌 글귀들이었습니다.



  책장에 빼곡하게 이런 메모들이 달려 있습니다. 페이퍼에 구멍을 뚫고 테두리를 붙인 다음 그걸 다시 실철사에 꿰어 프린팅테이프로 붙여놓은 저 매무새 좀 보세요. 저런 게 예뻐죽겠는 건 정말 한 남자의 노화현상에 불과한 것일까요?



  한국소설은 "이 시대를 잘 살아내기 위한 충분한 상상"이고, 에세이는 "누구나 가지고 있는 삶의 이야기. 타인과 닿게 되는 가장 쉬운 창구"라고 써놨네요. 그런대로 일리도 있고 귀여운 장르론이군 생각하고 옆칸으로 시선을 돌린 순간 저는 숙연해지고 맙니다.




  생태서적을 설명하면서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있다"고 적어놓았습니다. 이 문구를 읽는 순간, 뺨에서 시작된 부끄러움이 잔잔한 감동이 되어 목덜미를 번져나갑니다. 그리고 곧, 가슴이 서늘하면서도 따듯해집니다. 그렇죠. 인간은물론 먼지에 묻은 작은 박테리아 하나까지도, 우리는 모두 연결되어 있습니다. 생태학에 대해 더이상 명쾌하게 설명할 방법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아마도 이것은 젠더 정체성에 대한 가장 쉬운 설명일듯 싶습니다. 제가 본 한도 내에서는 말이죠. 우리는 관습과 편견에 의해 '사랑'과 '몸'을 정의함으로써 결국에는 '나'에 대한 이해를 저버립니다. 왜 난 연애가 안될까? 왜 이성에게 인기가 없을까? 싶은 분들 있으시죠? 그게 과연 내 잘못일까요? 어쩌면 '나'는 사회에서 요구하는 고정된 성적이미지에 집착하느라 진정으로 섹시한 '나'를 잃어가고 있는 게 아닐까요?


   '나'를 이해못하는데서 끝나지 않지요. 성인이 되어 나이가 서른살, 마흔살을 넘어가도, 상대의 몸에 대해 우리는 여전히 무지합니다. 그냥 '남자들은 왜그러냐' '여자들은 그렇더라' 이분법적으로 생각할뿐 한명의 인간을 이해하려는 노력은 거의 들이지 않지요. 심지어 사랑하는 사람이라고 말하면서도 말이에요.


   결국 헤어진 전여친과 풀리지 않는 말싸움을 하다가 제가 이렇게 말한 적이 있습니다. "가끔씩 너랑 싸우다보면 한명이 아니라 세명과 싸우고 있는 것 같아. 그냥 너, 네가 되고싶은 여자, 그리고 네가 원하는 남자 말이야."


  제 생각은 그렇습니다. 대부분의 연인들은 사람 대 사람으로 싸우는 게 아닙니다. 개인의 성격이 안맞아서 싸우는 것도 아니지요. 친구일 때는 잘만 지내다가 연인이 되고나서는 매일같이 전쟁을 치르는 커플을 보면 잘 알 수 있죠. '나'는 '너'와 싸우는 게 아니라, 서로가 규정해놓은 '남성성' '여성성'과 싸웁니다. "남자가 왜 그래?" "그게 무슨 남자친구야?" "여자가 좀 사근사근한 맛이 있어야지." "여자친구가 그것도 못해줘?" 등등의 말들.


   바라옵건데 상대방이 잘할 수 있는 것을 부탁하세요. 수영선수를 데려다놓고 왜 축구를 못하냐고 다그치는 건 반칙일뿐만 아니라 백전백패를 부르는 행위랍니다.



  개인적으로, 동네서점의 가장 큰 매력은 이런 것이라 생각합니다. 바로 서점주인의 생각과 마음을 책장에서 발견할 수 있다는 점 말입니다. 언제부터인가 서점에 가는 것은 저에게 상당히 귀찮은 일이 돼 있었는데 그 이유를 이곳에서 깨닫게 됩니다.


  제가 원하는 것은 사람의 온기가 묻어있는 책장입니다. 한 개인의 독서이력과 삶에 대한 그림을 엿볼 수 있는. 작은 매대 하나에 몇백만원씩 월세를 받고, 칸칸마다 평균매출이 정확히 계산되어있는 대형서점의 그런 차가운 책장이 아니고 말입니다. 앞통수 뒷통수 옆통수까지 굴려 검색을 해야만 내가 원하는 책을 간신히 찾아낼 수 있는 인터넷 서점도 물론 아니고요.



  주인장이 워낙 오지 않아 전화를 걸어봅니다. 오는 날이 장날이라고, 먼곳에 나와 있다고 합니다. 서점문이 열려있었다고 하자, 열어놓은 게 아니라 닫는 걸 깜박한 모양이라고 합니다. 할 수 없는 소설을 쓰는 작가임을 밝히고 꼭 만나서 드릴 말씀이 있다고 사정해봅니다. 정 그러시다면, 한시간 뒤에 책방에서 보자는 답이 돌아옵니다. 휴우,


  한 시간 동안 뭘할까는 생각할 필요도 없이 일행은 시장으로 직행합니다. 국밥집과 고깃집이 눈에 먼저 띄지만 들어가지 않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온 깜냥으로 이곳에는 반드시 숨겨진 식당이 있습니다. 그런 분위기의 시장입니다. 일행 중 한명이 치킨집 사장님에게 수소문합니다. 이 시장에서 가볼만한 식당이 어디일까요?


할머니가 하시는 보리밥집이라는 말을 듣자마자 직행한 식당은 외부인은 결코 찾을 수 없는 좁은 골목 사이에 있었습니다. 서울로 따지자면 종로맛집의 분위기를 풍기는 식당에는 나이 지긋한 아저씨 두분만이 있었을 뿐,




  "할머니, 여기 보리밥 세개랑 오징어무침 주세요."

  "오징어무침은 오래 걸리는데. 나가서 사와야 하고 양념해야 하고 구워야 하고."

  "그럼 콩비지찌개로 주세요."

  "콩비지찌개는 보리밥과는 어울리지 않는 음식인데. 비린 맛이 날지도 모르는데."

  "된장찌개는 어울릴까요?"

  "된장찌개는 어차피 나가는데?"


  아하하하하. 도대체 장사를 하시겠다는 건지. 결국 우리는 보리밥만 시켰는데, 먹는 내내 반찬을 리필해주십니다. 서울의 보리밥집과는 사뭇 다른 것이, 저 위에 사진을 보면 아시겠지만 나물 하나하나가 다 정성스럽게 무쳐져 있다는 것입니다. 서울에서는 어차피 한데 넣고 비벼먹을 거 절대 저런 정성을 들이지 않지요. 양도 어마어마합니다.



   이런 한상의 가격이 고작 5000원 남짓이라니. 할머님에게 정말 잘 먹었습니다, 감사합니다, 인사를 하고 나오는데 아까부터 와있던 나이 지긋한 아저씨들이 한마디 하십니다.


  "서울에서 온 모양인데 이 식당 절대 소문내지마. 사람들 줄서서 먹기 시작하면 우리가 이렇게 못 와있잖아."


   네네, 사실은 식당이 잘됐으면 하는 마음에서 하신 말인 거 다 압니다. 그래서 이렇게, 열심히 소문을 내고 있습니다.


    자 이 밥집의 이름을 맞추시는 분께는 4월에 나올 제 신간을 무료로 보내드리도록 하겠습니다!


   맛있는 밥에 훈훈한 마음까지 얹어 뱃속에 집어넣고 다시 <허송세월>로 돌아옵니다.


   어느새 주위가 어두워져 있습니다.





  생각보다 훨씬 젊으신 주인장과 이야기를 나눕니다. 저의 두번째 프로젝트가 무엇이며, 고민되는 점이 무엇인지 말이죠.



   그리고 잠시 후 책방 이층에 어마어마한 공간이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됩니다.





   바로 이런 공간입니다. 제 걱정을 한방에 날려준.



   이쯤 되면 제가 하려는 두번째 프로젝트가 무엇인지 눈치채신 분이 있으시겠지요.



   그렇습니다. 저는 전국책방을 돌며 작은 콘서트를 열 생각입니다. 서울에서부터 제주도까지 내려가는 일정이지요.


   아시는 분은 아시지만 저는 <북콘서트>를 <노래콘서트>로 진행합니다. 직접 피아노를 치면서 노래를 부르는 것이지요.


   어떠신가요. 이런 예쁜 책방에서 어느 봄날밤, 소설가의 서툴지만 열성적인 콘서트에 한번 와보지 않으시렵니까. 끝난 다음에는 우리 모두 가까운 밥집에 가서 막걸리도 한잔씩 하고 말이죠.


   자, 그리하여 전국책방탐방프로젝트는 소설가 노희준의 전국책방순회콘서트의 사전답사 되시겠습니다.


   이걸 하려고 열심히 신간도 준비하고, 신간의 주제곡도 만들고 했답니다.


   노희준의 책방탐방프로젝트는 다음주에도 계속됩니다. 다음주에는 책방콘서트의 구체적인 일정과 스토리펀딩을 공개하기도 하겠습니다.


  어느 봄밤의 아름다운 허송세월을 위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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