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희준
#16
- 그럼 어떻게 하면 좋겠소. 노 이사 말은 알겠으니, 구 대표나 이 실장님이 의견을 좀 말해주시죠.
구 대표는 입을 다물고 있었다. 이영락 실장은 조심스럽게 말을 꺼냈다.
- 강연, 강좌가 꼭 인문학적인 것이어야 하나요?
- 그렇지는 않을 겁니다. 장 선생님? 구 대표? 노 이사? 아니죠?
장과 구가 먼저, 그다음 내가 고개를 끄덕였다.
- 일단 우리가 가진 인프라를 생각해야 함돠. 제가 생각했을 때 우리가 가진 가장 확실한 인프라는 수작임돠.
응? 이건 아닌데?
- 계속 말해보시오.
- 현실적으로 스무 개의 인문학 콘텐츠를 갑자기 만들어내는 것은 쉽지 않슴돠. 하지만 어차피 문화예술을 아우르는 것으로 회사 방침을 정하셨으니 수작에서 프로그램을 개발해보는 것도 좋을 것 같슴돠.
구 대표의 얼굴이 밝아졌다.
- 이를테면?
- 수작에도 작가들이 많이 있지 않슴까. 예술의 대중화를 선언하신 만큼 순수예술만 고집하실 게 아니라 처음에는 실용적인 예술부터 시작하는 것도 방법이라고 봅니다.
- 이를테면?
- 많죠. 수공예품 만들기는 말할 것도 없고, 가죽공예, 도자기공예 뭐 엄청 많지 않슴꽈? 요즘 원데이클라스도 많고요.
삼촌 눈빛이 이상했다. 다행히 구가 반론했다.
- 그건 이미 주변에서 많이 하고 있는 것들이잖아요. 초저가 공세하는데도 허덕허덕하는 모양이던데?
하지만 이 실장의 답변이 더 그럴듯했다.
- 흩어져 있어서 그렇지 모아놓으면 다름돠. 물건이 훨씬 더 싼데도 마트는 안 망하지 않슴까. 콘텐츠에도 규모의 경제는 분명 있을 검다. 대부분 영세업자라 시도할 수가 없어서 그렇죠. 더구나 건물주이시지 않슴까.
“건물주”라는 말에, 삼촌의 눈동자 속에서는,
- 수작에 셀러로 오는 작가분들에게 로테이션으로 강좌를 맡기면 어떻슴까. 물건을 홍보하는 효과도 있고요.
마침내 초신성 하나가 폭발해버린 것 같았다. 삼촌은 이 실장의 말에 곧바로 반응했다.
- 강좌료를 적게 줘도 불만이 없을 거야.
- 거꾸로 물건이 안 팔리는 셀러에게 기본소득을 보장해주는 효과도 기대할 수 있슴돠.
- 수업과정을 사진이나 동영상으로 찍어서 광고 콘텐츠를 만들 수도 있을 거야.
- 바로 그검돠. 그게 요즘 말하는 O2O 공식에 딱 맞는 겁니다.
(O2O : On-line to Off-line 혹은 Off-line to On-line. 실물콘텐츠와 디지털콘텐츠가 서로 순환하며 이윤을 극대화하는 모델을 가리킨다.)
용감한 형제들 얘기가 나왔다. 전국 방방곡곡을 돌아다니며 음식점 정보를 수집할 때 사람들은 비웃었다고 했다. 에어비앤비의 창업이 얼마나 사소한 계기에 의한 것이었는지도. 이영락 씨는 외에도 몇 가지 이야기를 더 했지만 삼촌은 듣는 것 같지 않았다. 삼촌은 입을 다물고 눈빛을 빛내며 앉아 있다가 갑자기 테이블을 주먹으로 꽝, 한 번 내리쳤다. 나를 향해 있던 이영락 씨의 고개가 삼촌 쪽으로 획 돌아갔고, 명 실장님은 딸꾹질하듯 움찔했다. 구는 그러거나 말거나 스마트폰 질이었고, 장 선생님은 그제야 회의에 관심이 생긴 모양이었다.
- 그러니까 문발과 수작을 같이할 수 있단 말이지?
- 네 그렇슴돠. 충분히 가능함돠.
삼촌은 비장하게 말했다.
- 드디어 건물을 어디다 써야 할지 알았다.
비서에게 이태리도시락 사업을 백지화하라고 전화한 다음 말했다.
- 수작을 건물 안으로 들입시다. 가능하면 2층, 3층도 수공예품으로 채웁시다. 한국 최초 실내 프리마켓, 수공예품 종합쇼핑몰을 만드는 겁니다.
구가 그제야 스마트폰을 내려놓더니 물었다.
- 다른 공간 임대해서 수작 확장하기로 한 건 하지 말고요?
- 그거 하지 맙시다. 여러 가지로 번거롭지 않습니까.
구는 무슨 말을 더 하려고 했으나 삼촌이 테이블을 내려친 게 반 템포쯤 빨랐다.
- 자 이렇게 합시다. 1, 2층은 수작, 3, 4층은 문화발전소가 쓰는 겁니다. 수작을 먼저 열고 그 이윤을 바탕으로 문화발전소 프로그램을….
“3, 4층을 문화발전소”라는 말을 듣자마자 나는 좀 어지러웠다. 나는 드디어 삼촌을 뜻대로 움직이는 데 성공한 거였다. 조건도 상당히 좋았다.
- 임대료는 당장 문발 돈이 없으니 나중에 수익이 생기면 갚는 걸로….
초신성은 폭발하자마자 강한 중력을 형성하기 시작했다.
여자들의 옷이 완전히 짧아지지 않은 계절이었다. 하지만 이주만 지나면 핫팬츠가 거리를 점령할 거였다. 그리고 곧 폭염과 함께 휴가철이 찾아올 거였다. 장마가 휴가의 열기를 휩쓸고 나면, 수작은 문을 열어두고 있어야 했다.
삼촌은 1층 카페의 폐업 예고를 했다. 5층을 수작 및 문화발전소 사무실 및 임시 강의실로 내놓았다. 명 실장에게는 홈페이지 제작을, 구 대표에게는 셀러 모집을 맡겼다. 인테리어 하는 동창을 끌어왔다. 경력직 MD를 구한다는 구인공고를 냈다. 장 선생과 나에게 전화를 걸어, 이태원, 가로수길, 압구정 등등을 같이 돌아다니자고 했다. 프리마켓 및 수공예품 매장을 죄다 조사하자는 거였다.
(MD : Mechandising Director)
아니, 대체 내가 왜? 수작은 삼촌과 구의 것이잖아?
하지만 수작의 이윤을 바탕으로 문화발전소 프로그램을 추진하자고 하지 않았는가. 수작이 잘 돼야 문화발전소도 잘 된다는 얘기였다. 수작이 잘 안되면? 삼촌은 흥미를 잃고 문화발전소까지 내팽개칠 거였다. 적어도 건물을 공짜로 내놓는 일은 다시없을 거였다. 장 선생님도 삼촌의 요구를 적극적으로 받아들였다.
일단 사업이 되기 시작하면, 아낌없이 문발에 자금을 공급할 사람은 삼촌이었다. 보나 마나 한 번에 몇억 단위로 쏟아부을 텐데 그럼 고작 이백오십을 투자한 나 같은 사람은 지분을 얼마 가져야 하나? 삼촌이 이억오천을 던지면 1퍼센트, 이십오억을 던지면 0.1퍼센트였다. 수익배당금을 한 푼 쓰지 않고 재투자한다 해도 고슴도치가 프로메테우스 쫓아가는 격일 거다. 그럴 때 구 대표가 돈을 융통해 한 몇억쯤 꽂아버리면….
나는 순식간에 개미조차 아니고, 개미가 단물을 빨기 위해 사육한다는 진딧물 따위가 되는 거였다.
없는 돈에 지분을 유지하려면 수작의 성공에 끼친 기여도를 평가받는 방법뿐이었다. 최악은 내가 아무런 공도 세우지 못한 상태에서 수작이 대박을 치는 경우였다.
월요일부터 금요일까지, 매일 같이, 5층에서는 수작의 작전회의가 열렸다. 장 선생님과 나는 수작의 멤버도 아니면서, 경쟁적으로 회의에 참석했다. 명 실장이 문발의 오피스텔을 버려두고 5층 사무실에 합세한 건 물론이었다.
미팅 지옥은 어느새 회의 지옥이 돼 있었다.
회의는 해도 해도 끝나지 않았다. 안건은 어디에 숨어있었는지 결코 박멸되지 않는 잡초 같았다. 가게 하나를 차리는데 그렇게 많은 일을 해야 하는지는 몰랐다. 하지만 내가 정말 몰랐던 것은 고작 몇 개의 안건을 처리하는데도 하루가 꼬박 걸린다는 사실이었다.
어째 나는 이영락 실장의 뜻하지 않은 도움으로 뜻을 이루게 된 게 아니라, 상대방의 힘을 사용하는 그의 노련한 유도 실력에 엄한 방향으로 던져진 것인 모양이었다.
하지만 나는 꽃밭 속에서도 절망을 찾아내던 나라는 인간을, 추락하는 비행기 속에서도 희망을 추구하는 인간으로 적극 개량하는 중이었다. “어차피 결말은 비극”에서 “기승전 로맨틱 해피앤딩”으로의 대 장르변신을 시작한 것이었다.
회의가 시작된 지 채 이틀도 지나지 않아 나는 예술 콘텐츠를 생산한다더니 물건 파는 일에 전력을 다하는 나라는 인간을 합리화할 방법을 찾아냈다. 새삼 깨달은 나의 오만을 깊이깊이 반성하기만 하면 되었다. 세상에 우열이 어디 있냐면서 마음속으로는 위아래를 가르고 있었던, 나는 정말이지 모순덩어리 인간이었다. 예술은 어디까지나 순수한 문학, 미술, 음악 등을 일컫는 것이고 나머지는 쓰레기라는 무의식이 박혀있지 않았다면 어떻게 수공예품 파는 일을 <문화발전소>와 동떨어진 사업으로 생각할 수 있던 것이었을까?
내 손으로 경영방침에 “경계를 허무는 예술”이라고 적어 넣었겠다. 진정한 경계 지우기는 수평적으로만이 아니라 수직적으로도 실행돼야 하는 것이 아니었던가?
수공예는 엄연히 숭고한 예술의 한 장르였다. 그리스 시대에는 분명 장인(artisan)이 순수예술(Pure-Arts)의 종사자였단 말이다.
말할 것도 없이 그들은 문화발전소의 보호를 받아야 할 아티스트 1호였다.
그렇게 생각하기로 했다. 그렇게 생각해야만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