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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데카당스 Feb 28. 2020

...약간의 실망, 이해, 그리고 희망

부다페스트 외노자 일기 - 4

드디어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몸살이 날만큼 바쁜 몇 주를 보내고 부다페스트행 비행기에 오르자 안도의 한숨이 나왔다. 드디어 끝났구나. 드디어 새로운 시작이구나.


운 좋게 비즈니스 클래스도 탈 수 있었다.
격이 다른 비즈니스 클래스의 조식과 커피(아인슈패너)
비엔나 - 부다페스트 구간은 요런 깜찍이를 타고 이동했다
깜찍이도 나름 비즈니스 클래스라고 간식이 나온다. 핵꿀맛!

비즈니스 클래스의 사치를 누리는 것도 잠시, 약 14시간의 비행을 마치고 부다페스트에 도착했다.




약간의 실망감...


모든 문제는 나 자신으로부터 비롯될는지도 모른다.


유럽에서 살게 될 거라는 사실은 너무 멀고 비현실적으로 느껴졌고, 부다페스트 여행 관련 티비프로를 너무 많이 챙겨봤다. 조금이라도 이 곳에 사는 것이 어떤 느낌인지 '미리보기'를 하고 싶었으니까.


그래선지 공항에서 회사에서 구해준 아파트까지 이동하는 동안 실망감이 앞섰다. 공항 주변이 매우 낙후되어 있었던 것. 회사에서 구해준 아파트는 아파트 자체는 괜찮았지만 주변이 썩 마음에 들지 않았다. 집에서 나서면 화려한 유럽식 건물 1층(여기에선 0층)의 노천카페에서 불어오는 커피 향이 나를 반겼어야 했는데!


내 노천카페는 대체 어디에 있는가!
웰컴 투 유럽! 어서와, 0층은 처음이지?

부다페스트는 서울 강남구, 종로구처럼 스물몇 개의 구역으로 나뉘어있는데, 내가 묵는 곳은 그중 8번/9번 지구로 집시들이 많이 살아 약간 낙후된 지역 중 하나라고 했다.


어쨌든 티비에서 보던 것과는 사뭇 차이가 나기에, 첫인상은 그리 썩 좋지는 않았다.




살짝 이해는 가지만...


도착한 지 얼마 안 되어 또 느낀 점 한 가지는 친절의 편차가 크다는 것이다. 내가 미국에서 만난 동유럽(참고로 헝가리 사람들은 본인들을 중부 유럽이라고 여긴다) 사람들은 퉁명스럽지만 정이 있었다. 헝가리에 와보니 더욱 그런 느낌이 들었다.


짐을 실어주면서 너무 무겁다고 욕하면서도 해줄 건 다 해주고 마지막에 헝가리에 온 걸 환영한다는 택시 기사도 그랬고, 말이 안 통해 짜증내면서도 해줄 건 다 해주는 정육점 아주머니가 그랬다.


그러나 처음으로 외식을 하러 그 유명한 뉴욕 카페에 갔을 때는 미국이나 한국과는 다른 직원들의 불친절함에 조금 놀랐다. 어쨌든 화려함으로 유명한 곳이니 사진부터 올려본다.


화려한 천장화가 인상적이다.
1층은 호텔 투숙객들을 위한 부페가 운영한다.
누군가 음식이 별로라 평했는데 비싸서 그렇지 음식은 훌륭했다.
화룡점정은 핫초콜릿. 지금껏 먹어본 핫초코들과는 차원이 달랐다.
한쪽 계단을 따라가면 고급스러운 호텔의 안뜰이 나온다.

이런 화려한 유럽풍 카페와 호텔은 다른 나라에서도 많이 접해봤지만, 원조는 뭔가 다른 느낌이 있었다. 그냥 있어야 할 것이 거기에 있는 느낌이랄까...(대체 뭔 소린지...)


문제는 종업원들이었다.


부르지 않아도 알아서 달려오고 밥 먹는 내내 가끔은 귀찮을 정도로 필요한 것 없냐고 물어보는 미국의 과잉친절(?)과는 달리, 종업원들이 손님들에게 관심이 별로 없었다.


이해는 갔다. 더 친절하게 한다고 해서 미국처럼 팁을 더 받거나 하는 게 아니니까. 그러나 비싼 호텔 카페에서 식사를 하면 기대하는 서비스의 수준이 있는 법이다. 어쩌다 보니 소비자고발처럼 되었지만, 명성에 비해 조금 아쉬운 부분이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희망은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뉴욕 카페와 밤에 살짝 둘러본 바치 거리(부다페스트의 명동 같은 거리)는 희망을 주었다. 내가 기대하던 유럽풍 건물들이 늘어서 있던 것!


밤에 가본 바치 거리. 정말 명동 느낌이 났다.

비록 사진은 찍지 못했지만 다뉴브 강의 전경은 듣던 대로 아름다웠다. 겨울이라 관광객들이 적어 한산했지만, 봄이 오고 날씨가 좋아지면 관광객들로 북적여 도시가 활기를 띠고, 도시가 훨씬 좋아질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둘째 날 저녁에는 Wolt라는 배달 어플로 저녁을 시켜먹었다. 배달부가 자전거를 타고 베트남식 샌드위치인 반미(Banh Mi)와 흑당 밀크티를 배달해줬는데, 영어는 못했지만 참 친절했다. 여기서 세 가지 희망을 보았다.


첫째로 밤늦게 자전거를 타고 다닐 만큼 안전하다는 것. 실제로 한밤 중에 편의점을 갈 일이 있어 10여분을 걸었는데, 어두워서 무섭기는 했지만 위험하다는 생각은 들지 않았다. 밤이 되면 절대 걸어서 싸돌아다니면 안 되는 미국과는 달랐다. 아이를 키우는 입장에서 치안이 좋은 것은 당연 플러스 요소가 아닐 수 없다.


둘째, 반미 샌드위치와 흑당 밀크티를 배달해 먹을 만큼 문화적 다양성이 존재한다는 것. 게다가 가격도 착했다. 샌드위치 큰 것 두 개 + 음료 두 잔 + 배달비 전부 포함해 우리 돈으로 만 칠천 원 정도 했으니, 배달만 했다 하면 기본 사만 원이 깨지는 미국에 비하면 이보다 더 좋을 수 없었다.


마지막으로 젊은 배달부가 무척 친절했다는 것. 동유럽 사람들이 서유럽과 미국 등지로 떠나는 이유는 사실 살기가 힘들어서이다. 급여 수준에 비해 관광객들과 중국자본 덕분에 물가가 엄청 올랐다고 한다. 그래서 젊은이들은 더 나은 기회를 찾기 위해 떠난다고 한다. 그러나 한 밤중에 자전거를 타고 열심히 배달하는 이 친구를 통해 이 곳도 착하고 성실하게 사는 이들이 많다는 희망을 보았다.


물론 아직 이곳에 산지 이틀밖에 안되었으니, 내 감상은 대다수가 틀리거나 변할 것이다. 그러나 한 가지는 확실했다.


첫인상은 별로였지만 내가 이 도시를 좋아하게 될 거 같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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