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년간의 회사 생활에서 배운 것들
(이번 브런치는 전부 개인적인 의견이므로, 참고하시기 바랍니다)
벌써 입사 10년 차가 되었다. 어이가 없을 정도로 시간이 빨리 흘렀다. 그동안 많은 일이 있었다. 누군가의 남편이, 한 아이의 아빠가, 외국에서 일하는 외노자가 되었다.
지난 10년을 돌이켜보며 아무도 가르쳐주지 않았던 회사 생활에 대한 생각들을 소소하게 적어보고자 한다. 담백하게 키워드 위주로.
열일하는 것
열심히 일하는 것 좋지만 열심히 일하는 것은 회사에서 살아남는데 하등의 도움이 안 된다. 누구나 다 열심히 하기 때문.
그럼 더 열심히 하면 되지 않으냐고? 말도 안 되는 소리다. 같은 월급을 받는데 왜 남들보다 더 열심히 일해야 하는가?
회사생활을 가장 행복하게 하는 것은 업무량 당 보상 = (보상 / 업무량)을 극대화하는 방법뿐이다. 보상을 마음대로 올리기는 어려우니 업무량을 줄여야 한다.
태업을 권하는 게 아니다. 일의 양을 줄일 수 있는 방법을 끊임없이 찾으라는 것. 남에게 떠넘기라는 말도 아니고. 머리를 쓰라는 것.
이런 식으로 일하면 집에 일찍 가면서도, 일을 적게 하면서도, 참 일을 많이 하고 잘한다는 소리를 들을 수 있다. 만화에 나오는 근성으로 모든 걸 해결하는 건 바보 같은 짓이다.
기대와 현실
열심히 일했으니 고과도 잘 주고 승진도 시켜줄 거라는 기대를 버려야 한다. 열일했으니 매니저가 알아주고 고과를 잘 줄 거라고? 착각이다.
매니저는 좋은 고과를 줄 수밖에 없는 사람에게 고과를 준다. 성과에 따라 주는 게 아니라 미리 사람을 점찍어놓고 성과가 날만한 일을 준 후에, 좋은 고과를 주는 것이다.
내 매니저와 이 점에 대해 얘기를 나눈 적이 있다. 리더십 트레이닝을 받으면서 이런 질문을 받았던 것이다.
중요하고 급한 업무를 맡았는데 매니저로서 직접 해결할 시간이 없다. 두 사람에게 맡길 수 있는데 한 사람은 성과가 늘 좋은 사람이고 다른 사람은 성과가 저조하지만 열심히 하는 사람이다. 누구에게 업무를 맡길 것인가?
A. 성과가 좋은 사람에게 맡긴다.
B. 성과가 안 좋은 사람에게 맡기고 끊임없이 코칭을 한다.
C. 자신의 다른 업무를 맡기고 매니저 자신이 직접 중요한 업무를 해결한다.
나의 답변은 B였다. 장기적으로 봤을 때 성과가 안 좋은 직원에게 일을 주어 능력을 향상하는 것이 도움이 될 거라 여겼던 것.
그러나 매니저는 A를 선택했다. 그 이유가 충격적이었는데, 만약 중요한 업무를 계속 저성과자에게 준다면 고성과자가 기분 나빠해서 이직이나 전근을 고려할 수도 있고, 회사 입장에서는 사람을 키울 만큼 여유도 없다는 것.
일리가 있었다. 대다수의 매니저들은 그렇게 생각할지도 모른다. 그러니 중요한 업무는 잘하는 사람에게 몰릴 수밖에.
내가 고성과자 부류에 들어있다면 상관없지만 그렇지 않다면 어떡해야 할까?
어려운 일이지만 매니저를 깜짝 놀래킬 정도로 성과를 내거나 아니면 다른 부서나 다른 일을 찾아보는 것이 좋을 것이다. 후자의 경우 근본적인 문제가 해결되지 않는다는 단점이 있지만.
커리어는 누가 만드는가
커리어는 본인이 만드는 것이지 누군가 만들어주는 것이 아니다. 기회를 주지 않는 매니저를 탓하지 말고 직접 기회를 만들어야 한다.
미국에 처음 왔을 때, 매니저는 내게는 중요한 업무를 주지 않고 예전에 자신과 함께 일하던 직원에게 중요한 프로젝트들을 맡겼다. 그의 입장에서는 안전을 추구한 것.
내가 제안한 프로젝트도 무시하기 일수였기에 이대로 있다가는 완전히 말리겠다는 생각이 들어 모험을 감수했다. 매니저의 매니저, 혹은 다른 매니저들에게 은근히 제안하는 식으로 프로젝트를 공론화시킨 것이다.
결국 내 매니저도 나를 중용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내가 프로젝트 성과를 내면 본인의 성과와도 연동되니 본인 입장에서도 손해 볼 일은 아니었다.
이것이 계기가 되어, 내 커리어와 성과는 내가 만들어나가야 한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다. 남을 탓한다고 달라질 것은 없다.
좋은 성과란?
어떤 이들은 밤늦게까지 일하고 좋은 성과를 냈다고 말한다. 참 안타까운 생각이다.
또한 나를 포함한 대다수의 사람들은 내 능력과 성과가 다른 사람들보다 낫다고 생각한다. 완전한 착각이다.
좋은 성과란 결국 매니저가 나에 대한 어떤 기대를 하느냐에 달려있다. 남들 하는 것만큼 똑같이 하면서 좋은 평가를 받기는 어렵다는 것.
반면 이쁨 받는 직원들은 별다른 성과 없이도 좋은 평가를 받기도 한다.
내게는 이제 돌이 지난 딸이 있는데, 눈에 넣어도 안 아플 딸내미가 한 발짝 아장아장 걷기만 해도, 알 수 없는 말을 내뱉기만 해도 그렇게 이쁘고 대견할 수가 없다.
매니저의 평가도 똑같다.
내가 이뻐하는 직원은 아주 적은 성과만 내도 그렇게 대견할 수가 없는 반면 별로 이뻐하지 않는 직원은 냉정하게 평가한다.
사내정치라면 질색하는 내가 성과와 높은 평가에 집착하는 이유이기도 하다. 나는 상대적으로 불리한 평가를 받을 수도 있으니까.
결론적으로 성과 평가는 상대적이라는 것.
지겨운 사내정치
나는 사내정치를 혐오한다.
어떤 직원을 보면 업무는 등한시하고 정치에만 올인하는 경우가 있다. 여럿 보았는데 대부분은 결국 어느 순간 한계에 봉착하고 버리는 패가 되고 만다.
이유인즉슨 쓸모가 없으면 정치의 상대방인 임원급들이 자신이 손해를 보면서까지 이런 사내 정치인을 키워주지 않는다는 것이다.
또 한 가지 내가 사내정치를 혐오하는 이유는, 어떤 사람들은 남의 아이디어나 공적을 가로채기 때문이다.
나는 평화주의자이지만 이런 사람들은 견딜 수가 없기에 직접 찾아가서 따지고 싸운다. 같이 술을 먹으면 욕을 해준다. 음주로 인한 심신 미약 상태라 정상참작이 되므로ㅎㅎㅎ
내 것을 지키지 않으면 남의 것이 되는 더러운 현실 앞에는 영원한 친구도 적도 없다. 다만 성깔 더러운 사람처럼 굴면 적어도 내 것을 뺏기지는 않는다.
주변 사람들과 잘 지내라
앞의 내용과 일맥상통하는 부분이 있다.
군대에서 자대 배치를 받으면 누구와 잘 지내야 할까. 지금 힘 있는 병장인가 아니면 내 윗선임인 일병과 상병인가?
당연히 일병과 상병이다. 병장은 곧 나갈 사람이니까.
회사도 다를 바 없다. 임원들에게 찾아가 학연 지연 혈연으로 굽신거리는 이들은 말년 병장에게 아부하는 것과 다를 바 없다.
결국 내가 성장했을 때 오래 함께할 사람들은 나와 비슷한 레벨의 사람들이다. 위아래로 두 직급 정도랄까. (아래도 중요하다. 누가 언제 어떻게 될지 모르니)
물론 오너가 운영하는 회사는 사정이 다르다. 병장이 아니라 영원히 부대를 통솔하는 사령관이 있는 것과 같다. 그럼 당연히 그 사령관에게 충성을 해야 한다.
리더란 옷을 잘 입는 사람
윈스턴 처칠이 비슷한 말을 했다.
10년을 일하고 나니 그의 말이 와 닿는다. 이제는 더 이상 혼자 일하는 영역이 아니게 되어버린 것.
다른 부서나 다른 사람들과의 협업이 내 업무의 상당수를 차지하게 되니 어느 때보다도 다른 이들에게 호감을 주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10년간은 혼자서 성과를 낼 수 있었는데 이제는 그럴 수가 없게 된 것이다.
앞으로의 10년은 이것이 내 회사 생활의 관건이 될 것이다. 다른 이들과 함께 좋은 성과를 내는 것. 그것이 내 주변 사람이든, 부하 직원이든.
결론
다 쓰고 나니 대체 왜 이런 글을 썼는가 싶다. 아니, 대체 블로그에 글은 왜 쓰는 걸까? 자랑하려고? 돈을 벌려고? 아니면 자기만족?
아무래도 글을 쓰면서 자기 성찰을 하게 되는 것 때문에 글을 쓰게 되는 것 같다. 게다가 누군가 보는 글이기 때문에 더 신중하고 생각을 많이 하게 된다.
어쨌든 오랜 직장 경력의 고수들이 보기에 내 글은 참 우스워보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이렇게 글로 생각을 옮기고 나니 앞으로 어떻게 회사생활을 해야 할지 좀 더 명확해지는 느낌이다. 10년 후에도 자신 있게 회사생활에 관한 글을 쓸 수 있게 되기를 기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