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에 봄이 오면
(작년에 쓴 여행기를 옮긴 것입니다. 참고하세요...)
런던의 날씨는 악명이 높다.
처음 런던으로 이사왔을 때, 지인들이 가장 많이 물어봤던 질문은 다름아닌 "런던 날씨는 어때요?"였다.
런던에 이사온 작년 4월부터는 날씨가 꽤 괜찮았다. 특히 런던의 여름은 세상 어디에 갖다놔도 뒤지지 않을만큼 좋았는데, 공원을 걷고 있으면 정말 피터레빗에 나오는 동화같은 풍경이 펼쳐졌다. 8월 중순에는 엄청 더웠지만, 대체로 너무 덥지도 않은 딱 좋은 날씨.
그러나 겨울이 되자 런던 날씨가 안좋다고 하는 이유를 알게 되었다.
11월부터 2-3월까지 거의 매일 아침 저녁으로 추적추적 우울하게 비가 왔던 것.
그렇게 긴 겨울이 지나고, 드디어 5월, 런던에도 봄이 왔다.
겨울이 긴 만큼 얼마나 봄이 소중했을까. 런던 사람들은 그렇게 찾아온 소중한 봄을 축하하기 위해, 플라워 쇼(Flower Show)로 유명한 첼시(Chelsea) 지역에 누구나 즐길 수 있는 또 하나의 꽃 축제를 한다.
바로 런던의 봄을 제대로 즐길 수 있는, 첼시 인 블룸(Chelsea in Bloom)이다.
첼시 인 블룸은 런던의 대표적인 부촌인 첼시지역에서 매년 벌어지는 길거리 꽃 축제이다.
첼시는 1913년부터 내려온 유서깊은 첼시 플라워 쇼(Chelsea Flower Show)로도 유명한데, 첼시 플라워 쇼가 권위있는 왕족들과 귀족들을 위한 쇼였다면, 첼시 인 블룸은 일반 대중들을 위한 축제라고 할 수 있다. 일반 대중들을 대상으로 하다보니, 무료로 관람할 수 있다.
첼시 인 블룸 축제가 시작되면 슬로언 스퀘어(Sloan Suqare)부터 시작해 킹스 로드(King's Road)에 있는 상점들은 제각기 매년 다른 테마로 화려한 꽃장식을 한다. 올해는 Flowers on Film이라 해서 영화를 테마로 했다.
매년 날짜는 약간 달라지는데, 올해는 5월 22일부터 28일까지, 일주일간 진행됐다.
생화로 꾸미다보니, 축제 시작때는 화려한 색감의 꽃들을 만끽할 수 있지만, 축제 뒤로 갈수록 꽃들이 점점 생기를 잃어가기 때문에, 가능하면 축제 초반에 방문하는게 좋다.
이미 올해 첼시 인 블룸 축제는 끝났지만, 홈페이지를 공유해본다. 홈페이지에는 첼시 인 블룸의 각종 이벤트를 비롯해 과거 첼시 인 블룸의 사진들도 찾아볼 수 있다.
https://www.chelseainbloom.co.uk/
첼시 플라워 쇼는 권위만큼이나 가격 또한 1인당 70파운드 가까이 될 정도로 비싸다. 평소에 꽃에 관심이 많은이가 아니라면 부담이 될 정도.
그러나 첼시 인 블룸은 무료로 진행되는데다, 정말 "런던스러운" 거리의 풍경을 제대로 즐길 수 있기 때문에, 날짜가 맞는다면 여행 일정에 넣는 것을 추천한다.
본격적으로 첼시 인 블룸 관람을 시작해보자.
굳이 지도를 보지 않더라도, 슬로언 스퀘어에서 시작해 킹스로드를 따라 걷다 보면, 자연스럽게 대부분의 꽃장식들을 만나게 된다. 사람들이 몰려있는 곳을 가면 자연스레 장식들을 만날 수 있는 것.
계속 킹스 로드를 따라 걸어가보자.
굳이 영화 테마가 아니더라도 화려한 꽃장식이 눈을 즐겁게 했다.
계속 걸어가다보면 익숙한 모양의 꽃장식들도 보인다.
영화를 테마로 한 재미있는 장식들이 관람객들의 눈을 즐겁게 했다.
식당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각종 화려한 꽃장식으로 손님들을 끌었다.
그 중에 하이라이트는 역시 사치갤러리 앞 쪽의 Duke of York 스퀘어였는데, 위에 있는 체셔캣, 메리 포핀스, 라이온킹뿐 아니라, 근처의 식당들에도 화려한 장식이 있어 눈이 즐거웠다.
길을 가다 정말 특이한 옷가게를 발견했다.
RIXO라는 생소한 브랜드였는데, 가게 중간에 바(Bar)가 있어서 고객들이 술을 한잔 하면서 옷을 골라볼 수 있게 되어 있었다. 인테리어 감성이 마치 70-80년대의 화려했던 서구의 감성을 보는 것만 같았다.
이제 남은 짜투리 사진들 대방출...
제법 걷는 거리가 되었는데도 꽃장식들을 보는 재미가 있어 길게 느껴지지 않았다. 빠르게 사진만 찍고 지나가더라도 2-3시간이면 다 볼만한 거리였다.
첼시 지역은 런던의 대표적인 부촌이지만 딱히 유명한 관광지는 아니라고 할 수 있다.
쇼핑으로 따지자면 리젠트 거리만 못하고, 부촌의 멋진 건물들로 따지면 노팅힐만 못하기 때문이다. 우리에게 익숙한 첼시 FC를 제외하고는, 딱히 알려진 것도 없다.
그러나 첼시 인 블룸 시기만큼은 첼시는 꼭 방문해야할 장소라는 생각이 들었다. 화려한 꽃장식은 둘째치고, 진짜 "런던스러움"을 보여주는 장소였기 때문이다.
5월 말쯤 런던을 여행할 계획이라면, 첼시 인 블룸 관람을 일정에 넣어보는건 어떨까? 런던의 봄을 제대로 만끽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