낼모레 쉰의 런던 출근기 5

2021년 12월 7일 화요일 - 시크릿 산타

by 진영순


올해도 어김없이 어린이 팀은 시크릿 산타를 했다. 12월 중순부터 크리스마스 휴가를 떠나는 동료들이 있는지라, 그전에 하루 날을 잡아 점심시간에 피자를 먹으며 선물을 교환하곤 한다.




게임의 룰


게임에 참가를 원하는 사람들은 사전에 제비뽑기로 이름을 뽑아야 한다. 그리고 그 이름의 당사자를 위한 크리스마스 선물을 준비하면 된다. 중학생 때 했던 마니또 게임이랑 비슷하다. 그런데, 요즘은 종이에 이름을 적어 제비를 뽑지 않고, 인터넷에 가면 무료 프로그램들이 있다. 시크릿 산타 참여를 원하는지 예, 아니오로 묻고, 예스를 선택하면, 인원이 확정된 추후에, 참가자 중에 한 사람을 배정받게 된다. 선물은 대개 5파운드 내지는 10파운드로 제한을 둔다.


이번에 어린이 팀의 선물 한도는 10파운드. 내가 선물을 주어야 할 사람은 S. 이 동료는 슬프게도 17일 자로 퇴사한다. 책 파는 일보다는 사회봉사나 환경 단체에서 일하고 싶다는 20대 후반의 영국인. 어린이 팀에서 가장 키가 큰, 밥 많이 사주고 싶은 그런 동료였는데 그만둔다고 해서 못내 아쉬웠다. 그런데, 그를 위해 시크릿 산타가 될 수 있어 기뻤다. 비건이자 노동당 지지자이자 올해 이 게임의 진행자인 S. 그런데, 무슨 선물을 하면 좋을까? S와 친한 또래 영국인 동료에게 살짝 조언을 구할까? 이래저래 고민이 된다.




과거의 기억들


워낙에 큰 부담 없이 조금은 가볍게 하는 연말 행사이다 보니, 때로는 황당한 또는 어이없는 선물을 받기도 한다. 나는 첫 해에, 처음 해 보는 시크릿 산타이다 보니, 당시 5파운드라는 약소한 예산 내에서도 나름 정성껏 선물을 준비했었는데, 나한테 돌아온 건, 글쎄, 재활용했을 것 같은 혐의(?)가 짙어 보이는 다소 낡아 보이는 작은 천사상이었다. 그때는 선물을 모두 돌리고 나서, 누가 시크릿 산타인지 맞추는 게임은 하지 않았다. 해서, 나는 지금까지도 그때의 시크릿 산타가 누구인지 모르겠고, 그때 사건은 살짝 그렇고 그런 기억으로 남아 있다. 내가 받은 건 아니지만, 가장 황당한 선물 중에 하나는 채찍이었다. 그 해는 <그레이의 50가지 그림자>란 영화가 개봉한 해였던 것으로 기억한다. 그 영화에 대해서 서로 농담 같은 이야기를 한 모양새였고, 당시 선물을 받은 스페인 동료는 당황스러운 헛웃음을 지었던 것으로 기억한다. 올해는 이런 짓궂은 선물은 없었다. 대개는 매우 점잖고 서로를 심하게 배려한다.




자신이 원하는 걸 얻는 자


시크릿 산타가 있던 아침, 사무실 한편에 큰 바구니를 마련해 두고, 하나씩 하나씩 몰래 선물을 떨군다. 그리고 점심, 우리는 회의실에 모였다. 모닥불 대신, 모닥불 영상이 나오는 마이클 부블레의 크리스마스 음악 비디오를 회의실 큰 화면에 띄우고, 점심으로 피자를 먹으면서 크리스마스 캐럴을 들었다. 누군가 물었다. 한국에도 캐럴이 있냐고? 글쎄, 잘은 모르겠고, Santa Claus Is Coming to Town (울면 안 돼)이 어린이 용으로 번역되었고, 율동도 있다고 했더니, S가 유튜브에서 검색을 한다. 한 동영상에서 한글 번역을 로마자로도 보여주고 있어서, 우리는 한국어로 이 노래를 같이 부르고 중간중간에 율동도 따라 했다.


그리고 S가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선물을 돌렸다. 받은 이는 선물을 하나씩 하나씩 돌아가며 풀었고, 준 이는 받은 이가 좋아하는지 표정을 살피는 그런 순간, N이 포장을 풀더니 매우 신나라 한다. 자기한테 꼭 필요한 카드 지갑을 받았다며, 그것도 본인의 이니셜 N이 새겨진 거라며 기뻐한다.




남이 원하는 걸 주는 자


그 순간, 나는 새삼 이번 시크릿 산타가 재밌게 느껴졌다. 참으로 랜덤 하게 진행되는 이 작고 소소한 게임에서도 누군가는 자신이 원하는 걸 얻는 모양이다. N은 그런 동료다. 엄마가 스페인인이고, 아버지가 일본인이며, 세 개의 국적을 가지고 있는 그는 자기가 원하는 걸 신기하게도 얻어가는 똑똑한 동료다. N은 나중에 누가 시크릿 산타인지 맞추는 과정에서, 새 지갑이 필요하다는 이야기를 지난번 모임에서 A와 V가 있는 자리에서 말했었었는데, 혹 이번에 시크릿 산타가 A이거나 V인지 묻는다. 이 게임의 룰은 세 명까지 이름을 댈 수 있다. 세 번 째도 못 맞춘 네카네는 탈락. 탈락했다고 해서 벌칙이 있는 건 아니지만. 아마도 센스 많은 A나 V가 지갑 이야기를 N의 시크릿 산타에게 흘린 것일 수도.




누가 시크릿 산타인지 맞추는 자


S는 내가 시크릿 산타라는 걸 너무 쉽게 맞췄다. 나는 S에게 뭔가 평소에 잘 안 할 거 같은 다소 특별한 선물을 하고 싶었고, L사의 입욕제를 샀다. 하마 모양, 곰 모양, 하트 모양의 입욕제가 비건용인지 묻고, 꿀도 안 들어간 완전 비건용이 맞다는 걸 확인하고서는 계산을 하니 예산이 다 차 버렸다. 해서, 포장은 가지고 있던 한국어가 쓰여 있는 적당한 크기의 튼튼한 박스에 해 버렸는데 S는 읽지는 못 해도 한글이 대충 어떻게 생겼는지는 안다. 아차, 나의 실수. 그러고 보니, 다들 포장도 아예 상점에서 예쁘게 했거나 크리스마스 분위기가 물씬 나는 종이봉투에 담아 왔다.


나는 누가 나의 시크릿 산타인지 포장을 뜯어보기 전에 이미 알아맞혔다. 나는 게임에 응하겠냐는 질문에 마지막으로 체크를 한 사람이었고, 내가 열 번째였다. 어린이 팀이 열두어 명 되는데, 누군가는 안 한다고 한 상태였다. 그런데, 7일 점심에 모인 우리는 모두 11명. 시크릿 산타를 하는지 알 턱이 없는 새 인턴이 출근한 지 이틀째 되는 날이었고, 이 친구를 그냥 구경만 하게 할 우리가 아니었다. 그리고 모르긴 몰라도 팀장이 선물을 두 개 준비했을 터였고, 11개의 선물 가운데 모양은 다르지만 포장지가 같은 선물이 두 개가 보였다. 그리고 그중에 하나가 내 쪽으로 오고 있었다. 빙고! 내가 받은 선물은 디퓨저. 땡큐, 마이 시크릿 산타, 어린이 팀 팀장 V!




소소한 게임을 너무 장황하게 썼다. 가장 큰 명절인 크리스마스에 영국은 엄청나게 많은 선물을 주고받는다. 그리고 적잖이 버려진다. 나는 자주 어떤 선물을 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하거나 남이 좋아할 만한 걸 선물하는 게 아니라 내 눈에 차는 걸 선물로 주는 편이라, 누군가 원하는 걸 찰떡같이 알아맞히고 선물해내는 이들이 새삼 다르게 보였다. 그리고 이 와중에도 낭비 없이 자신이 원하는 걸 얻어가는 동료가 새삼 참으로 능력자로 보였던 그런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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